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정책 '속도'보다 '안정적 삶' 우선 추진
[경향신문]
70년대 ‘사회와의 분리’ 정책
집단 수용 대신 ‘자유’는 박탈
2009년 인권 차원 탈시설 운동
‘소망의집’ 탈시설 20년 걸려
코로나19로 즉각 탈시설 요구
정착금·활동지원서비스 등
시, 다양한 인프라 구축 진행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송파구 장애인 집단거주시설 신아재활원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총 3개 동에 114명의 장애인이 집단생활을 하는 신아재활원은 코로나19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거주 장애인 56명, 종사자 20명 등 총 7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3월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일까지 보름간 천막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구호는 “즉각적인 탈시설”이었다.
비장애인에게 ‘탈시설’이라는 용어는 낯설고 생소하다. 장애인 탈시설은 장애인이 ‘시설에 갇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한다.
1970~1980년대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명확했다. 거리의 부랑인으로 살아가는 장애인과 고아 장애인들을 먹이고, 재워주는 대신 지역사회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으로 제정되면서 장애인 집단거주가 복지의 개념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수백명이 모여 사는 대형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집단수용의 목표는 ‘장애인 생존권 보장’이었다. 장애인들은 숙식과 보살핌을 받는 대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다. 삶의 ‘주체’가 아닌 보살핌을 받는 ‘객체’로 존재한 셈이다.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2011년 ‘장애인 거주시설 정원은 30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이 이뤄졌다. 서울시 역시 2009년부터 장애인 탈시설을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2013~2020년 8년간 861명의 시설장애인이 시설을 나왔다. 서울 전역에 65개의 자립생활주택과 166개의 장애인지원주택을 설치했다. 지난 3월에는 탈시설을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로 명문화하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가칭)’를 올해 안에 전국 최초로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장애인이 주체가 된 ‘사람’ 중심의 탈시설을 위한 각종 연구도 진행 중이다.
장애인 복지시설인 ‘교남소망의집’은 1982년 6월 서울 강서구 까치산로에 문을 열었다. 100여명의 고아 장애인들이 집단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기노화 장애인 거주시설 등을 제외하고 24명만이 시설에 남아 있다. 정부가 ‘탈시설’을 정책으로 삼기 이전부터 자발적인 탈시설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황규인 원장은 “장애인은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는 최대한 사는 게 맞다. 아무리 시설에서 잘해준다고 해도 내 집보다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황 원장의 신념은 소망의집 거주자들의 ‘지역사회로의 거주 이전’으로 이어졌다. 2003년부터 단계를 거쳐 그룹홈, 1인 독립주택, 자립지원형 그룹홈 등 다양한 형태의 탈시설을 시도했다.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심지어 “각서를 쓰고 들어와라”라는 주민들도 있었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장애인 입주를 반대했던 주민들도 어느 순간 “(○○총각이) 분리수거를 참 잘한다”며 말을 건네는 등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문제는 속도였다. 소망의집 입소자 중 52명이 탈시설을 하는 데 꼬박 20년이 걸렸다.
장애인 1명이 탈시설을 하려면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황 원장은 “(복지)시설은 내부에 식당, 지원행정실, 의무실, 재활사업실, 프로그램실, 물리치료실, 직업체험장 등이 모두 모여 있지만 탈시설은 장애인의 거주지 주변으로 이 모든 시설들이 이용 가능한 범위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현재 탈시설장애인퇴소자 정착금 지원부터 장애인활동 지원서비스, 중증장애인 낮활동 지원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탈시설 장애인이 시설 재입소를 하지 않는 ‘탈시설’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신아재활원 탈시설 작업도 시작했다.
시 관계자는 18일 “장애인들이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형 탈시설의 목표”라며 “다양한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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