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날 살렸다" 장르물 첫 도전..이제 시작일 뿐

김지혜 기자 2021. 4. 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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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괴물' 심나연 PD

[경향신문]

장르적 재미·리얼리티 사이
던진 단서 잘 회수하려 노력
장기 실종자와 가족에 집중
직접 메시지 전달 결말 선택

열 손가락의 첫 마디만 남기고 실종된 쌍둥이 동생, 살인자라는 누명을 썼던 오빠는 경찰이 돼 이후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강박적으로 추적한다. ‘괴물’은 분명 연쇄살인범을 지칭하는 말일 테지만, 그를 쫓는 경찰 역시 때로 괴물의 면모를 보인다. 경찰은 20년의 추적 끝에 범인의 꼬리를 잡는다. 많은 시청자들이 복수의 쾌감을 열망할 것이다. 제작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난 10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잘 짜여진 ‘장르물’의 문법을 따라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에 도착했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굵직한 형사물이자 인물들의 내밀한 속내를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였다. 극악무도한 범인을 ‘괴물’로 몰아붙이는 뻔한 선악의 갈등구조에 기대지 않았다. 살인의 전모를 밝히고서도 끝내 사적 복수의 쾌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복수의 칼을 직접 쥐여주는 대신, 법적 처벌로 20년간의 추적극을 끝맺은 <괴물>의 결말에 대한 생각을 지난 15일 심나연 PD가 화상 인터뷰로 밝혔다. “작품의 결말에 대해 모든 작가와 감독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드라마 내내 저희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돌아볼 때 김수진 작가님이 정하신 결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한여름의 추억> <열여덟의 순간> 등 멜로 드라마를 주로 연출해온 심 PD에게 장르물인 <괴물>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꼭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았어요. 글의 느낌을 영상으로 잘 구현하기만 하면 분명 마니아층이 뚜렷한 드라마가 되겠다는 나름의 확신과 자신감으로 시작했죠.”

<괴물>은 진실을 가린 흑막을 걷어내는 서사적 쾌감과 함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상실의 상처 등 날것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드러내며 현실적 공감까지 불러일으킨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인터뷰 내내 심 PD의 답변도 ‘장르적 재미’와 ‘현실적 표현’ 사이를 넘나들었다. “심리 스릴러 장르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서를 던지고 잘 회수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잘 만들어졌다는 국내 스릴러 드라마들, <비밀의 숲>이나 <시그널> 같은 작품들을 여러 번 돌려 봤어요. 결국 스릴러적인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감정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 덕분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심나연 PD(왼쪽)가 <괴물> 촬영 현장에서 이동식 역을 맡은 배우 신하균과 대화하고 있다. JTBC 제공

기획 단계에서부터 심 PD를 포함한 제작진이 나눴던 고민 중 하나 역시 <괴물>의 이야기 속에 혼재된 리얼리티와 장르적 성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였다. 현실의 공간과 사건을 환기시킬 수 있는 ‘연쇄살인’이라는 소재를 제작진은 ‘만양읍’이라는 가상의 공간, 그 속에서도 ‘만양 정육점’이라는 지나치게 낡고 폐쇄적인, 그러면서도 정감 넘치는 판타지적인 장소를 중심으로 풀어나간 것은 그 고민의 결과다. “만양 정육점처럼 판타지스러운 공간 연출은 장르물의 성향을 많이 따랐고, 경찰의 수사 방식 등은 작가님이 조사한 현실적인 측면을 많이 참조했어요. 재개발이라는 소재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 역시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고요. 결국은 리얼리티와 판타지 측면 두 가지를 잘 섞어서 드라마적으로 <괴물>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죠.”

“대한민국에서 소재를 알 수 없는 성인 실종자는 단순 가출로 처리됩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시면 반드시 가까운 지구대 파출소에 신고 부탁드립니다.” 최종회 마지막 장면, <괴물>은 시청자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주인공 이동식(신하균), 한주원(여진구)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심 PD는 “극의 몰입을 자칫 저해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작품 전반에서 실종과 실종법에 대한 이야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왔기 때문에 결말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관심을 환기하는 방식을 택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비틀린 욕망과 내밀한 상처를 그려낸 배우들의 열연, 최백호 특유의 음색이 이끄는 진득한 음악 등 <괴물>을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괴물>을 모두가 공감하는 ‘용두용미’ 드라마로 만든 것은 작품의 소재가 된, 장기 실종자와 그 가족들의 현실에 대한 끈질긴 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괴물이 날 살렸다.” 심 PD는 “감독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시작점 같은 드라마”라며 <괴물>을 마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괴물>을 시청하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될 수 있다면 도대체 우리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저지른 실수가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것, 덮으면 덮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결국엔 스노볼처럼 커져서 나를 괴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괴물>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저지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누군가 20년간 고통받는 상황이 벌어졌잖아요. 내 스스로 작은 실수를 만들지 않으려고, 덮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정화하는 태도가 괴물이 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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