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해력, 동네 도서관에 만든 과학 실험실에서 키우자"
[경향신문]
아이가 태어나자 본의 아니게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훌륭한 놀이터다. 서울시립과학관을 찾았을 때 아이는 난지도 매립 가스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과정을 설명한 전시물에 관심을 보였다. 아이가 우주 로켓에 흥미를 느끼면서 국립과천과학관에도 자주 들렀다. 과학관 앞마당에 솟은 실물 크기 로켓 모형을 보면 환호를 지른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과 서울시립과학관은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57)이 관장을 지낸 곳이다.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혹은 우리말로 ‘과학 거간꾼’이라고 소개한다. “모든 연구는 시민의 세금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국민에게 전달돼야 한다. 하지만 과학 연구자는 너무나 바쁘고 시민과 언어가 너무 다르다. 연구자와 시민 사이에 거간꾼이 있어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면 좋겠다.” 이정모 관장이 밝힌 과학 거간꾼의 역할은 ‘사이언스 리터러시’, 즉 과학 문해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임기 3년의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임명됐다. 이만한 유명인사를 관장으로 맞은 건 과천과학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 2008년부터 국립과학관 관장이 개방공모제로 전환된 이후 첫 민간 임명 사례다. 주변인에게 건너 들은 바, 논술(?)과 발표, 토론 등 고위공무원 역량 평가를 수월하게 통과했다. 어쩌다 공무원을 10년째 하고 있지만 과학관 일은 이제 그에게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한다. 과학 대중화를 위한 고민을 키우고, 해결 방법을 찾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시민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이 관장은 이를 위한 활동이라면 과학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같은 과학 대중서를 여럿 쓰고, 과학책도 여럿 번역했다. 신문 칼럼과 강연, 방송 등 매체를 넘나든다. 과천과학관에서 만드는 유튜브 콘텐츠 <유 퀴즈 온 더 사이언스>에도 출연한다. 지난 4월 9일 과천과학관에서 만난 이 관장은 영상으로 보던 것과 달리 뱃살이 많이 들어가 보였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 2년 사이 18㎏이 빠졌다. ‘털보 관장’이라는 애칭을 만든 덥수룩한 턱수염,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미소는 그대로다.
-보는 과학관을 넘어서자고 주장했다.
“과학관은 보는 과학관에서, 배우는 과학관으로 발전했다.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이 됐을 때 당시 시장에게 3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과학자를 먼저 뽑아라. 과학관 건물을 다 짓고 그 안에 전시물을 넣은 후에 과학자를 뽑아선 안 된다. 사람을 먼저 뽑아 그 사람이 전시와 교육을 준비하게 하라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또 하나 요구한 게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을 만들자’였다. 전국 136개 과학관 모두 어린이가 대상이다. 2017년 말로 14세 이하 인구보다 65세 인구가 더 많아졌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뭘 자꾸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청소년부터 성인, 노인까지 대상으로 한 과학관으로 가야 한다. 또 하나는 ‘하는 과학관’이다. 몸으로 체험하고 실험하는 과학관이다. ‘해외 선진 사례가 있냐’는 물음이 나왔다. 없다. 우리가 21세기에 과학관을 지으면서 왜 남의 나라를 따라 하나. 우리가 선진국이라면 우리가 먼저 하면 되지.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움, 사이언스 갤러리 런던을 봐도 우리만큼 안 된다. 미국만 해도 방학 때 교사 월급을 주지 않지만 우린 방학 때도 교사가 많이 투입돼 할 수 있었다.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중합효소연쇄반응(PCR) 실험까지 했다. 세포에서 DNA를 끄집어내 정제하고 이걸 복제해 증폭하고 시퀀싱까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테크닉을 배우니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가 생긴다.”
