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리움 기증 가닥 잡힌 '이건희컬렉션' 궁금증 다섯

오현주 2021. 4. 1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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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맞물린 소장품 실체·향방 한두 주 내..
국현·국박 외 지방 소재 미술관에도 기증할 듯"
미술계 숙원사업된 '물납제' 적용은 물 건너가
기업총수들 미술품 상속에 상당 영향 미칠 듯
이건희컬렉션 주요 작품으로 꼽히며 세간의 관심을 끈 문화재와 해외 유명작가의 미술품. 마크 로스코의 ‘붉은색 위에 흰색’(1956·왼쪽부터 시계방향), 피카소의 ‘도라마르의 초상’(1937), 리히터의 ‘두 개의 촛불’(1982),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Ⅲ’(1960),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국보 제217호)와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국보 제219호). 대부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인 작품들이 이건희컬렉션으로 오르내리는 건 이들 미술품의 수준과 비교해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컬렉션이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사진=문화재청·삼성미술관 리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조 5000억∼3조원. 최근 감정평가를 마친 ‘이건희컬렉션’의 최종 감정총액 추정치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소장해온 국내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 세계 컬렉터를 안달나게 해온 ‘근현대미술품’ 1만 3000여점에 대한 가치를 뽑아봤더니 이렇다는 얘기다. 지난달부터 미술계가 초특급 레이더를 세우고 ‘호사가의 입방정’으로 한마디씩 보탰던 이들 미술품의 향방에 대한 윤곽도 일부 드러났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립기관에 일부를 기증하고, 삼성문화재단 산하의 삼성미술관 리움(이하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분산 출연할 것이란 내용이다.

사실 이조차도 명확치는 않다. 한 번도 실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소장품을 봤다거나 확인한 누구도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이건희컬렉션 감정평가에 참여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등이 결과보고서까지 제출했다지만, 각자 손끝으로 한쪽만 더듬어 ‘코끼리 형상’을 빚어낸 식이라고 할까. 확실한 건 생전 이건희 회장의 안목으로 볼 때, 기존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볼 때 컬렉션의 수준·감정가 등 가치는 가늠해볼 수 있다는 거다.

그간 이들 소장품에 관한 관심은 미술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3조원에 달한다는, 삼성가가 이달 말까지 납부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상속세와 맞물려 있어서다. 이제 남은 것은 삼성가가 언제 어떻게 소장품의 실체와 향방을 밝힐 건가다. 기증 여부와 대상을 확정해야 정확한 상속세 산출을 할 수 있어서다. 삼성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구체적인 소장품 향방을 포함한 상속세 관련 입장은 4월 기한 내 공식루트를 통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는 아니 ‘결국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이건희컬렉션을 둘러싼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그중 다섯 가지를 뽑아 그간 취재내용을 토대로 정리해봤다. 비단 이건희컬렉션만이 아니라 앞으로 국내 기업총수들이 소장한 미술품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다.

① 100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건희컬렉션 중 감정평가대상이었다는 1만 3000여점 중 얼마나 기증이 될까.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100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그에 준하는 규모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감정평가를 받은 전부가 국·공립미술관으로 가진 않을 것”이라며 “대다수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출연할 것”이라 말했다. 다만 지방 소재 공립미술관도 기증처의 일부로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령 이중섭·박수근미술관 등에, 소장한 작품을 되돌려줄 계획도 있다는 거다.

협의부터 실행까지 시간이 적잖게 필요하고 상속세 납부 시한이 열흘 남짓한 것으로 미뤄, 이달 초 이미 삼성가와 기증처 윗선의 접촉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현재는 기증 미술품과 관련해 실무자들이 협의 중이란 거다. 다만 기증처로 오르내리는 미술관·박물관들은 “이달 초 윗선에서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며 “구체적으로 내려온 사안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상속세 관련 발표가 임박했다면 한두 주 내 실무자들까지 바빠질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② ‘국립기관 기증’ vs ‘물납제’ 뭐가 다른가?

이건희컬렉션과 맞물려 미술계가 마치 숙원사업처럼 관철시키려 했던 ‘물납제’는 당장 법제화로 가긴 어렵게 됐다. 물납제는 납세자가 조세채무를 금전으로 납부하는 것이 곤란할 경우 미술품·문화재로 재산세·상속세 등을 대신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입법화하고, 미술품·문화재를 시가평가할 믿을 수 있는 감정평가기관과 전문가 양성 등, 시행까진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그렇다면 이건희컬렉션처럼 미술품을 기증하는 것과는 무엇이 다른가.

