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맨홀 등에서 질식사고 겪은 노동자 절반이 숨졌다

10년 동안 질식재해 겪은 노동자 53.2% 사망
노동부, 6월까지 질식재해 집중 예방기간 운영

한 노동자가 정화조 오수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2017년 5월 경북의 한 양돈농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쓰러졌다. 여러 곳에서 들어온 물을 모아 두는 큰 통을 일컫는 중간집수조 내부에 들어가 남은 돈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공기를 가득 채운 황화수소에 질식한 것이다. 게다가 쓰러진 이 노동자를 구하러 중간집수조에 따라 들어간 동료 노동자 역시 황화수소에 질식했고, 두 사람은 결국 숨지고 말았다.

#2.

2019년 9월 경북의 한 수산식료품제조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오징어 세척 폐수를 모아 둔 지하집수조에 있는 수중모터를 점검하기 위해 내부에 들어갔다가 역시 황화수소에 질식해 쓰러졌다. 이를 본 다른 이주노동자 3명이 쓰러진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따라 들어갔지만 역시 질식했고, 4명 모두 숨지고 말았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발생한 산업 현장에서 질식재해를 겪은 노동자 중에서 절반 이상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사고성 재해의 경우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1%인 반면, 질식재해는 53.2%나 돼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18일 고용노동부는 최근 10년 동안(2011~2020년) 발생한 195건의 질식재해를 분석한 결과, 질식재해를 겪은 316명의 재해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8명(53.2%)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질식재해는 노동자가 주로 밀폐된 공간에서 내부에서 발생한 가스 등으로 산소결핍 등을 겪는 현상을 말하고, 밀폐공간은 정화조, 저장고, 맨홀, 탱크 등 환기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정도의 막힌 공간을 말한다. 이런 공간에선 특히 유기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될 때 황화수소가 발생하게 되는데, 달걀 썩는 냄새가 나는 무색 기체인 황화수소는 독성, 부식성, 가연성이 있어 인체에 유해한 성질을 지닌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질식재해는 주로 봄과 여름철에 발생했다. 봄철(61건, 31.3%)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여름(49건, 25.1%), 겨울(47건, 24.1%), 가을(38건, 19.5%) 순이었다. 노동부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미생물이 활발히 번식해 작업공간 내부의 산소를 소모하면서 산소결핍 상황을 만들거나 고농도 황화수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질식재해가 잦은 오폐수처리·정화조 작업 기준으로도 봄·여름에 사고가 많은 특성이 드러났다. 최근 10년 동안 봄·여름에 각각 13건이 발생했고 가을에는 9건, 겨울에는 3건 순이었다. 하수도·맨홀, 축사분뇨 처리시설 작업 등에서도 대체로 봄과 여름에 질식재해가 집중된 양상을 보였다.

노동부는 질식위험 경보를 발령하고, 이달부터 6월까지를 ‘질식재해 예방 집중 지도점검 기간’으로 정하기로 했다. 또 오폐수처리시설‧정화조, 하수도‧맨홀, 축사분뇨 처리시설 등을 우선 점검할 예정이다. 각 작업장마다 △밀폐공간 출입금지 조처 및 경고표지 설치△환풍기, 유해가스 측정기, 송기 마스크 등 재해 예방장비 보유 및 사용 점검 △밀폐공간 작업프로그램 수립‧시행 여부 등을 확인하는 등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이행 여부를 살필 예정이다.

김규석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밀폐공간에서는 한 번의 호흡만으로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질식으로 사망할 수 있다”며 “사업장에 밀폐공간이 어디인지 사전에 확인하고, 작업을 위해 들어가는 경우 산소농도나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 안전한지 확인·환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