소성리 '사드'는 어떻게 '광기'를 불러냈나?

2021. 4. 1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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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 19. 경북 성주 소성리 : '사드(THAAD)'의 정치경제학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무등산 수박과 성주 참외. 여름에 가장 먹고 싶은 과일들이다. 대구 북서쪽에 위치한 성주는 조용한 농업지역으로, 가야산의 맑은 물로 키워내는 당도 높은 참외 이외에는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이러한 성주가 몇 년 전부터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고 시끄러운 곳이 되고 말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때문이다.

'사드 출입금지'. 성주군 북쪽에 있는 소성리에 들어가면 아스팔트 바닥에 쓴 흰 페인트가 방문객을 맞는다. 원래 소성리는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가 탄생한 원불교의 성지로 원불교 순례자들과 이곳에 있는 성주골프장 방문객 이외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주골프장에 사드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 소성리에 들어서면 '사드출입금지'라는, 아스팔트에 써 있는 구호가 제일 먼저 방문객들을 맞는다. ⓒ손호철

이곳에서 80년을 산 할머니 집의 외벽에는 예쁜 꽃들 위에 'No THAAD', '삶의 터전을 건드리지 마라!'라는 살벌한 구호가 쓰여 있고, 마을 곳곳에는 갖가지 구호의 사드 반대 펼침막들이 걸려있다. 마을에서 사드 기지로 올라가는 삼거리 진밭교에는 마을사람들이 검문소를 설치해 사드 관련 장비 등의 기지 내 추가 반입을 막고 있다. 이곳에서 기지 정문 앞까지의 좁은 언덕길은 길 양쪽에 전국 각지에서, 여러 단체들이 보내 온 펼침막들이 끝없이 도열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 연세가 80세인 할머니 댁 벽에 써 있는 사드 반대 구호 ⓒ손호철
▲ 사드 기지 정문 앞에는 각 단체들이 보내온 사드 반대 펼침막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손호철

사드가 무엇이기에 이 같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사드는 적의 미사일을 고고도에서 요격하는 미사일방어시스템으로, 2013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이 북핵을 막지 않으면 중국을 미사일로 포위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한반도 배치가 시작됐다. 2014년 국무부 관계자가 한국에 사드 배치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고, 북한의 핵 개발이 본격화되자,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16년 7월 정부는 롯데가 운영하는 성주 소성리의 골프장에 사드 포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고, 중국은 롯데마트에 대대적인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이후 롯데마트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 한국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취했다. 이후 촛불 항쟁에 의해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면서, 촛불 항쟁 지도부는 사드를 해결해야 할 주요 적폐로 지목했다.

2017년 4월은 탄핵된 박근혜 밑에서 국무총리를 하던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국정을 이끌고, 박근혜의 후임을 뽑는 대선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주한미군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성주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틈을 이용해 사드 포대를 소성리에 전격 배치하고 작동에 들어갔다.

▲ 사드 발사 실험 장면 ⓒ연합뉴스

2017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이미 사드 배치가 다 끝난 뒤였다. 촛불 항쟁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후 여러 회견 등에서 "사드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고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주한미군과 정부는 사드 배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며 최근 북한이 급속히 추진하고 있는 북핵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자구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성리 주민의 반대는 지역이기주의, 구체적으로 '님비(NIMBY : Never In My Back Yard, 즉 '혐오 시설은 내 근처에 설치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우리가 사드에 반대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사드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 마을에 설치하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드 반대를 위해 마을 검문소 근처에 천막을 치고 상주하고 있는 강현욱 원불교 교무는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비판자들은 사드라는 것 자체가 실전에서 검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 지형 상 북한 미사일 방어에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드는 적의 미사일을 감지하는 레이더가 없으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북한이 방사포 등으로 레이더를 파괴하면 게임은 끝난다.

또 북한이 미사일 등을 계속 쏴 미군이 성주에 있는 사드 48기를 모두 소진하도록 만든 다음에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면 속수무책이다. 사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방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방어시스템이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을 포기하는가?

이 때문에 성주 주민들 비롯해 비판자들, 그리고 중국은 이 기지가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21세기의 동북아 패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 소성리와 한반도가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강 교무는 탄식했다.

▲ 소성리 사드 반대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강현욱 원불교 교무. ⓒ손호철

- 사드의 역사적 의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항해 미·일·한 군사동맹을 위해 세 가지를 했다. 첫째, 이 동맹의 가장 큰 장애인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 미국은 박근혜 정부를 시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했다. 둘째,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를 체결하게 했고,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에 사드를 배치했다. 소성리의 사드 배치는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 사드 이후 제일 불편한 것은?

