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윤미현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가장 몹쓸 갑질이죠"
IMF배경으로 부의 대물림과 갑질 난무하는 우리 사회 부조리 풍자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오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양갈래머리와 IMF' 대본을 쓰고 연출한 극작가 윤미현(41)은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2012년 데뷔 후 청년 실업자(텃발킬러), 노인(장판·궤짝·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다문화 가정(텍사스 고모) 등 소외된 자의 고독과 외로움을 다루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풍자한 일련의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서울연극제 희곡상(2016), 동아연극상 희곡상(2019), 벽산희곡상(2019) 등 유수의 희곡상을 다수 수상했다.
지난 10일 막을 올린 '양갈래머리와 IMF'도 그의 전작과 결이 비슷하다. 이 작품은 IMF로 실직한 후 정육점, 슈퍼, 찜닭집, 치킨집까지 온갖 종류의 가게를 해보지만 전부 망해 먹은 경비원 김 씨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나이 70줄에 경비 일을 시작하지만 주민들의 갑질로 궁지에 몰린다. 남편의 실직으로 20년 가까이 콜라텍 주방 일을 해온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양갈래로 땋더니 1년 동안 드러눕는다. 교복입고 캘리포니아 제과점에서 꽈배기 먹으며 행복했던 학창시절과 힘들었던 IMF시절의 기억만을 오간 채.
대본을 쓰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윤 작가는 "초여름 어느 날, 반포 고속터미널 앞 구둣방에 샌들 밑창을 수선하러 갔을 때, 구둣방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작품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일까지 겸하고 있대요. 그러면서 본인과 아내가 6.25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만 했는데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해요. '인생이나 샌들 밑창이나 한 번 떨어지면 붙여지지 않는다'는 말 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고등학교 시절 IMF를 겪은 윤 작가는 "그때 친구들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IMF 때 형편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 지 궁금했다. 그런데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잘 사는 사람은 계속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날마다 노동을 해도 노동의 가치가 자본으로 바뀌는데 한계가 있는 구조"라고 일침했다.
그는 또 "갑질 사례는 모두 픽션이다. 실제 있었던 일을 다루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내 앞가림에 이용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속이 뻥 뚫리는 장면도 있다. 군대시절 선임병의 폭행과 갑질에 시달렸던 청년이 15년간 꿈꿔 온 복수를 포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선임병이 심하게 혀 짧은 소리를 내잖아요. 군대에서 선임이랍시고 갑질하던 인간이 사회에서는 복수할 가치 조차 없는, 하찮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양갈래머리와 IMF'는 당초 지난해 3월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연기되어 1년의 기다림 끝에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으로 처음 연출을 맡은 윤 작가는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 작품이 대사량과 반어법적 표현이 적잖아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모두 베테랑이고 저와 여러 번 손 발을 맞췄던 배우들이 많아서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제가 데뷔했을 때부터 함께 해 온 이영석, 황미영 배우의 연기가 단연 백미죠."
나 작곡가와는 '죽이 잘 맞는' 동료다. 양갈래머리와 IMF 외에도 오페라 '검은 리코더'(2019)와 '빨간 바지'(2020)를 함께 작업했다. 오는 2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로맨틱 코미디 오페라 '춘향탈옥'도 협업했다.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후 소설로 데뷔해 희곡작가로 꽃을 피운 윤 작가는 "(희곡은) 내 글쓰기의 종착지다. 어떤 배우를 만나서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하는 게 재밌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이번 작품은 IMF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에요. 희곡은 모두 완성해놨습니다. 오는 6월에는 목선(북한에서 떠내려온 뗏목)을 타고 북한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실향민 할아버지의 삶을 다룬 '목선'(2019 벽산희곡상 당선작)을 공연할 예정이에요."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오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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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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