-과천과학관 교육 프로그램이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과천과학관은 프로그램이 개설되면 5분이면 마감된다. 문제가 2가지 있다. 하나는 이 좋은 프로그램의 혜택을 인근 서울 남부와 경기지역 사람만 받는다.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생각한 게 온라인이었다. 해보니 의외로 괜찮다. 과학 키트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주고, 줌으로 강의하고, 5명씩 반을 만들어 코딩과 인공지능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이다. 또 하나 개설되자마자 마감되니 이 프로그램이 좋다고 생각해 몇년째 계속 되풀이한다. 우린 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3년만 쓰고, 매뉴얼을 잘 만들어 프로그램 개발이 어려운 다른 과학관에 통째로 주자고 했다. 매년 3분의 1씩 새로 만들어야 발전이 있다. 과천과학관이 수도권 23개 과학관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학관 협력 사업으로도 의미 있다.”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독일에서 유학할 때 제일 부러웠던 게 도서관이었다. 우리 땐 남산도서관에 줄 서서 티켓을 받아 점심때까지 기다려도 못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독일에선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세상에 이런 천국이 있나 했는데 10년 있다 귀국하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변했다. 이제는 필요한 게 과학관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시민의 기본 능력으로 문해력이 중요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일단 과학자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책과 작가를 만나는 도서관이 있다면 과학자와 실험실, 과학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 과학관이어야 한다. 큰 과학관이 아니라 동네 도서관 규모면 된다. 그곳에 전시물을 넣으려 하지 말고 작은 실험실을 꾸미자. 공간이 없다면 도서관의 큰 열람실을 실험실로 만들면 된다. 공부할 공간이 부족하진 않으니 큰 열람실을 4개로 쪼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실험실로 만들자. 학교에서 이론만 배웠는데 실제 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선생이 애들만 보내주면 과학관에서 파견된 과학자가 실험을 해주면 된다. 구당 하나씩 이런 실험실을 만들면 우리 국민의 과학 문해력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성인을 위한 과학을 강조했다.
“자꾸 애들 걱정하지 말자. 어른, 당신들을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 그래서 성인을 위한 과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옛날 과학관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로 모든 전시 설명을 아동 중심으로 바꿨다. 제일 실패한 정책이다. 애들 눈높이에 맞춰봐야 집중도가 40분을 넘지 않는다. 어른은 자기가 보기에 단순해 재미없어한다. 전시도 어른이 재미있어야 어른의 입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 지금 다시 성인 중심으로 바꾸고 있는데 우린 아직 그렇지 않다.”
-과학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게, 안심하면서 살고, 돈과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이 있었다. 피프로닐이라는 살충제 성분이 일부 양계장 달걀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피프로닐만 있어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얼마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60g짜리 달걀에 0.002㎎ 정도 검출됐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일일섭취허용량(ADI)에 따르면 60㎏ 성인이 평생 매일 5.5개를 먹어도 괜찮은 양이다. 급성 독성참고량(ARfD)에 따르면 하루에 246개를 먹을 때 독성이 생긴다. 246개를 먹으면 해부학적 문제가 생겨 죽는다. 그 두 수치만 계산하면 되는 것이다. 독성물질이 나왔어도 괜찮다는 게 아니다. 기준치를 넘었으니 정부는 시민에게 알려주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 달걀을 사 먹지 않고, 빵집이 망하고, 영양사는 달걀 없는 식단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었다. 수십개 양계장이 망해 그걸 살리려 엄청난 세금을 쓸 이유도 없었다. 2018년 말에는 신생아에게 결핵 예방 백신을 맞히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백신에서 비소 성분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비소는 장희빈이 먹은 사약의 주성분이다. 엄마 생각으론 애들이 앓는 게 낫지 어떻게 비소 성분이 있는 백신을 맞추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없던 비소를 넣은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건데 그간 너무 적어 검출을 못 한 걸 기술이 발달해 검출한 것이다. 약사가 설명하길 밥 한숟가락에 들어 있는 양이다. 코로나19 백신도 그렇다. 미열이 생기고 맞은 데가 꾸득한 것까지 부작용이라면서 겁주고 방역을 방해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숫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 사이언스 리터러시라는 건 세상을 숫자로 따져보는 것이다.”
-수학, 물리가 어려워 이과를 포기한 사람이 많다.
“문·이과를 나눈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전공을 3개씩 해야 하는데 한 친구가 유기화학을 전공하면서 독문학과 비교종교학을 선택했다. 난 유기화학을 하면서 생화학과 미생물학을 하겠다고 하니 친구들이 ‘다 똑같은 것 아니냐’면서 웃었다. 난 틀이 달라져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 ‘틀’이 뭘 말하는지 몰랐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학문의 틀을 나누고 있다.”
-수학, 물리, 화학이 어려운 이유는.
