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자 90%가 중도 퇴사"..부족한 中企 인력 60만명 넘어

안대규/민경진 2021. 4. 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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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다" vs "일자리 없다"..최악의 일자리 미스매칭
中企 "일 좀 가르치면 나가니 당분간 경력직만 채용"
고졸직원 "대학 갈래요"..내신 위해 특성화高 선택도
현장실습 규제도 '타격'..바로 투입될 인력 태부족"
직업계고 출신 청소년들이 한독상공회의소와 독일계 완성차업체가 운영하는 ‘아우스빌둥’에 참여해 현장 교육을 받고 있다. 한독상공회의소 제공


인천의 한 뿌리기업에선 5년가량 근무했던 고졸 출신 직원 두 명이 지난해 퇴사했다. 한 명은 회사에서 야간대 진학까지 장학금을 줘가며 지원했지만 대기업으로 이직했고, 다른 한 명은 “허드렛일도 많고 적성에도 안 맞는다”며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이 회사 대표는 “고졸 채용자의 90%가 중도 퇴사하는 통에 인력 손실이 크다”며 “당분간 경력직만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졸 취업률이 사상 최악인 상황에서 정부의 ‘고졸 취업활성화 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소기업은 좋은 고졸 인재를 찾지 못하고, 고교 졸업 예정자도 괜찮은 중소기업을 찾지 못하는 ‘일자리 수급 미스매칭(불일치)’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저임금·사회적 편견…대학으로 탈출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 수가 21만8000명 줄어든 지난해 고졸 출신 취업자 수는 18만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자 수는 9만1000명 늘었다. 이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부터 2028년까지 고졸 신규인력 수급 전망치(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고졸은 수요 대비 공급이 60만 명가량 부족한 상태다.

직업계고 출신 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의 밑바닥엔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한 직업계고 출신 중소기업 사원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고졸 출신은 임금에서 대졸 출신과 크게 차별대우를 당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고졸 출신 대부분은 중소기업에 5년 이상 일할 생각으로 입사하는 사례가 드물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학생들은 중도에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으로 진로를 선회하곤 한다. 처음부터 ‘내신 관리’를 목적으로 인문계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경북의 한 공고 출신 근로자는 “학생의 절반은 취업, 나머지 절반은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다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장실습 규제…“서툰 고졸 뽑기 부담”

직업계고 출신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현장실습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된 것도 일자리 미스매칭의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의 한 음료수 공장에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사고로 숨지자 교육부는 2018년 하반기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직업계고 현장실습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장실습 제도가 도입된 지 55년 만의 조치다. 교육부는 "근무 환경이 안전한 기업에서만 현장 실습이 이뤄지도록 규제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중소기업계에선 "사실상 현장실습이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실습 과정에서 눈여겨본 학생을 뽑아 현장에 투입했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져 아쉽다”고 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중대재해법 등 강화된 산업안전 규제로 현장실습을 다시 대폭 허용한다고 해도 현장에 서툰 고졸 출신을 뽑기가 부담스럽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학습 참여율은 규제 이전인 2017년 42.5%였지만 규제 이후 2019년 29.9%로 떨어졌다.

생산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특성화고의 커리큘럼도 중소기업이 고졸 채용을 망설이는 배경이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한 표면처리업체 사장은 “뿌리기업의 핵심 기술인 표면처리 분야 학과가 직업계고 어느 곳에도 없어 인재를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한 중소제조업체 사장 역시 “기계 자동화 기술을 보유한 인재가 부족해 장학금을 내걸고 전문학과를 개설해달라고 대학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월 우수 중소기업의 ‘채용 시 우대 조건’을 설문 조사한 결과 ‘특성화고 졸업자’는 6.5%에 불과했고 ‘경력직’은 31.8%를 차지했다.

 선심성 정책에 중기 취업 외면

정부의 각종 선심성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특성화고 졸업생은 “실업급여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청년층이 굳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6개월 이상 근무하면 정부가 400만원을 주는 ‘취업연계 장려금’ 제도를 악용해 6개월만 일하고 그만두는 사례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회사 측에 ‘권고사직으로 해고된 것으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많다”고 귀띔했다.

고졸 취업이 줄면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임금을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하는 데 쓰기 때문에 내수경기 진작 효과가 거의 없다”며 “고졸 인력이 지속적으로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 밀집지역의 교육, 보육, 주거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몰리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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