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미터 줄 서다 "비행기 놓쳤다" 울상.. 김포공항에선 무슨 일이?
거리두기 무너진 대기줄에 이용객 '코로나' 불안
공항 "승객 급증"-항공사 "보안강화 부작용" 공방
“왜 이렇게 줄이 길어. 30분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사흘째 600명대로 집계된 17일 오전, 서울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3층 출발장에는 수천 명의 이용객이 대기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날 오전 7시쯤부터 속속 늘어난 줄은 8시쯤 3층 출발장 양끝까지 닿았고, 더는 한 줄로 설 자리가 없어진 이용객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사진을 쳤다. 승객 편의도 방역 수칙도 무너진 와중에 항공사 측은 공항의 신분 확인 절차 지연을, 공항 측은 탑승객 급증을 각각 문제 삼으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출발 임박해도 “별수 없다”… 승객끼리 마찰도
항공기를 타려면 출발장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보안검색대에서 기내 반입품 검사를 받은 뒤 탑승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김포공항에선 출발장에서부터 기약 없는 대기가 이어지면서 비행기를 놓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대기줄에 선 강모(40)씨는 “출발시간보다 2시간 빨리 왔는데도 40분째 줄을 서 있다”고 당혹해했다. 부산에 가려는 최모(33)씨도 “탑승시간이 15분밖에 안 남았는데 앞에 100명 정도 있어 제 시간에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항공사에서 보안검색 강화로 혼잡할 테니 40분 전에 오라고 했지만 벌써 1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문의가 빗발쳤다. 한 직원에게 3분 동안 5명의 이용객이 “왜 이렇게 줄이 긴가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한 직원은 기자에게 “앞에 선 승객에게 한 분씩 직접 양해를 구하고 먼저 들어가는 방법을 안내하고는 있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예민해진 이용객들이 충돌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포착됐다. 앞선 승객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던 일행은 “우리도 오래 기다렸다” “이런 사람이 한둘 아니다”라며 양보해주지 않는 이들 뒤에 멈춰서야 했다. 이런 양해를 들어준 김모(29)씨는 “비교적 시간이 넉넉해 뒷 승객에 양보했는데, 이럴 땐 공항이나 항공사 직원이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문이나 손바닥 정맥 등 생체정보를 이용하는 ‘바이오 탑승 서비스’를 사전등록한 탑승객이라면 신분증 확인 절차 없이 보안검색을 받을 수 있지만, 아직 인지도가 낮다 보니 정체 해소에 도움이 안 됐다. 오히려 부랴부랴 생체정보를 등록하려는 사람들로 등록 부스도 북새통을 이뤘다. 공항 직원은 “한 사람 등록에 5분 정도 걸려 지금으로선 줄 서는 것보다 그리 나을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닥다닥 대기줄에 ‘거리두기’ 실종
출발장 바닥에 2미터 간격의 거리두기 대기선이 그어져 있고 곳곳에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를 당부하는 팻말이 놓였지만, 서로 밀착된 수백 미터 대기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이용객 입장에선 항공편을 놓칠까 하는 초조함만큼이나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도 클 수밖에 없다.
광주로 향하는 김모(33)씨는 “거리두기가 전혀 안 되니 불안한 마음에 마스크를 두 장 썼다”고 했다. 제주 귀향길에 오른 이모(30)씨도 “사람들끼리 붙은 채로 줄을 서야 해 걱정된다”며 “가까이 감염 의심자가 있을까 싶어 기다리는 동안 코로나19 증상을 검색해봤다”고 털어놨다.
공항 측에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인들과 제주 여행을 가려 대기하던 이모(58)씨는 “이 정도로 혼잡하면 시간대별로 나눠 줄을 서도록 해야 하지 않나”라고 성토했다. 가족과 함께 줄을 서 있던 강모(50)씨는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도 목격했는데 단속이 되지 않더라”며 “방역지침을 준수하도록 좀 더 조치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출발장 바로 위층에 있는 식당가는 아침식사 시간인데도 손님 없이 한산했다. 한 식당 직원은 “한두 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라 다들 식당에 들를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사람이 몰리다 보니 코로나19 감염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항공사 ‘네탓 공방’… 비행기 놓쳐도 보상 없어
항공업계는 공항당국을 탓하고 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김포공항 항공사운영위원회(AOC)는 16일 한국공항공사에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장 혼잡도 개선 요청’ 공문을 보냈다. 국토교통부가 신분증 도용 등 불법 탑승 방지 차원에서 이달 1일부터 공항 보안검색을 강화하면서 신원 확인 대상 규모가 전체 탑승객의 10%에서 30%로 확대됐는데, 공사 측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항공기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AOC 측은 “이달 1일부터 13일까지 400편가량의 항공기가 지연 출발했다”며 “가장 혼잡한 시간대인 오전 7~9시 기준 8,300여 명의 승객이 출발장을 통과하지만 신원 확인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은 8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감독 인원과 바이오 등록 장비를 늘려 달라는 취지다. 국토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이날도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총 12편이 30분 이상 지연 운항됐다.
한국공항공사는 이용객 급증이 탑승 대기시간 증가의 주원인이라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1분기 이용객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상황에서 항공사 연결편 지연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며 출발장 혼잡이 빚어진 것”이라며 “보안검색 강화는 항공사 민원으로 하루 만에 원상 복구했다”고 말했다. 또 “AOC가 주장한 '400편 지연 출발' 원인을 재검토해보니 보안 관련 사안은 극히 일부인 8편뿐”이라며 “바이오 등록 장비(6대)도 충분하나 단지 이용률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항공사와 항공사 측이 책임을 두고 다투는 사이 출발장 혼잡 피해는 이용객이 떠안는 모양새다. 업무차 서울에 왔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려던 정모(25)씨는 공항에 1시간 일찍 도착했지만 오전 10시 출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오전 11시쯤 공항 혼잡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오후 12시 30분 항공편을 다시 예매할 수 있었다. 정씨는 “공항이나 항공사 차원에서 별도 (구제)조치는 없다고 해 결국 예매 취소 수수료를 내고 환불받은 뒤 재예매했다”고 말했다. 정씨와 같은 피해 승객에 대한 보상책이 없는지 항공사 측에 묻자 “공사 측에서 협조 요청이 온 것이 없어서 통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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