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10만원"에 속아.. 보이스피싱 알바 5배 늘었다
전북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김모(여·39)씨는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평균 400만원이던 월 수입이 15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사람들이 대면(對面) 만남을 꺼려 새 고객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그는 작년 8월 ‘투잡’을 뛰기로 결심했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지다 ‘간단한 심부름 하실 분’이란 광고를 봤다. 의뢰자는 “서류 배달 같은 일을 하면 건당 수고비를 주는데 잘 하면 1주일에 100만원도 벌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합법적인 것 같고 보험설계사 일과 병행할 수 있어 좋겠다”며 일을 시작했는데, 2주 만에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찼다. 알고 보니 김씨를 고용한 업체는 ‘보이스피싱 조직’이었고, 그가 맡은 일은 범죄 피해자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조직의 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것이었다. 그가 2주간 받은 돈은 200만원 남짓. 재판에 넘겨진 그는 지난달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에게 6000만원의 돈도 물어줬다. 그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다.
코로나로 생계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불법 알바’ 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 ‘별다른 자격도, 경험도 필요 없이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문구에 혹해 불법 알바에 뛰어들었다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등록금이 필요한 대학생, 취업길이 막힌 청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가장(家長) 등 면면도 다양하다. 범죄라는 것을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잘못이란 것을 알면서도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불법 알바'에 빠져든다. 코로나 속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이들이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최근 급증한 불법 알바는 ‘보이스피싱 수금책’이다. 기존에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을 이용한 계좌 이체가 많았지만 금융 당국이 계좌 지급 정지 등 다양한 방지책을 내놓자 직접 만나 돈을 건네받는, 이른바 ‘대면 편취(騙取)’ 알바가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3244건이던 대면 편취 적발 건수는 작년 1만5111건으로 5배 수준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꾐에 넘어간 이들이 많다”고 했다.
‘고소득 재택 알바’란 말을 믿었다가 보이스피싱 공범(共犯)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 이모(29)씨도 지난해 그렇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작업실·자취방 월세를 포함해 월 10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했던 그는 원래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1주일에 4일씩 주방 보조 일을 해왔다. 코로나로 손님이 크게 준 작년 7월, 아는 사람이 ‘재택 알바’를 제안했다. ‘중국에 있는 통신 업체로부터 통신 중계기를 받아 집에 설치하고 이상 없게 유지·보수만 해주면 월 30만원을 준다’고 했다. 덜컥 받아들였지만, 알바 2개월 만에 이씨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 해당 기기는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해외에서 거는 ’070′ 국번의 인터넷 전화번호를, 마치 국내에서 건 것처럼 ’010′으로 바꿔 피해자들의 휴대폰에 표시되도록 하는 장비였다. 이씨는 작년 11월 구속돼 현재 수감 중이다. 이씨의 형은 “코로나로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무슨 일이라도 해보려다 범죄에 빠져든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2월부터 두 달 새 전국 52곳에서 이 같은 중계 기기 160여대를 압수했다.
‘마약 배달’에 손대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로 마약 판매가 주로 소셜미디어 등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이를 최종 전달·판매하는 소매책 역할을 하는 알바들이다. 지난해 경찰에 붙잡힌 마약 소매책은 2835명으로 2019년(2298명)보다 23%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소매책 상당수가 불법 알바”라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로 직장에서 정리 해고된 이모(27)씨도,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본 ‘떨 배달 직원 구합니다’란 광고에 연락했다. ‘떨’은 대마초를 가리키는 은어다. 비밀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연락해온 마약 판매상은 ‘배달 건당 3만~25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이씨는 작년 3월 광주광역시의 한 식당 에어컨 실외기 밑에 ‘허브’ ‘엑스터시’라는 마약을 배달했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 1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코로나 사태로 정리 해고된 후 가족 부양을 위해 범행에 가담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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