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서두를 필요없다"던 그가 靑방역기획관

김아진 기자 2021.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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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전담 책임자에 "세계 1등 K방역" 기모란 교수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을 위한 2차 공개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2021.02.09.뉴시스

청와대는 지난 16일 방역을 전담하는 방역기획관에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를 임명하면서 “국민의 코로나 이해에 크게 기여했다”고 임명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기 방역기획관은 그동안 김어준씨 라디오에 50여 차례 출연해 “백신 구입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방역 세계 1등” 같은 발언을 해왔다. 전문가들과 야권은 “방역을 교란했던 인사를 방역 핵심에 세운 것”이라며 이번 인사를 ‘코드 인사'로 규정하고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전문성을 중시해야 할 인사조차 친정부·코드 인사로 채웠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지연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권을 대변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인사를 방역 컨트럴타워로 임명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18일 논평에서 “방역을 교란했던 인사를 방역의 핵심에 세운 것”이라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힘을 빼고 대놓고 ‘정치 방역’ 하겠다는 선언이라는 의료계 우려가 크다. 즉각 임명 철회하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코로나 백신 접종률은 3%대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하지만 기 방역기획관은 작년부터 “이번 코로나19는 메르스와 달리 환자들의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참 다행” “화이자·모더나는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등의 말을 해왔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선 “청와대가 기 교수를 발탁한 건 결국 방역 실패와 백신 확보 실패를 합리화하는 데 골몰하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 기획관이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방역보다는 정부 방역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으로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야당은 기 교수의 남편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작년 4월 총선 당시 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의 양산갑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던 것을 들어 “또 하나의 친정부 보은·코드인사”라고도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 교수는 백신이 아니라 방역을 담당할 비서관”이라며 “1년 전 발언들은 그 당시 기 교수뿐 아니라 많은 전문가도 그런 판단들을 했기 때문에 결격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백신 황당발언 기모란 임명한 靑, 방역마저 ‘코드 인사’ 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은 그동안 정부의 코로나 방역 정책을 홍보하거나 비판적 지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기 기획관은 정부의 백신 확보 지연 논란 당시 “우리나라는 환자 발생 수준으로 봤을 때 백신이 급하지 않다” “화이자·모더나는 가격도 비싸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의료계에서는 기 기획관 임명을 놓고 “여전히 정부와 방역 당국이 친정부 성향이 뚜렷한 일부 전문가 얘기만 듣고 비판적인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하고 있다. 청와대는 “기 기획관은 백신이 아닌 방역을 담당한다”며 백신 관련 발언이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방역과 백신을 분리해 보는 청와대의 인식을 두고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발언

기 기획관은 코로나 발생 초기 김어준씨의 TBS 라디오 방송인 ‘뉴스공장’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작년 2월부터 지난 4월 13일까지 54차례 나왔다. 김씨의 개인 유튜브 채널인 ‘다스뵈이다’에도 10여 차례 출연했다. 김씨는 작년 3월 기 기획관에게 “설명이 너무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칭찬한 뒤 거의 매주 기 기획관을 출연시켰다. 이 기간 기 기획관은 현실과 다르거나 상황을 왜곡하는 발언을 해왔다. “국민의 코로나 이해에 기여했다”는 청와대 설명과 달리 코로나 이해를 방해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 기획관은 작년 2월 정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정책브리핑 사이트에 기고문을 실으며 “이번 코로나19는 메르스와 달리 환자들의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같은 달 CBS 라디오에선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를 보면 중국에서 온 한국인에 의해 2차, 3차 감염이 일어났지, 중국에서 온 중국인에 의해 2차, 3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를 반대했다. 당시 대다수 방역 전문가의 입장과는 달랐다. 비슷한 시기 기 기획관은 정부가 코로나 위기 단계를 상향하지 않는 것을 옹호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코로나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김어준씨가 라디오에서 수도권 확진자 증가세와 관련해 “(보수 단체 집회의) 8·15발이 맞죠?”라고 묻자 기 기획관은 “그렇다”고 동의하기도 했다.

특히 기 기획관은 “백신 수급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20일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은 환자 발생 수준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급하지 않다”고 했다. 12월 10일에도 “다른 나라가 예방접종을 먼저 해 위험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가 고마운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백신 확보 문제는 정부가 잘못한 부분이 아니다” “화이자 백신을 계약해놨는데, 더 좋은 게 나오면 물릴 수도 있다” “가격도 화이자와 모더나가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는데, 아스트라제네카는 4달러 정도밖에 안 한다”는 등의 말도 했다. 김어준씨는 “화이자의 마케팅에 우리가 넘어갈 이유는 없다”며 맞장구쳤다. 기 기획관은 “백신을 먼저 접종했다고 집단 면역이 빠르게 도달한다고 볼 수 없다”는 황당한 발언도 했다.

기모란(오른쪽)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지난해 3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 당시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가 한국에 공동연구를 제안해왔다”며“홍콩, 터키 등에서는 한국이 어떻게 대응했기에 이렇게 (폭증 아닌) 관리 모드로 들어갈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많다”고 말했다. /유튜브

기 기획관의 발언은 여당에 의해 활용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기 기획관 주장을 싣고 “우리 국민이 맞아야 할 백신은 무엇보다 안전해야 한다”고 했다. 친문 성향 지지자들은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보물”이라고 극찬했다.

의료계는 “코로나 상황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인사를 코로나 컨트롤타워로 쓰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기 기획관은 일관되게 정부의 방역 실패를 합리화하거나 정부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며 “정책 실패를 지적하고 교정할 전문가가 절실하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정치 방역 성공을 자축하는 인사” “의학의 정치화에 앞장선 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기 기획관 임명은 향후 방역 실패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코로나 사령탑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 표시라는 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청와대가 질병청에 대한 정치적·행정적 통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당은 기 기획관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고 “기 기획관의 청와대행은 남편이 총선에서 낙선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아니냐”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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