세무업계 관계자는 “미술품을 국립기관에 기증하거나 조건을 갖춘 재단에 출연하면 상속을 받는 재산에서 빠지고, 따라서 상속세 납부대상에서도 제외된다”며 “한마디로 기증한 미술품은 상속재산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3조원어치를 기증한다면 상속세를 산출할 근거가 되는 재산에서 3조원이 통째 빠진다는 거다. 이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기증은 국가기관에 세금을 내는 것과 같다고 보고 ‘비과세’ 처리를 한다. 그렇다면 삼성문화재단이 관리·운영하는 리움미술관·호암미술관에 출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일까. 관계자는 명칭만 ‘비과세’ 대신’ ‘과세불산입’으로 달라질 뿐 “상속세에서 빠지는 결과는 같다”고 전했다. 다만 공익법인 기부에는 철저한 사후관리가 뒤따른다는 거다.

③ ‘이건희컬렉션’ 해체되나?

고구려 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118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금강전도’(국보 제217호),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국보 제219호)와 ‘백자청화죽문각병’(국보 제258호) 등. 이건희컬렉션에 들었다고 알려진 이들 문화재는 모두 리움미술관·호암미술관이 소장한 것들이다. 해외 유명작가의 미술품도 다르지 않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Ⅲ’(1960), 마크 로스코의 ‘붉은색 위에 흰색’(1956), 리히터의 ‘두 개의 촛불’(1982), 피카소의 ‘도라마르의 초상’(1937) 등, 여기에 이중섭의 ‘황소’(1953∼1954)까지 대부분이 리움미술관 소장품이다. 그럼에도 이들 작품이 이건희컬렉션으로 오르내리는 건 왜 인가. 이건희 미술품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또 이들 미술품의 수준과 비교해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컬렉션이란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미술품을 여러 기관에 나누어 기증·출연할 경우 컬렉션 자체가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적잖다는 거다. 컬렉션이 무조건 사서 모은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다. 한 점 한 점 가치가 적잖지만 이건희컬렉션의 프리미엄이 작용하고 있던 셈인데. 만약 판매로 이어졌다면 값을 끌어올릴 수도 있었단 얘기다. 이에 버금가는 예로 ‘록펠러 3세 경매’가 있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대거 나왔던 ‘록펠러 3세 소장품’이 있다. 당시 1550점이 단일 경매사상 최고 낙찰총액인 8억 3200만달러(약 9210억원)에 거래됐다.

④ 국립기관에 기증한 미술품, 언제쯤 공개될까?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해 예산은 올해 기준 642억원. 이 중 소장품 구입비는 48억원이다(국립중앙박물관은 39억 7900만원). 이 비용으로는 이건희컬렉션 중 한 점도 제대로 사기가 어렵다. 이건희컬렉션이 대거 유입된다면 이들을 어떻게 관리·운영할까.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의사가 접수될 경우 감정평가를 먼저 한다. 이후 내외부 전문가들이 수증심의회의를 하고 실사를 진행한다. “작품이 좋다고, 고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기증품을 모두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말한다. 시장가가 아닌 ‘가치평가’가 우선이란 얘기다. 기존 미술관 소장품 중 빈 부분을 채울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소장처와 활용계획까지 서야 비로소 소장품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이건희컬렉션의 경우는 이 모두를 초월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사적 재산을 국민의 재산으로 환원하는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않다”며 “바람직한 기증의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컬렉션의 경우는 특별하게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빠르면 올해 안에 특별전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을까” 내다봤다.

⑤ 3월 재개관도 연기한 리움, 이건희컬렉션 때문?

4년간 문을 닫아걸었던 리움미술관이 재개관 신호를 보냈던 건 올해 초. 리움미술관은 2017년 홍라희 관장,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차례로 물러난 이후 상설전만 열며 개점휴업을 이어왔다. 이마저도 코로나19가 겹치자 아예 휴관에 들어갔더랬다.

홈페이지에 재개관 공지를 띄우며 리모델링 등 안팎을 정비하던 리움미술관은, 하지만 현재 재개관과 관련한 일체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일각에선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으로 나선 이건희 회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이건희컬렉션을 주도하면서라고 추측한다. 실제로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 후원회에 가입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리움미술관 내에서도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입장과 다르지 않다”며 “이건희컬렉션 내용과 방향 등이 어떻게 추진될지에 관해 어떤 것도 드러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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