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제자들’ 봉은사서 하룻밤을 묵은 까닭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1. 4.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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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佛書 읽고 스님과 교류도”
17일 오전 봉은사를 떠나기 앞서 주지 원명(왼쪽) 스님과 인사를 나누는 퇴계 귀향길 재현 행사 참가자들. /김한수 기자

“여러분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퇴계 선생과 우리 역사와 국토의 아름다움을 국민께 알리는 길입니다. 부디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지난 17일 오전 8시 서울 강남 봉은사 법왕루 앞. 승복 입은 스님과 갓·도포 차림의 선비들이 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눴다.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제2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이하 ‘귀향길’)’에 참가한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등 4명이었다. 귀향길 참가자들은 퇴계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도산서원참공부모임 회원들. 지난 15일 오후 경복궁 사정전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16일 오후 봉은사에 도착해 강연회를 갖고 하룻밤을 묵은 후 이날 안동 도산서원을 향해 길을 떠났다.

퇴계 귀향길은 1569년 음력 3월 4일(올해는 4월 15일), 69세에 이른 퇴계 이황이 거듭 귀향하겠다는 청을 올린 끝에 선조의 허락을 받고 한양을 출발해 13박 14일 걸려 고향 도산으로 돌아가는 270㎞ 여정을 재현하는 행사. 아름다운 봄 풍경 속을 걸으며 퇴계의 흔적이 남은 곳에선 문화행사를 이어가는 14일간의 여정이다. 2019년 시작돼 매년 행사를 계획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1년을 쉬고 올해 다시 재개됐다. 첫 행사 참가자들은 귀향길 전 과정을 적은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단행본도 펴냈다.

2019년 '1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 참가자들이 쓴 책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표지.

퇴계는 현재의 옥수역 부근에서 배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충주 탄금대까지 갔고 이후는 말을 타고 죽령을 넘어 도산까지 갔다. 올해 행사 참가자들은 남한강을 따라 걷고 충주호 약 30㎞ 구간은 배로 건너고 다시 걸어 28일 도산서원에 도착하게 된다.

퇴계 귀향길 참가자들이 봉은사에 들른 것은 퇴계가 귀향길 둘째 날 봉은사에서 묵은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 ‘억불숭유의 나라, 조선’에서도 성리학 최고봉으로 꼽히는 퇴계는 왜 봉은사에서 묵었을까. 16일 강연회에서 힌트가 나왔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퇴계가 학자·관리로서 불교를 반대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님들과 교류하며 불교 서적도 구해 읽곤 했다고 말했다. 또 봉은사를 중심으로 불교 중흥에 나섰던 보우 대사가 최대의 후원자였던 문정왕후 사후 전국적으로 유생들의 비판에 직면했을 때 퇴계는 고향의 후학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날 원명 스님은 “퇴계 선생의 이런 정신이 제자들에게 이어진 덕분인지 안동 지역에는 지금도 옛 사찰이 그대로 남아 불교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유홍준·정재숙 전 문화재청장도 참석했다. 유홍준 전 청장은 “역사에 스토리를 입히고, 밝은 마음을 확산하는 이 아름다운 행사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했고, 정재숙 전 청장도 “귀향길 재현은 길 위의 인문학이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매일 유튜브를 통해 귀향길 여정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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