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의 매력은 다양성.. 낼 수 있는 소리에 한계 없어"
평소엔 뒤편에 놓이던
심벌즈·마림바는 물론
소 방울 등 17종 등장
"혼자 연주?" 객석 웅성
피아노 반주 '알바' 갔던
타악기 학원서 입문 권유
獨 유학 거쳐 기회 잡아
"홀로 무대 힘들지만
즐겁고 희열 느껴져"
모두의 관심 속에 무대에 오른 젊은 연주자는 스틱을 수직으로 드럼에 떨어뜨리며 만들어내는 소리로 24분 남짓 이어진 연주를 시작했다. 무대에 등장한 타악기는 스네어드럼, 모쿠쇼, 우드블록, 암글로켄, 라이언로어, 톰톰, 탐탐, 우든드럼 등 총 17종. 심지어 자갈과 소 방울, 프라이팬도 엄연한 악기다. 연주자는 끊임없이 타악기 사이를 움직이면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헤드 마이크까지 착용한 상태로 알 수 없는 말까지 재잘거리거나 읊조리고 때로는 외친다.
올해 68세인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도 지난 15일 처음 연주했다는 이 음악은 헝가리 음악가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2012년 작곡)’. ‘서울시향 정기연주’라는 큰 무대에서 소리를 만드는 가장 오래된 기법으로써 두드리는 악기들이 가진 매력을 들려준 젊은 음악인은 91년생 퍼커셔니스트 박혜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연주 안 되는 종류의 음악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객석 반응이 좋아 기쁘고 저도 굉장히 즐겁게 연주했습니다.” 16일 2차 공연을 끝마친 후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박혜지는 “타악기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다양성이다. 바닥을 치거나 몸을 두들기며 하는 연주도 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에 한계가 없다”며 이 같은 공연 소감을 밝혔다.
박혜지는 2019년 유서 깊은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타악기 연주자다. 경북예고-서울대-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음대를 거치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다. 처음 접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대구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 때문에 자연스레 피아노를 시작했으나 예중 진학을 앞두고 포기했다. “6학년 때 서울에 있는 예술중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시 준비를 하다 보니 이사도 가야 하고 학교 등록금도 많이 들어가고…. 목돈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음악으로 가는 길은 피아노 반주 아르바이트 때문에 간 타악기 학원에서 이어졌다. 음감과 드럼 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본 타악기 강사는 “너는 타악기를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다시 박혜지는 경북예고 주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장학생으로 선발돼 경북예고에 입학한 후 서울대 음대까지 진학한다.
애초 이번 무대는 ‘말하는 드럼’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무대에 데뷔한 천재 퍼커셔니스트 마르틴 그루빙거 몫이었다. 그런데 내한이 취소되면서 박혜지에게 기회가 생겼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그루빙거 연주 영상을 봤는데 매우 거칠고 강하게 곡을 표현해요. 저는 도저히 그렇게 연주할 자신이 없었는데 마르타 교수님이 ‘넌 너대로 하면 된다’고 일깨워줘서 제 느낌을 살리는 연주를 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말하는 드럼’과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6월 스위스 공연을 시작으로 독일에 이어 프랑스 3개 도시 투어 등 해외 연주 일정이 줄섰는데 특히 9월 대만 연주 때는 작곡가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하게 된다.
솔리스트의 길은 대체로 악단에 속하는 것보다 외롭고 그만큼 힘든 일도 많다. 비주류 격인 타악기 연주자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박혜지는 “홀로 무대에 설 때 즐겁고 희열이 느껴진다. 나는 체질적으로 솔리스트”라고 말한다. “사실 힘들긴 하죠. 특히 현악기는 솔리스트 길이 뚜렷한 반면 퍼커셔니스트는 사람들이 타악기를 너무 모르는 형편이라 이를 알리면서 연주를 해나가야 하니 많이 힘들어요. 그래도 저까지 포기하면 앞으로 절대 타악기 솔리스트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보려고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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