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공동성명에 '대만' 52년 만에 명시..노골적 중국 견제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2021. 4. 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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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스가, 취임 후 첫 정상회담

[경향신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장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로즈가든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홍콩과 대만, 남·동중국해 등 민감한 현안 일일이 열거
5G·반도체·지재권 등도 “공동 대응”…중 “내정간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첫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정면 겨냥했다. 두 정상은 홍콩과 신장, 남·동중국해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안들을 일일이 열거한 데 이어 공동성명에서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며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 및 세계 평화와 번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우리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억제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동중국해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나 남중국해에서의 불법적인 해상 활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남·동중국해에서 지역 패권을 강화하려는 중국에 맞서 공동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국의 일본 방어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일본의 실효적 지배를 약화시키려는 모든 행동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양측은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줄줄이 거론했다. 두 정상은 “대만해협 전체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면서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가 양국 정상 공동성명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두 나라가 중국과 수교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969년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 “대만 지역 평화와 안전 유지도 일본의 안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한 게 마지막이었다.

두 정상은 미·중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5세대(5G) 통신망과 반도체,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분야 연구·개발과 투자에 협력하고,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 기술이전 등 불공정 무역 관행에도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동성명은 도쿄 올림픽 개최와 관련해서는 “바이든 대통령은 올여름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스가 총리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의 상당 부분이 중국 견제에 맞춰진 셈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도 이번 회담의 최고 의제는 중국이었으며 미국의 중국 견제 노력에서 일본의 중심적 역할이 강조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정부 외교정책의 무게중심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으로 옮겨졌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국 외교부는 정상회담 직후 입장문을 통해 “대만과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고, 홍콩과 신장 사무는 완전한 중국 내정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섬과 주변 해역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다”며 “미·일 공동성명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이 소집단을 만들어 집단 대결을 선동하는 것은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미·일 동맹의 폐해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하며,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가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센카쿠열도 방위 문제와 도쿄 올림픽 등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냈지만, 대만 문제까지 공동성명에 명시하며 외교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케우치 유키오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아사히신문에 “스가 총리에게 각오가 있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이번에 중국에 대한 의사 표명은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할 수 있다”면서 “중국의 보복 조치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중 충돌에 일본이 말려들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스가 총리는 총선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과의 일대일 대화의 시간을 달라고 고집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미국은 스가 총리에게 첫 대면 정상회담의 기회를 주는 대신 중·일관계에 부담이 될 조치들을 요구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한 대만 문제를 공동성명에 명시하는 것을 두고 양측은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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