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구직 사이트, 보이스피싱 조직 놀이터로

남지현 기자 2021. 4.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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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환영, 업무수월, 상시모집" 수상한 구인광고 버젓이 올려

‘카톡으로 지원, 기본 일당 11.8만원, 초보자 환영·업무 수월, 상시 모집.’

18일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하자, 이런 내용의 구인 공고 수십 건이 나타났다. 대부분 제대로 된 서류·면접 과정조차 없이, 업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채 많은 수당을 준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이런 알바들 상당수가 범죄와 연루된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유명한 구인·구직 사이트에도 불법 알바 모집 공고가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며 “업무 강도에 비해 고액의 알바비를 준다고 하면 의심부터 해야 하는데,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은 이런 걸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인천광역시에서 가전 제품 수리 기사로 일하던 윤모(29)씨도 지난해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범죄에 휘말렸다. 작년 초 냉장고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 한 달간 꼬박 병상에 있다 퇴원했지만, 코로나로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 복직하지 못했다. 결혼을 앞뒀던 그는 매일같이 구인·구직 사이트만 뒤졌다고 한다. 그러다 작년 4월 ‘부동산 물건 조사 및 채권 추심 업무’란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면접도 없이 주민등록증과 가족관계증명서만 제출했는데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는 “수상해서 회사의 사업자번호도 조회해봤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합법적인 일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직접 해보니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 역할이었고, 결국 경찰에 검거됐다.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구인·구직 사이트들이 ‘불법 알바 연결 창구’가 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찾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이들 상당수는 “유명 사이트에 올라온 것이라 당연히 합법인 줄 알고 지원했다”고 말한다. 구인·구직 사이트들은 ‘걸러내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 관계자는 “자동 필터링(추출) 프로그램을 통해, 등록된 구인 공고에 과거 범죄에 연루됐던 IP(인터넷)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카카오톡 ID 등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한다”며 “프로그램이 놓치는 부분은 24시간 모니터링팀에서 확인한다”고 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이런 방법을 알고, 사업자등록번호를 도용하거나 이전과 다른 연락처를 기재하는 방식 등으로 감시망을 피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사업자등록번호를 조작·도용하면 우리가 수사 기관도 아닌 만큼 해당 회사가 범죄 조직인지 아닌지 현실적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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