수 십 년 삶의 터전인데도, 통행의 자유가 없다. 민통선처럼 국방부 허가를 받아야 자기 집을 출입할 수 있다.

- 현 상항은?

사드 포대는 기지, 장비, 인력이라는 세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2020년 5월 28일 이들이 경찰을 동원해 장비를 업데이트했다. 그동안 사드 관련해, 경찰이 7차례에 걸쳐 3000명이 투입됐는데 7번 중 5번이 문재인 정부 때였다. 특히 5.28 투입 때가 가장 폭력적이었고 사전 통보도 없었다. 한 마디로, 문 대통령이 "사드의 투명성을 지키겠다"는 공약을 안 지켰다.

- 앞으로는?

미군의 최우선 요구 사항은 지상 병참선을 확보해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도로를 막고 있어 식자재 등을 모두 헬기로 공급하고 있다. 외출 등 한국군의 출입은 막지 않았는데, 5.28에 대한 항의로 앞으로는 한국군의 출입도 막겠다.

▲ 2020년 5월 소성리에는 사드 업데이트 장비가 반입됐다. ⓒ연합뉴스

'From MAD to Madness'. 사드 기지 정문이 멀리 보이는 바리케이드 앞에 서자, 갑자기 냉전 시기 미 국방부에서 핵전략작업을 했던 폴 존스턴(Paul Johnstone)이 인류를 핵전쟁의 재앙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죽기 전에 남기고 간 책 제목이 떠올랐다. 여기에서 MAD는 '미친'이란 뜻이 아니다. 즉, 책 제목은 <'미친'에서 '미침'으로>가 아니라 <MAD에서 광기로>다. MAD는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상호파괴확신)'의 준말로, 냉전 시기 미소 간의 사생결단의 군비 경쟁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핵전쟁이라는 파멸로부터 구한 비결이다. 따라서 말뜻과는 정반대로, 전혀 '미치지 않은' 것이다.
▲ 반핵운동의 선구적 책인 from MAD to Madness
핵전쟁에서 한 쪽이 전쟁 후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핵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만다. 반대로 둘 다 확실히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면(상호파괴확신, MAD), 자기도 멸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핵무기의 단추를 누를 수 없다. 소위 '공포의 균형'이다.

어떻게 하면 핵단추를 누르면 둘 다 확실히 멸망한다는 확신, 즉 MAD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것은 핵무기에 대한 방어용 무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1945~1980년대까지의 냉전 시기에 미소가 극한적으로 대립하고 무한 군비경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인류가 살아남은 비결은 미소가 MAD론에 기초해 방어용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방어용 무기가 없으니 "전쟁이 나면 나도 잿더미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핵단추를 누르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거대한 방위산업이었다. 미소는 오랜 핵 경쟁 끝에 지구를 수 천 번 부술 수 있는 핵무기를 비축했고,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이 인류를 핵전쟁이라는 파멸부터 구한 비결일지 몰라도, 방위산업에게는 재앙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레이건 대통령이 제안한 '스타워즈 프로그램'이라는 미사일방어체계다. 즉 방어용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합의를 깨고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용 미사일을 우주에 배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로써 새로운 무한 군비경쟁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다. 존스턴의 책 제목처럼 정말 '미친 짓(Madness)'이고 핵전쟁을 막아 온 MAD에서 방어용 무기와 새로운 무한 군비경쟁(잘못하다가는 이에 따른 핵전쟁과 인류 멸망에 이르는)이라는, '미친 짓(Madness)'으로 가고 만 것이다. 'From MAD to Madness'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같은 판도라 상자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열렸다는 점이다. 사드란 바로 이 판도라 상자에서 뛰쳐나온 방어용 무기의 한 종류이다. 따라서 '미친 짓'의 일부이다. 물론 민중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는 것 역시 '미친 짓'이고, 비판받아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비판하는 미국도 방어용 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 아니라 다른 핵 보유국들과 함께 기존 핵무기의 폐기에 나서야 한다.

MAD론에 따르면, 설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도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기 때문에 '공포의 균형'에 의해 북이 핵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방어용 무기인 사드를 배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성리를 떠나며 나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인해 우리도 존스턴이 경고한 '미친 짓'의 일부가 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 낼 수 없었다.

<후기>

문재인 정부는 답사를 다녀온 2021년 1월 22일 사드 기지 병사들의 거처 등 생활환경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코로나 비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6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주민들의 저지망을 뚫고 32대 차량분의 건축자재를 사드 기지로 반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 1월 26일 다시 한 번 찾아가 강 교무를 만났다. 그는 사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려고 머지않아 패트리엇 미사일을 반입하려 할 터인데 이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 다시 찾은 소성리에는 주택 담벼락에 사드 반대 구호가 더 늘어나 있었다. ⓒ손호철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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