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장애인 숨기는 도쿄, 법만 있는 로마.. 장애 딸 둔 아빠는 날마다 '벽'을 마주했다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2021.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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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볼 때면, 나는 이탈리아로 돌아온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나와 가족은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새로운 나라로 갈 때 마다 나는 가장 먼저 물었다. “여기엔 내 딸을 위한 자리가 있을까?”

이탈리아 로마의 장애아 특수학교 수업 모습. 이탈리아는 장애아들이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자라도록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지난해 9월에 12살이 된 내 딸은 태어나기 전 며칠 혹은 아마도 몇 주 동안 산소 부족을 겪어 심각한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혼자 힘으로는 걷거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모든 일상 생활을 완전히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 글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보느라 겪은 어려움과 고난, 그리고 부모가 되는 일의 기쁨에 관한 기록이다. 오해는 마시길. 우리는 행복한 부모이며 행복한 가족이다. 우리 가족 이야기가, 신체적 장애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종의 내부 보고서가 되기를 바란다.

◇‘평행우주’처럼 장애인 분리하는 일본

딸은 2009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나는 그 전까지 14년쯤 일본에서 살았다. 돌이켜 보면 딸이 태어나기 전에 나는 사는 마을이나 주변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솔직히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나와 가족의 일이 되자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먼저 병원 행정부서에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담당 지역 보건소는 전형적인 일본식 효율성으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지원과 그 방법, 절차와 담당 기관 등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런데 그 시스템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일종의 ‘평행 세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조건으로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평행 세계. 예컨대 나는 도쿄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본 기억이 없다. 극단적으로 경직된 시스템이라고도 느꼈다. 규정된 가이드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한, 모든 일은 관료적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됐다.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무언가를 요청하면 즉각 거절당하거나 고통스러운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효율적이고 필요한 모든 지원이 적시에 이뤄졌지만, 동시에 기계적이었다. 늘 장애 세계와 “비장애(normal)” 세계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우리 가족은 다시 싱가포르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싱가포르에서 우리는 이 모든 걸 다시 시작했다.

◇외국인에겐 문 닫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매우 장애인 친화적인 도시다. 지하철역, 공공 사무실, 대부분의 쇼핑몰, 주거용 건물, 많은 관광 명소에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다. 지하철은 문을 열고 닫을 때 경고등을 켜고, 노인과 장애인은 차도를 건널 때 추가 통행신호를 받으며, 대부분의 버스도 휠체어에 앉은 채 탈 수 있다. 게다가 매우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다른 사람을 잘 도와준다.

보건 제도는 최상급이며, 장애인 지원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다. 유일한 단점은 이런 제도 대부분에 지역 주민들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싱가포르의 여러 직업 비자 중 ‘고용 패스(Employment Pass)’를 갖고 있었는데, 이 비자로는 광범위한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비슷한 수입의 지역 주민들과 같거나, 아마도 더 많은 세금을 내는데도 같은 서비스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우 비싼 사설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딸이 학교에 갈 나이가 돼서야 지역 주민들과 같은 조건으로 정부 지원 전문 센터에 갈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최대 2년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2017년 말 그 2년이 지나게 됐을 때, 우리 가족은 이탈리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법 갖췄지만 실행 안 되는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게 달라질 것임을 깨달았다. 25년 넘게 조국을 떠나 살았고, 마치 이탈리아어를 잘 하는 외국인이 된 것 같았다. 먼저 장애 가족 등록 절차와 가능한 지원을 알아보려 병원 행정부서와 지역 보건 부서를 돌아다녔다. 그제야 ‘기능 장애’(dysfunction)에 걸린 이탈리아에 돌아온 걸 알았다. 일본의 효율성도, 싱가포르의 세세하지만 효율적인 관료주의도 없었다. 짧게 줄이자면, 지역 병원과 보건소에 등록하고 딸에게 필요한 혜택을 받기 위한 서류를 갖추는데 몇 달이 걸렸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른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몰랐던 서비스나 혜택에 대해 알게 된다.

