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도 뒤도 새로운, K8 나가신다..길을 비켜라, 그랜저

김준 선임기자 2021. 4. 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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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설움 날릴 기아의 야심작

[경향신문]

기아 제공

기아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오랫동안 ‘2인자’로 살아왔다. 판매 대수나 주가, 브랜드 지명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현대차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다. 인수·합병된 회사이다 보니 현대차그룹에서도 눈칫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기아가 생산한 차는 최신 기술 적용은 물론 남양연구소의 신차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현대차에 종종 우선권을 빼앗기곤 했다.

■ ‘기아의 한’ 풀어줄 K8

10년 동안 그랜저에 밀린 K7
이름·배기량·디자인 싹 바꾸고
4륜구동 더해 역대 최강 변신

현대차그룹의 ‘콩쥐’ 기아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를 제치고 판매 1위로 올라선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형 세단 K5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만7869대가 팔리며 쏘나타(1만4031대)를 눌렀다.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도 같은 기간 2만782대가 팔려 1만1368대를 기록한 싼타페를 제압하고 있다. 현대차 핵심 모델을 ‘도장 깨기’하고 있는 기아도 판판이 녹다운당하는 ‘넘사벽’이 있다. ‘그랜저’다. 2009년 K7을 출시했지만 이듬해인 2010년을 빼고는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랜저를 꺾지 못했다. 올해 성적은 더 참담하다. 3월까지 그랜저는 2만5861대가 팔린 반면, K7은 고작 5711대만 팔리며 격차가 더 벌어졌다.

기아가 나날이 초라해지는 K7 성적표를 대역전시키겠다는 각오로 만든 차가 K8이다. 차 이름을 바꾸고, 배기량도 3ℓ에서 3.5ℓ로 늘렸다. 그랜저에는 없는 사륜구동 장치를 달아 역대 최강 스펙으로 재탄생한 K8은 과연 기아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첫인상에서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우 격인 K5만큼 디자인이 젊다. 범퍼 일체형의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 슬림한 헤드램프로 이뤄진 전면부는 40대와 50대는 물론 30대 젊은 소비자도 반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옆모습은 클래식하다. 긴 후드(보닛)와 짧은 트렁크, 루프(지붕)에서 트렁크 쪽으로 떨어지는 패스트백 디자인, 앞바퀴 굴림이지만 상대적으로 짧게 처리한 프런트 오버행(범퍼와 앞바퀴축 사이의 거리)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잘 빠진 쿠페를 떠올린다. 뒷모습도 감칠맛이 있다. K8 외모는 아무리 점수를 박하게 줘도 그랜저를 가볍게 따돌린다.

주행 성능은 어떨까. 3.5ℓ 가솔린 시그니처 트림(두 바퀴굴림)을 시승했다. 시동이 걸려 있었는데, 도어를 닫으니 엔진 소음 대부분이 차단된다. V6 3.5ℓ 가솔린 엔진은 한없이 부드럽다. 회전수가 높아지면서 듣기 좋은 소리가 음악처럼 흐른다. 전기차에서는 들을 수 없는, 귀를 즐겁게 해주는 엔진음이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스티어링 휠(운전대)의 무게감이 이전 모델과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고성능차처럼 묵직해지고 고급스러운 질감이다. 기아에 확인하니 랙 타입 전기식 스티어링 장치의 강성을 높였다고 한다. 기어비도 손을 봐 운전대를 돌리는 족족 차머리가 따라온다. 이전 모델보다 방향 전환이 수월하고 좀 더 역동적인 움직임도 가능하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게이트를 통과하기 직전 옆 차량이 급차선 변경을 하면서 시승차 측면을 들이박을 뻔한 적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어 사고를 피했는데, 찰나였지만 운전자가 의도한 조타량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앞바퀴에 전달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K8 헤드램프와 안개등
K8 실내
K8 메리디안 스피커 기아 제공

