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칼럼]우리는 지금 쇄신과 개혁을 보고 있는가?
[경향신문]
4·7 재·보선은 문재인 정부의 참패로 끝났다. 명백하게 예견된 일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작년 말까지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언필칭 검찰개혁의 실상이 진정한 권력 분산이 아니라, ‘윤석열 죽이기’와 ‘부패한 우리 편 지키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LH 사태 역시 그 밑바닥에는 ‘부패한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부정부패와 불의, 그것이 재·보선 참패의 진정한 원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쇄신과 개혁’을 천명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쇄신과 개혁을 보고 있는가? 아니다.
왜 아직도 박범계 장관과 이용구 차관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왜 아직도 한동훈 검사장은 검사의 직에 복직되지 않고 있는가? 왜 아직도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공석인가? 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중요한 권력기구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당사자가 법무법인 LKB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습관적으로 살펴보는가?
경제 쪽도 ‘개혁 부재’ 상황은 매한가지다.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 쪽에 달라붙었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최고경영자를 청와대로 초치한 후 “기업과 정부가 한 몸 돼야 할 것”을 외쳤다. 홍남기 부총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인 16일, 경제단체장 간담회 자리에서 메모리 반도체 설계 및 제조에 대해 세액 공제를 검토하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시행 및 복수의결권 입법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세액 공제는 사실상 기업에 현금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이 돈이 없어서 국민 세금을 더 넣겠다는 것인가?
박범계 장관·이용구 차관은
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왜 문 대통령은 대기업들에
“기업과 정부 한 몸”이라 하는가
이것은 내로남불·정경유착일 뿐
홍 부총리가 간담회를 가진 16일, 삼성전자는 총 13조1000억원대의 사상 최대 배당금을 풀었다. 그 덕분에 4월 말까지 상속세를 내야 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약간의 현금 갈증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SK하이닉스 역시 현금과 단기 투자자산 등의 합계액이 3조원을 넘는다. SK는 새 공정거래법 시행 이전에 하이닉스의 이익을 제국 건설에 활용하고 총수의 지배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최근 SK텔레콤 기업분할 계획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들이 돈이 없다고?
벤처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건 복수의결권 도입은 역설적으로 대다수 벤처업체와는 무관하다. 필자의 말이 아니라 벤처기업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 진술인이 시인한 내용이다. 그걸 밀어붙이겠다고?
문재인 정부는 삼성, 현대차, SK 등 소위 ‘구재벌’들과만 친한 것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신흥재벌’들과 더 긴밀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빨간 깃발법을 운운하며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카카오라는 ‘재벌에게 은행을 바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네이버는 온갖 특혜로 점철된 인터넷전문은행도 마다했다. 그래서 지금 국회에는 윤관석 정무위원장 명의로 발의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종합지급결제업자라는 제도를 신설해서 이들이 이용자에 대해 개별 계좌를 개설하고 후불제를 통해 소액 대출도 해주고, 지급결제와 송금도 하고 외국환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규제는 빼주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금융위 실무 관료의 해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전자금융업자와 거래하는 개인은 금융상품의 구매자가 아니라 선불충전서비스의 이용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자금융업자는 신용 창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동태적 적격성 심사도 빼줘야 한다. 또 이들은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금산법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술 마시고 운전도 하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쇄신과 개혁의 모습이 아니라, ‘내로남불과 정경유착’의 모습일 뿐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국민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서는 잘못된 과거에서 탈피하고 진정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쇄신의 신호탄은 박범계 장관과 이용구 차관을 경질하고 한 검사장을 복직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구부러진 과거를 가감 없이 인정하고 이를 곧게 펴는 최소한의 조치다. 삼성 등 구재벌과 네이버 등 신흥재벌과 거리를 두도록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빨리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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