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2021. 4.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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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주 근처를 지나는 김에 서울시교육청 앞을 찾아갔다. 4월1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에 성소수자 학생 지원과 보호가 담겼다는 이유로 국민희망교육연대가 설치한 근조화환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기사 등을 통해 소식을 접했고 이에 대항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수십개의 근조화환과 ‘서울교육은 죽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실물로 보자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나, 그리고 다른 성소수자들의 학교 경험이 떠올랐다.

2001년 하리수씨가 TV 광고에 출연하고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알려졌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내가 얼핏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해당 광고 자체는 나한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 소식을 접한 다른 이들의 반응이 더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기에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골적인 혐오표현은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호기심이 섞인 여러 질문들과 희한한 존재인 양 취급하며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위축감을 느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꼭 그 영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이후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지나서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이제는 트랜스젠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학교 교육에서도 일부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아니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국가인권위의 ‘트랜스젠더 혐오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시설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힘들었던 경험이 한 가지라도 있다는 응답이 92.3%에 달했다. 또한 67%가 수업 중 교사의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었고, 46.8%가 자주 또는 가끔 집단따돌림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학교는 결코 안전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곤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활동가는 이를 지적하며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 이상의 꿈을 가질 여유’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월간 복지동향 제245호).

이러한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제도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국 지자체 중에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이 5개 지자체에 불과하다. 특히 성별 정체성을 명시한 것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유일하다. 이런 가운데 2021년에야 성소수자 학생이 명시된 서울시 학생인권종합계획이 마련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며 근조화환을 보내는 이들의 행태가 어이없을 따름이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발견한 것은 근조화환만이 아니었다. 여러 인권단체들이 길 양 옆에 현수막을 게시해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글씨체로 쓰인 현수막과 이에 대비되는 무채색의 근조화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지갯빛 다양성으로 물들여야 할 학교를 단조롭게 만들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정말로 추모해야 하는 것은 다양한 학생들을 획일화시키고 소수자 학생들을 배제시키는 지금의 학교 현실이 아니겠는가. 더 이상 학교가 누군가에게 혐오와 차별, 배제의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더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기를 기대한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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