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10년간 대한민국에 '반도체 전략'이 없었다
과거 50년간 반도체의 패러다임을 결정한 것은 ‘무어의 법칙’이었다. 반도체 성능이 1.5년마다 2배씩 좋아진다는 법칙이다. 복리 이자처럼 15년이 지나면 1000배, 30년이 지나면 100만배, 그리고 45년이 지나면 10억배가 좋아졌다. 지금 우리는 2만~3만원에 100G비트 메모리를 사서 쓰고, 1초에 10억 비트의 정보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작아진 10나노급 반도체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 ‘무어 패러다임’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원자만큼 작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더 이상 값싸고 좋은 IT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4차 혁명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미래를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무어의 법칙을 좀 더 밀고 나가려는 진영과, 무어의 법칙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작고 빠르고 값싼 IT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진영이다.
첫째 관점을 밀고 나가는 데 필요한 천문학적 투자와 연구·개발을 감당하는 회사를 가진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 미국, 대만 정도가 남았다. 유럽, 일본도 나가떨어졌다. 미국마저도 위태하다. 여기에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시작한 것이 8년이 되어간다. 반도체 경쟁에서 낙오되는 경우, 4차 혁명의 지배력을 놓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미국 정부의 최근 대응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관점은 무어의 법칙 대신 우회로를 찾는 것이다. 실리콘 반도체에 다른 물질을 융합함으로써, 자동차용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스마트폰에 초음파 칩, 코로나 진단 칩을 붙일 수 있다. 빛과 융합함으로써 데이터 센터의 전송 속도를 초당 400G비트 이상으로 쉽게 올릴 수 있다. 반도체 회사가 아닌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 반도체 칩 설계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도 자율주행용 컴퓨터 반도체 설계를 하고 있다. 자동차를 운송 수단에서 개인,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신하는 장치로 보기 때문이다.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그리고 파운드리(위탁 생산)로 나누어 반도체 부품을 가져다 끼워서 시스템을 만드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아예 반도체와 강력한 패키징 기술을 융합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짧은 기간에 압도적인 세계 1위가 됐다. 시스템 반도체는 약세지만, 세계적으로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모두 1위하는 나라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손실을 보더라도 끈기 있게 투자한 기업가 정신과 정부 지원, 그리고 우수한 인력 풀이 이런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메모리 반도체 국가 사업이 끝난 이후 지난 10년간,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에서 ‘반도체’가 빠졌다. 회사에서 돈을 많이 버는데, 왜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느냐는 이유 때문이다. 반도체 연구비가 없으므로 대학원생이 없고, 교수도 뽑지 않았다. 이번에 정부가 지능형 반도체 연구·개발 사업으로 5년간 1조원을 지원한 것은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로선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맞이하는 때가 바로 기회다. 전 세계에서 드물게 10nm 이하 반도체 기술도 있고, 자동차, 컴퓨터, 가전, 스마트폰도 건재하다. 이제 서둘러 국가의 반도체 전략을 짤 때다. 반도체는 이미 부품이 아니라, IT 시스템 아니 전체 국가 산업, 안보를 결정하는 기술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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