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패배 이후에 오는 것들
[경향신문]
4·7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훌쩍 지났다. 4월7일을 ‘디데이’(D-day)로 잡고 ‘D-3’ ‘D-2’ ‘D-1’ 하면서 세던 때가 엊그제 같다. 여당의 참패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재·보선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여당의 실패를 먹고 사는 게 야당이다. 여당이 잘하기만 하면 야당은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번 재·보선만큼 여당이 못해 승패가 갈린 선거의 전형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없다. 여당에 대한 찬반 투표나 마찬가지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으로 정점을 찍은 부동산 실정과 외신에도 등장한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Naeronambul), 오만과 독선적 행태 등으로 싸늘해진 민심이 여당에 ‘회초리’를 든 선거였다는 평가가 태반이다. 5년 만의 약세에 우왕좌왕하던 여당은 선거 과정에서 야당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 주력했다. 하지만 열세를 뒤집기는커녕 ‘생태탕’ ‘페라가모 구두’ 등 논란만 남겼다. 여당이 네거티브에 집중하다 진 선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도 아니었던 셈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야당의 잘잘못은 큰 변수가 아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자면 야당은 “그 실패한 거를 받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면 된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2~14일 전국 유권자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 결과(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 ±3.1%포인트)를 보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 ‘민주당이 잘못해서’라는 응답이 61%였다. 반면 ‘국민의힘이 잘해서’라는 응답은 7%에 그쳤다.
문제는 ‘디데이’를 맞은 다음이다. 이미 나온 결과를 되돌리는 건 공상과학(SF)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끌어안고 가느냐다. 패한 쪽이라면 패배의 원인을 선입견 없이 들여다봐야 한다.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성찰과 반성, 그에 따라 혁신과 쇄신을 해야 한다.
“선거라는 게 지고 나면 지는 100가지 이유가 만들어진다.” 책임론을 피하고 싶은 입장에선 내놓을 수 있는 항변일 것이다. 하지만 성찰과 쇄신의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이기도 하다. 패배를 대수롭지 않게 털고 가면 기다리는 것은 더 참혹한 패배다.
‘선거 이후’가 그래서 중요하다. 재·보선 다음날, 민주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지도부 총사퇴를 결정한 타이밍이 늦어진 데다 친문재인계 위원장 등으로 비대위가 구성된 것을 두고 위기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민주당에선 초선 의원을 시작으로 재선·삼선까지 반성문을 썼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내 분위기는 ‘빠르고 질서 있는 수습’으로 기울면서 쇄신 동력은 떨어지는 흐름이다.
실제 지난 10여일간 민주당은 친문 책임론과 조국 사태 성찰, 민심·당심 괴리 등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갇혀 정작 쇄신 논의는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이었다. 지난 9일 20·30대 초선 의원 5명이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 등을 담은 입장문을 내놓았다가 강성 당원들로부터 ‘초선족’ 같은 혐오표현 등을 담은 문자폭탄 공격을 받기도 했다. 16일엔 친문 주류인 윤호중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앞서 말했듯이 재·보선 참패의 원인은 여권 내부에 있다. 특히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이 비등했는데도 내부 경고나 자성은 드물었다. 되레 선거 당일까지 ‘샤이 진보’ 결집을 자신하고, 여야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바짝 줄었다고 장담했다. 흡사 자기 최면을 거는 듯했다.
선거 이후라고 달랐을까. 선거가 끝나자마자 불거진 목소리는 패배를 언론이나 검찰 등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하필 LH 사태가 터져서’ ‘대선을 위한 보약’ 등 선거 패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반면 내부 자성은 ‘배신’으로 좌표를 찍었다.
앞서 인용한 조사에서 이번 선거 결과의 의미를 묻자 정부·여당에 대해 ‘기대를 접지 않고 경고한 것’과 ‘기대를 접고 등 돌린 것’이란 응답이 각각 46%로 같았다. 앞으로 민심의 향방은 정부·여당 하기 나름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전망은 불투명하다. 오히려 ‘회초리’를 든 민심이 ‘레드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회초리를 맞은 아픔에 둔감하게 반응하니 말이다.
김진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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