■ 자연흡기 V6 엔진의 여유

서울 광장동을 벗어나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K8 하체가 ‘말벅지’로 변한 것에 놀랐다. 단차가 있는 교량을 지나거나 맨홀 뚜껑에 올라서도 흐느적거리지 않는다. K8은 서스펜션 구조와 강성이 개선된 현대차그룹의 3세대 플랫폼을 사용했다. 특히 서스펜션은 앞바퀴 캐스터 각도를 조절하고 뒷바퀴 암의 배치도 바꿔 고속안정성과 승차감을 개선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로 이전 모델보다 역동적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인터체인지를 거칠고 빠르게 진입해도 조타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담백하게 돌아준다. 웬만큼 높은 속도로 달릴 때도 고속주행 안정감이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국산 대중차로는 최고 수준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탄한 하체에 걸맞게 ‘심장’도 강하다.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36.6㎏·m를 내는 3.5ℓ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은 순간 과도한 힘이 터져나와 운전자를 놀라게 하는 터보엔진과 다르다. 가속페달을 밟은 답력만큼의 출력을 더도 덜도 없이 변속기에 전달한다. 이런 성향을 갖춘 심장이다 보니 K8의 가속력은 폭발적이진 않지만 저·중·고속 전 영역에서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K8의 변속 능력을 칭찬하고 싶다. 운전 내내 변속이 되는지 깨닫지 못할 만큼 충격이 작았다. 그렇다고 변속이 느린 것도 아니다. 시승차인 3.5ℓ 가솔린과 3.5ℓ 액화석유가스(LPI) 모델에는 ‘투 체임버 토크 컨버터’가 적용된 신형 8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갔다. 토크 컨버터는 엔진에서 발생한 힘을 변속기 기어에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체임버를 하나 더 추가해 변속 충격을 줄였다. 이 자동변속기는 패들 시프트로 제법 과격하게 변속을 해도 콜롬비아 수프리모 커피처럼 마일드하게 작동한다. 이만하면 주행성능도 K8의 압승이다.

■ 계기판과 카오디오는 아쉽다

방향 전환 빨라 역동적 주행감
밋밋한 계기판 디스플레이와
카오디오 라디오 음질 아쉬워

K8은 센터 페시아와 센터 콘솔 앞부분 조작계를 대폭 개선하고, 변속기도 레버 타입에서 다이얼 방식으로 변경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버튼식과 다이얼 방식의 전자식 변속기를 사용하는데, 다이얼 방식이 훨씬 직관적이고 조작도 편하다. 이 때문인지 현대차도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80과 GV80에는 다이얼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다이얼식 변속기와 오토홀드 버튼 등이 위치한 센터 콘솔 전면부는 스키 점프대처럼 앞쪽을 높여 조작 편의성이 한결 높아졌다. 조작 버튼의 성형 상태나 주변 하이그로시 패널의 가공도 흠잡을 데가 없다. 센터 모니터 하단에 배치한 에어컨 조작 공조장치는 터치식으로 변경됐다. 팬 모양 아이콘을 터치하면 풍량 세기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공조기능을 터치식으로 바꾸지 않고 손이 자주 가는 온도 조절은 다이얼식을 채택해 편의성을 사수했다. 경쟁 모델 그랜저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넉넉한 실내공간이다.

특히 뒷좌석 공간이 ‘운동장’처럼 넓다. 그랜저와 비교하면 K8 뒷좌석은 헤드룸이 조금은 부족하다. 천장이 트렁크 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패스트백 스타일 때문이다. 대신 레그룸이 넉넉해 키가 큰 성인도 뒷좌석에 불편하지 않게 앉을 수 있다. 이만하면 사용자 편의성도 K8이 그랜저보다 한 수 위거나 대등한 수준이라 판단된다.

그렇다고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계기판은 그래픽만이라도 바꿨으면 좋겠다. 원가 절감을 위해 쏘렌토, K5와 동일한 제품을 사용한 것 같은데, 싼티가 나고 밋밋해 K8의 화려하고 섬세한 인테리어와 엇박자를 이룬다. 운전자의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장치인 만큼 차의 품격에 맞는 디스플레이와 그래픽이 제공됐으면 한다.

기아가 K8을 소개하면서 메리디안의 기술이 들어갔다고 잔뜩 힘을 준 오디오 음질에도 할 말이 좀 있다. 브리티시 사운드 대표주자 중 하나인 메리디안은 음원을 디지털 처리하는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 부문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술 덕분에 K8 카오디오는 디지털 소스 재생 능력이 좀 더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하지만 라디오 재생 음질은 아쉬웠다. FM 방송을 통해 클래식이나 대중음악, 뉴스 등을 듣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은데, 스피커 에이징이 덜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해상도가 높지 않고, 스테레오 분리도도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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