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가 납치한 '민주화 구심점'..생환할 수 있을까
돌진한 차에 치여 사흘 전 군경 체포
대학 학생회장 출신 '냄비시위' 주도
광주 같은 도시를 '민주화 성지'로
구타로 멍든 사진 유포..사형 우려
“미얀마의 젊은 세대는 2012년 이후 자유롭게 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자유를 알고, 민주주의가 뭔지 온몸으로 겪어본 세대다. 군부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다 빼앗겼는데, 그 상실감을 안고 살 수는 없다. 미얀마 시민과 민주주의를 위한 일인데, 무섭다고 안 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당신들(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피디(PD)에게 ‘1980년 광주’와도 같은 미얀마의 쿠데타와 민주화 시위 상황을 전해주던 웨이 모 나잉(26)이 15일 군경에 체포됐다. 체포 직후 그는 팔이 뒤로 묶인 채 심하게 두들겨 맞아 눈에 멍이 든 사진으로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김 피디는 18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군부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유출한 사진이라고 추측했다.
군부는 국영 <엠아르티브이>(MRTV)를 통해 그를 긴급 수배자 20명 중 하나로 지명수배 했다. 지난 3월 말부터 경찰 2명 살해와 절도 및 불안 선동 등의 혐의를 받아왔다. 체포 당시 그는 북서부 사가잉주 최대 도시 몽유와에서 동료들과 함께 오토바이 시위를 벌이다, 갑자기 돌진한 검은 승용차에 치였다. 당시 그는 차에 받힌 뒤 땅바닥을 기다가 일어나 체포를 피하려 했으나, 차량에서 내린 군복 바지와 검은 티셔츠 차림의 무장 괴한들에 의해 연행됐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를 ‘몽유와의 판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그는 미얀마 전역의 ‘냄비 시위’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 도시 몽유와를 1980년 광주 같은 민주화 중심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지난 2월1일 군부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그는 친구들과 함께 양곤에 있었다. 그들에겐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부에 반대할 시위 방법이 절실했다. 그렇게 해서 프라이팬과 냄비 등 식기를 두드리는 소음 시위가 시작됐고, 2월2일 밤부터 양곤 주민들이 하루 15분 동안 식기를 두드리며 반군부 슬로건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페이스북에 실려 미얀마 전역으로 퍼졌고, ‘냄비 시위’는 반군부 시위의 상징이 됐다. 몽유와대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이후 몽유와로 거점을 옮겨 시위 현장의 중심에 섰다.
그는 소수민족까지 포함하는 전 국민에게 반군부 세력 단결의 구심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 2월6일부터 이어진 몽유와 거리시위에서 정파와 종교, 민족을 초월한 지도력을 보여줬다. 몽유와의 한 시민은 미얀마의 독립 언론인 <이라와디>에 “극단적이지 않은 연설, 소수민족까지 포함한 임시정부를 표방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와의 굳건한 연대 입장, 정파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등으로 많은 주민들이 그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주류인 불교도가 아닌 무슬림이었으나, 종교에 얽매이지 않은 입장으로 시위를 이끌었다. 이 주민은 “주민들은 그가 무슬림인지 아닌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미 피디는 “그는 민간인임에도 군부 북서사령부에 구금돼 있다”고 전했다. 그의 상태에 대해 공식 발표된 것은 아직 없다. 다만 동료들은 그의 체포가 사형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군부는 양곤 인근 주민 19명에게 군 장교 측근 살해, 장교 구타, 총기 절도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웨이 모 나잉은 실종되기 전인 지난 9일 <이라와디>와 한 회견에서 장기적인 반군부 항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만명이 거리시위에 참가한 1차 시위 물결이 탄압으로 주춤하고 있다며 “그러나 혁명적인 형태의 2차 물결이 오는 중이고, 국민연대가 이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체포를 예견한 듯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어두운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라며 “나에게는 체포나 죽음도 문제가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누구도 그의 생환을 장담할 수 없지만, 그가 생환하든 혹은 산화하든 미얀마 반군부 시위의 상징으로 우뚝 설 것은 이미 분명하다. 아울러 그의 동료들은 김 피디에게 “우리 모두 또 다른 판다”라며 미얀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요청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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