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당 가입 이력 법관 배제, 국회 스스로 정당정치 부정한 것"
[경향신문]
최근 3년 사이에 정당에 소속된 이력이 있으면 법관이 되지 못하게 한 새 법원조직법을 놓고 헌법이 보장한 공무담임권과 정당 가입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 경험이 있는 변호사를 법관으로 뽑는 법조일원화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회가 스스로를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과거 사법시험 합격자가 사법연수원을 거친 뒤 선발되던 신임 법관 임용 절차는 2013년부터 변호사 등으로 일정 기간 활동한 법률가 중에서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법시험 합격자가 곧바로 판사가 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후 기업, 정부, 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은 변호사들이 법관에 임용되고 있다.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한 변호사도 수백명에 달하는데, 정당은 이들에게 당적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당이 모여 있는 국회가 지난해 당원 이력이 있는 사람은 법관이 되지 못하게 법을 고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를 보면 2019년 12월 현재 당원은 865만명이다. 법률에 따라 정당에 가입이 안 되는 공무원, 교사, 미성년자 등을 빼면 국민의 4분의 1이 당원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교회나 사찰에 이름을 올렸다고 모두가 열성 신자가 아니듯이, 정당에 가입한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가 있고 참여 정도도 제각각”이라며 “당원 이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중립을 해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법원조직법이 정당 출신의 직업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좌진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당 가입 이력을 법관 결격사유로 정한 것은 스스로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이 입법 이유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법의 개정 이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현직 법관의 정치적 의사표명이 늘어나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돼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SNS로 문제를 일으킨 판사들이 정당에 가입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면서 “대법원이 법관의 일탈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아 벌어진 일들을 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변호사에게 떠넘겨 기본권을 제약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해 법원조직법을 손보면서 헌법재판소법도 같은 취지로 고쳤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관도 최근 3년 사이에 정당에 가입한 이력이 있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 전직 헌법재판관은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정당 추천을 받아 국회가 선출하는데, 정당원 이력을 결격사유로 정한 것은 자기부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병채 전 재판관은 민주정의당 4선 국회의원, 조승형 전 재판관은 평화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다.
탈당하고 3년이 지나야 법관에 응시할 수 있게 하면서 경과 규정을 두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이 조항은 지난해 3월 개정법률 공포 이후 6개월 만에 시행됐고, 이번 법관 임용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적 상실 이후 3년을 결격사유로 정하면서 경과 규정 없이 시행한 것도 소급적인 기본권 제한이어서 신뢰보호 원칙 침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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