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혁신 자랑한 '드라이브스루 환전소'.. 1년간 손님 0명, 결국 철수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지하 2층 주차장에 설치됐던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환전소’가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금융위원회가 ‘금융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했던 새로운 금융 서비스 가운데 사업을 접는 첫 번째 실패작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고객들에게 “5월 3일 드라이브스루 환전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공지했다. 차를 타고 간편하게 환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업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우리은행 본점 주차장에 딱 1곳 설치됐고, 환전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규제를 풀어준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은행 이외의 장소에 환전소를 설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안내 표지판도 제대로 없어 우리은행 직원들조차 “그런 게 있었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다.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 상자라는 뜻으로, 아이들이 장난을 하듯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만들어 보려고 도입한 제도다. 2019년 4월부터 시작돼 142건이 지정됐다.
실적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규제에 묶이고, 노조 반발 등 장애물에 치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 샌드박스를 시작할 때 약속했던 규제 개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 규제 샌드박스에 선정된 사업과 관련된 규제 67개 중 법·시행령 개정으로 정비가 끝난 규제는 13개(19.4%)에 불과하다.
◇드라이브스루 환전소 환전 건수 0건
우리은행 드라이브스루 환전소가 실패한 사정은 이렇다. 원래는 환전 이용객이 많은 공항 근처에 우선적으로 드라이브스루 환전소를 설치한 뒤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돈을 관리할 금고를 설치하고, 24시간 보안 출동 시스템 구축 등 보안 수준도 높여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혔다. 여기에 현금 도난 시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년여간 표류하다 작년 5월 겨우 한 곳 설치했는데, 관광객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생소한 우리은행 본점 지하주차장이었다. 가뜩이나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끊긴 상황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환전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1년간 환전 건수가 0건이었다.
한 시중은행 혁신 금융 담당자는 “드라이브스루 환전소는 실제 사업 타당성이나 실행 가능성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금융 샌드박스 실적을 맞추기 위해 급조된 느낌”이라며 “새로운 금융 서비스 도입에는 여러 난관이 있는데 그런 점들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샌드박스 1호는 노조에 발목 잡혀
그동안 샌드박스로 지정된 사업 142건 중 다음 달까지 규제 유예 기간(2년)이 만료되는 서비스는 26건이다. 이 중 16건은 유예 기간이 연장됐고, 9건은 아예 규제가 완화돼 샌드박스 없이도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금융 혁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샌드박스 가운데 처음 허가를 받아 1호로 불리는 ‘KB금융 리브엠’은 노조의 반대로 사업을 접을 뻔했다. 지난 2019년 5월 지정돼 2년이 지나 연장이 필요했는데 “사 측이 실적 압박과 과당 경쟁을 조장했다”며 노조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통신료가 저렴한 알뜰폰을 판매한 뒤, 앞으로 확보하게 될 통신 데이터로 다양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시작한 사업인데 노조는 판매 부담이 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우여곡절 끝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2년 연장을 결정했지만, “직원 간 실적을 공개하지 말라” 등 노조 요구를 들어준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사업 위축 우려가 나온다.
신한카드가 계좌에 잔액이 없어도 신용카드를 통해 개인 간 송금을 할 수 있도록 개발한 ‘마이송금서비스’는 핀테크 업체와 분쟁에 휘말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혁신 금융 서비스 사업자로 지정된 스타트업 빅밸류도 작년 5월 감정평가사협회에서 고발을 당해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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