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베를린 월세 상한제 실패한 까닭

손진석 파리 특파원 2021. 4.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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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치솟는 월세를 잡으려 월세 상한제를 실시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2018년 베를린에서 '투기에 반대한다'는 등의 플래카드를 내건 장면./EPA 연합뉴스

전례 드문 임대료 통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 베를린의 월세 상한제가 14개월 만에 중단됐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5일 지방정부의 권한 남용이라며 이 제도를 무효라고 결정했다. 작년 2월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이 뭉친 베를린의 좌파 연정(聯政)은 월세를 5년간 동결시켰고, 표준 임대료를 정해 그보다 20% 이상 비싼 월세는 강제로 인하하게 했다.

이런 우격다짐식 가격 통제는 헌재가 제동을 걸기 이전에 이미 ‘작동 불가’ 판정을 받았다. 집주인들이 월세를 놓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월셋집 공급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서민들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났다. 지난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실험은 실패했다”고 했고, 미국의 블룸버그는 “재앙으로 판명됐다”고 보도했다.

좌파 정치 세력이 주택 시장을 통제하고, 그에 따른 역풍을 맞았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베를린 지방정부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택 시장 통제를 주제로 이 분야 전문가인 콘스탄틴 콜로디린 독일경제연구소(DIW) 연구위원과 최근 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콜로디린 박사는 “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 통제가 얼마나 부작용이 큰지 몸소 체험한 사람”이라고 했다. 올해 48세인 그는 소련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부를 마친 다음 스페인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독일에서 대학 교수 자격(Dr.habil)을 얻었다.

그는 “소련과 동유럽은 국가가 집을 지어 나눠주는 극단적인 주택 통제까지 죄다 해봤다”며 “주택 시장을 사회주의로 접근하면 필패한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지 않느냐”고 했다. 대표 사례가 소련의 ‘흐루숍카’다. 1950~60년대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보급한 아파트를 말한다.

흐루숍카는 값싼 패널을 이어 붙인 저층 아파트였다. 건축비를 줄이느라 천장은 낮았고 벽이 얇아 방음이 안 됐다. 흐루숍카에서는 카펫을 바닥이 아니라 벽에 붙이고 사는 진풍경이 흔했다. 난방이 엉망인 탓에 벽면이 차가워지는 걸 막고, 옆집 소음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콜로디린 박사는 “정부가 주는 집은 질이 좋을 수 없다”며 “어떤 집에서 사느냐를 선택하는 자유가 박탈되며, 공급은 정체되다가 결국 중단된다”고 했다.

집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비싼 재화다. 인간이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물건과 달리 정부가 개입해 특별히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솔깃할 수 있다. 그게 인간적이고 정의롭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이끌릴수록 사회주의식 주택 시장 통제가 실패를 거듭했다는 교훈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시장에 맞서 백전백패의 싸움을 벌이는 방향으로 무모하게 돌진하게 된다. 집 없는 서민을 돕고 싶거든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기본부터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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