“물리학자도 물리학을 좋아할 뿐 쉽다고 생각 안 한다. 보일의 법칙이나 샤를의 법칙도 이상 조건, 즉 외부와 에너지, 물질 교환이 차단된 상황을 상상해야 일어나는 것이고, 이를 다 수학적으로 풀어내야 하니 어렵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물학은 정보량으로 치면 정말 많지만, 평상시 쓰는 자연어로 서술되기 때문에 다 이해하는 것처럼 느낀다. 물리는 수학이라는 비자연어로 이뤄졌다. 화학은 화학기호로 된 수학언어를 써 더 어렵게 느낀다. 언어가 다른 걸 설명하려면 비언어적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이 잘 가르쳤던 것 같다. 모든 과학 과목에 수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실험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데 수학은 중요한 수단이다.”
-과학은 무엇인가.
“인문학계에서는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가 통할 수 있으나 과학계는 그렇지 않다. 17세기에 갈릴레오가 목성에서 달을 4개 발견하면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했는데 목성의 달은 목성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목성의 위성이 79개이다. 4개에서 79개로 한 번에 바뀐 게 아니라 꾸준히 하나씩 발견됐다. 과학은 어떤 진리가 아니라 잠정적인 답일 뿐이다. 그래서 과학자가 훨씬 더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다. 틀린 것에 부담감이 없기 때문이다.”
-공동연구는 이과 쪽이 강한 것 같다.
“인문사회계는 교수와 제자 둘이서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논문이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다. 수십명이 함께 연구하기 때문에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주는 소통 능력이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왓슨 등 우리가 아는 외국 유명 과학자들과 우리나라에서도 생태계의 최재천, 뇌과학의 정재승, 양자물리학의 김상욱 등의 공통점이 말 잘하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학회에 가면 차이를 많이 느낀다. 자연계 학계에 가면 질의응답할 때 아무나 손들어 정말 단순한 것부터 물어본다. 노벨상을 받은 석학이든, 석사 1학기 학생이든 동등하게 발표하고 토론한다. 노벨상 수상자 앞에서 논문을 흔들면서 설명을 요구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네가 못 본 게 있어’ 이렇게 말한다. 발표가 끝나고 나면 노벨상 수상자와 악수하고 싶어 줄을 서지만 적어도 토론하고 질의응답을 할 때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학계에 갔을 땐 깜짝 놀랐다. 나이가 진짜 벼슬이다. 노교수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5분이 지나도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정작 관심 있는 석사 과정 학생은 쉬는 시간에 와서 물어본다. 공개적으로 물어야 여러 질문과 답에서 배울 수 있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된 계기는.
“대학 때 어머니가 다림질을 하면 옆에서 ‘오늘 DNA를 배웠는데 말이야’ 하면서 그날 배운 걸 이야기해주면 어머니가 너무나 좋아하셨다. 내가 말을 재미있고 조리 있게 한다고 여기셨는지 대학 2학년에 올라가자 어머니가 야학 선생을 하라며 양복을 사주셨다. 그렇게 그때부터 유학을 다녀온 후까지 9년간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에서 야학 선생을 했다. 검정고시계에서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 유명했다. 시험을 앞두고선 교회 큰 예배당에서 1박2일 특강을 하기도 했다. 독일에 유학한 후엔 정작 내 실험은 잘 안 됐는데 선생님은 학회에서 내 동료의 실험을 내가 발표하길 바라셨다. 발음이 나빠도 재미있고 정확히 이해를 시키니까. 그때 느낀 게 난 과학은 잘 못 하는데 과학 전달은 얘네보다 잘하는구나, 이게 나에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유학 1년쯤 지나 유학생끼리 둘러앉아 ‘너 뭐 될 거야’ 서로 물었을 때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땐 내가 그 말을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있긴 하더라. 귀국했을 땐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바글바글할 줄 알았는데 경쟁할 게 없었다. 오히려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 한명이 더 왔다고 너무나 좋아했다. 술 사주면서 ‘너 같은 애가 필요했어’라고. 정재승, 이명현, 이은희 등 그때 함께 막 시작했던 사람들이다. 그 이후 15년간 거의 없다가 최근에 다시 몇명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친구들이 절 선배라고 생각해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휴가를 제주도로 다녀온다고 들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 동네서점에 한 번씩 강연을 간다. ‘동네책방 네트워크’ 홍보대사를 했던 책임감 때문이다. 돈 안 받으면 괜찮으니까.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는 편이다. 사람들이 과학관에 많이 못 오니 내가 가야 한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유튜브 등으로 세상 사람들이 과학의 세례를 많이 받도록 하라고 부탁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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