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 예정" 성균관대 앞 플라타너스에 모여든 사람들..왜?
시민들 나서자 "향후 정밀검사 뒤" 한발 물러서
지난 14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성균관대 정문으로 올라가는 성균관로 7-1에 있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한 그루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나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기록했다. 밑동이 유난히 굵직해서 튼튼해 보이고, 4∼5층 높이는 됨직한 큰 나무였다.
이달 초 ‘강풍시 도복(쓰러지는 일) 우려가 있어 보행로 정비공사 시 제거예정입니다’라는 공고가 붙어, 곧 베어질 예정이었던 나무다. 이 자리에 온 서울환경운동연합 최영 활동가는 “공사업체에 왜 쓰러질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따로 측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시민제보가 있어 나무 상태를 확인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종로구청·공사업체 등에 문의해 보니, ‘쓰러질 것 같아 베어내겠다’는 ‘사형선고’는 오판을 넘어 모함에 가까웠다. 업체 관계자는 “종로구청에서 ‘도복 우려가 있다’고 해서 그렇게 적었는데, 도로정비 때 별다른 근거가 없어도 관행적으로 ‘도복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쪽 길 나무들이 모두 은행나무인데, 이 나무만 플라타너스라서 베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가로수 관련해 이슈가 되니까 구청에서 벌목을 미루자고 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이 문제를 삼자, 종로구청은 최근 공고문도 떼어냈다. 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딱 봐도 튼튼한 나무인데, 도로과에서 아무 근거도 없이 ‘도복 우려’라고 붙여놔서 공고문을 떼어냈다. 도복 우려가 있는지는 향후 정밀 검사를 통해 확인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휠체어나 유모차 등 통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 종합적으로 보고 (나무를 벨지 말지) 판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행불편’이라는 진단도 설득력은 떨어졌다. 인도가 좁은 편인데 나무까지 있어 좁은 편이긴 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 한대가 지나가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도기 때문이다. 이날도 기자 앞에서 전동휠체어 한대가 이 나무 옆 인도를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다. 이 자리에 온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회원인 장보혜(스튜디오 그린집 디자이너)씨는 “여기 근처에 살고 있어 어제부터 몇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유모차, 휠체어들이 지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무를 베지 않고 주변만 정비해도 통행이 더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이날 해당 나무를 진단한 이홍우 아보리스트(수목 관리 전문가)는 “해당 나무는 서울의 대부분의 가로수와 마찬가지로 두절(나무 머리 잘라내기)한 흔적과 이러 인한 외부 부후(썩음)가 관측됐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추가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가로수들에 비해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썩은 정도가 도복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실 가로수들의 부후는 대부분 다 큰 성목(어른 나무)의 살아있는 가지를 잘라서 생긴다. 국제수목학회는 나무가 어릴 때 계획적인 가지치기를 해서 다 컸을 땐 살아있는 가지를 자르지 말라고 권고한다. 잘린 부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아물기보다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근거나 원인분석 없이 나무를 베고 새로 심는 일을 반복하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우리나라에는 가로수를 언제 심었는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다 보니 토양이 문제인 경우에도 토양 개선은 안하고 그냥 새나무를 심는 식이다. 그러면 새 나무는 20∼30년간은 아무 문제 없이 클 것”이라며 “지금처럼 20∼30년 된 나무를 베고 다시 심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20∼30년 동안 나무 관리의 문제들에 관해 얘기해 볼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종로구청에 문의해 보니, 이 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종로구청에 벌목하지 말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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