에리카 스테파니 이탈리아 장애인부 장관

한 편으로 더 놀라웠던 것은 대부분 관련 부서에 일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장애 가족을 돕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었다. 마치 오작동하는 제도와 개인들이 싸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사회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공무원들만이라도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내기로 무언의 합의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지금 딸은 이탈리아에 몇 남지 않은 국립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매주 수차례 무료 치료 세션이 제공되며 로마 시가 제공하는 스쿨버스 서비스도 이용한다.

◇진정한 ‘장애인 포용 사회’로 가는 길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일까. 나는 ‘포용(inclusion)’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장애인 포용 사회에 살고 있는가. 짧게 대답하자면 ‘아직 아니다’일 것이다. 비록 대부분 선진국이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진전을 이루었지만, 제도와 그 실행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넓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실제로 이탈리아에는 장애와 장애인의 보호에 관해 진보된 법률 체계가 있다. 마리오 드라기 총리 내각의 에리카 스테파니(49) 장애인부 장관도 서면 인터뷰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특히 법률적 관점에서, 포용 국가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발달된 제도를 갖췄고, 모범 사례로 인용됩니다. 우리 학교 시스템을 보세요. 대부분 특수 학교가 폐지됐고, 이제 교육은 포용 모델에 기반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지방 검사이며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어머니인 이사벨라 코르시니(48)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제도가 실제 어떻게 실행되는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탈리아가 장애에 관해 가장 진보된 법 체계를 가진 건 확실하죠. 하지만 관료주의의 장벽과 제약으로 실행이 잘 안 돼요.” 코르시니는 “관료주의는 살인자(killer)”라고까지 했다. “금지선(red tape)이 너무 많아요. 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행정적 장벽을 뚫고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얻기 위해 매일 싸워야 하죠. 진정한 ‘포용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일본 도쿄에 사는 30대 초반의 소아 치료사 사야코 츠치야 역시 일본이 포용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일해본 그는 “필요한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특수 지원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다. 도쿄와 오사카가 이렇다면, 작은 도시나 마을의 상황은 훨씬 더 나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이후 교육부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위에서 아래를 통제하는 ‘톱-다운’ 국가인 일본에서 교육부 지침은 즉시 학교들에 하달됐어요. 문제는 학교가 이 지침을 실행하고 장애 아이를 가진 가족과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 알리는데 시차가 크다는 거죠.”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자

그렇다면 포용 사회로 가기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코르시니는 “교육이 열쇠”라고 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쳐야 해요. 다른 장애 아동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감정과 염원을 갖지만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 뿐임을 알 수 있는 교육 활동이 학교에서 이뤄져야죠.”

츠치야도 학교가 통합과 포용으로 가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과 민간 부문, 학계 사이에 더 많은 상호작용이 필요해요. 2019년에 츠쿠바 대학이 지자체 및 지방 기업들과 몇 가지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비슷한 프로젝트가 큐슈와 오사카에서도 진행 중입니다.” 그는 “하지만 포용은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가속도가 붙은 일본 학교의 디지털화, ‘기가스쿨’에 대해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초등학생에게 태블릿을 지급하는 계획에 가속이 붙었고, 집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다면 지역 당국이 모바일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방치되는 아이가 없도록요.”

스테파니 장관은 좀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목표는 장애인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사회의 구성원이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장려해야죠.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 ‘장애 관리자’ 제도 도입을 촉진할 계획입니다.”

◇“모든 이의 존엄을 각자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그렇다면 진정으로 포용적인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지방 검사 코르시니는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죠. 장애인을 사회적 부담이나 불행으로 여겨선 안 됩니다. 그 다음은 장애인과 그 가족 역시 비장애인 가족처럼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법 제도가 효과적으로 실행돼야 합니다. 공공 장소에 모두가 갈 수 있고, 장애인이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독립적인 삶을 살며, 사회에 기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는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의 권리와 존엄성을 각자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사회여야 한다”고 했다.

츠치야는 사람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을 구현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한 치수의 옷을 입을 수 없듯, 장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요. 이상적인 사회는 개개인의 특수한 필요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충족되는 사회겠지요.”

스테파니 장관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진정한 포용 사회는 일상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사회입니다. 복지 서비스의 표준화를 폐지하고 개인의 삶의 다른 측면을 고려하는 맞춤형 개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다. 나는 포용 사회란, 여러분이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길을 가다 돌아서서 또 다른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를 쳐다보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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