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8) 제주 뱀신화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변지철 2021. 4. 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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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신은 재앙 주는 신 아닌 '풍요의 신'..편견 없애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에서 '뱀'과 같이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가 엇갈리는 동물이 있을까.

토산당 (제주=연합뉴스) 제주도 토산리의 토산당(兎山堂)을 찍은 흑백사진.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수집한 사진 자료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1888~1954)와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 1886~?)가 촬영했다. 신역(神域)을 돌담으로 쌓고, 관목(灌木)인 신수(神樹)에 폐백(弊帛)을 묶어 놓았다. 2021.4.18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뱀은 예부터 제주에서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다른 지역에도 뱀을 신성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유독 제주에서 뱀을 신(神)으로 모시는 마을이 많았다.

조선 시대 제주의 뱀신앙과 관련한 몇 개의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 관에서 편찬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보면 '봄가을로 남녀가 광양당과 차귀당에 무리를 지어서 모여 술과 고기를 갖춰 신에게 제사한다. 만일 회색뱀을 보면 '차귀의 신'이라 해 죽이지 말라고 금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제주에 유배 왔던 김정(金淨)은 '제주도풍토록'(濟州風土錄)을 통해 '이곳(제주) 풍속에 (사람들이) 뱀을 몹시 두려워해 신이라 받들고, 뱀을 보면 술로 주문을 외우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제주에선 뱀과 관련한 다양한 신화가 전승된다.

뱀을 마을신으로 모시는 대표적인 지역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다.

토산 여드렛당에 좌정한 마을신은 뱀이지만, 처녀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토산리에는 당이 2곳 있었다. 하나는 웃토산에 있는 '일뤠당', 또 다른 하나는 알토산에 있는 '여드렛당'이다.

일뤠당은 제일(祭日)이 매월 7일(7·17·27일), 여드렛당은 매월 8일(8·18·28일)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흔히 토산당이라 하면 뱀신을 모시는 당이라 생각하지만, 여드렛당만이 뱀신을 모시는 당이다.

이 신화(본풀이)는 마을이 뱀을 신으로 모시게 된 내력을 보여준다.

조선 신증동국여지승람 [촬영 이상학] 국립중앙박물관

신화를 보면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천구아구대멩이'라는 뱀신이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진상품을 바치러 온 제주 사람들을 도와 제주로 들어오게 된다.

어여쁜 처녀의 모습으로 제주에 들어온 뱀신은 마을신으로서 자리 잡을 곳을 찾다가 토산에 이르게 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을 모시는 사람이 없었다.

화가 난 신은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던 왜선을 파괴해버렸다.

당시 인근에서 빨래하던 처녀와 하녀가 뭍으로 올라온 왜구에 겁탈당하고 죽임을 당했는데, 뱀신은 처녀의 원혼을 그 지역 다른 여성의 몸에 빙의시켰다.

부모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자식을 위해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을 찾아 점을 쳤다.

심방은 '마을신이 노해 그러한 것이니 굿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뱀의 형상을 그려 '방울풂' 굿을 하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뱀신을 당신으로, 일부 집안에서는 조상신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다.

뱀신은 이 지역에서 시집가기 전 처녀의 순결을 지켜주는 당신으로 자리 잡았다. 신을 잘 모시면 여성의 순결을 지켜주고 집안에 부(富)를 가져다주지만, 잘 모시지 않으면 사람에게 병을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신화 속에서 처녀가 왜구에게 겁탈당하는 모티프는 명종 7년(1552년)에 일어난 천미포 왜변의 실제 이야기가 녹아 들어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미포 왜변은 왜구가 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천미천 앞바다 쪽으로 접근해와 난동을 부린 사건이다.

칠성통이 있는 제주시 원도심 (제주=연합뉴스) 제주목 관아 상공에서 바라본 제주시 원도심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이 어린 꽃다운 처녀들이 왜구에게 겁탈당해 죽임을 당하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혼을 풀고, 남은 가족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중에 신화 속에 포함됐다고도 한다.

또 곡창지대인 나주에서 외래신(뱀신)이 제주로 들어왔다는 것은 신의 입도와 함께 밭농사 위주인 제주에 쌀 문화가 유입됐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신의 이동 경로가 곧 문물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다양한 견해의 진위를 떠나 문제는 이 신화로 인해 '토산 여자들이 시집갈 때 뱀이 따라간다'는 엉뚱한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면서 마을 여성과 결혼을 꺼리는 경향이 생겨났다.

심지어 옛날에는 마을 여학생들이 도시 학교로 진학해 방을 빌리려 해도 방을 빌려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지역 마을사람들은 뱀신앙과 관련한 얘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반면, 사람들이 뱀을 잘 모셔 큰 부를 얻게 됐다는 내용의 신화도 있다.

제주에선 뱀을 '칠성'(七星)이라고 하는데 옛 제주성 안에 자리 잡은 뱀신에 관한 칠성본풀이가 전해 내려온다.

이 신화는 간략히 3가지 이야기로 돼 있다.

북두칠성의 영기를 받은 뱀신이 중국에서 제주 조천읍 함덕으로 흘러 들어가 해녀들의 조상신으로 숭배받게 된 내력, 그리고 이들 뱀신이 제주성 안으로 들어가 송대정(宋大靜) 현감의 집 안에 머물며 조상신이 된 내력이다.

또 뱀신은 '안칠성'과 '밧칠성'이 되는 등 제주 각처를 관장하며 숭배를 받게 되는데 연속된 세 가지 이야기들이 칠성본풀이를 이루고 있다.

뱀신인 칠성은 '풍요의 신'으로 이 뱀신을 잘 모시면 재물이 들어와 부자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에 도착한 뱀신을 맞아들여 큰굿을 한 해녀들이 삽시간에 부자가 됐고, 함덕 마을도 부촌이 됐다는 것이다. 칠성은 자신을 조상으로 잘 모신 제주성 안의 송대정 집안도 부자가 되도록 했다.

밧칠성 (제주=연합뉴스) 제주에서는 예부터 '고팡'이라고 불리는 곡물 저장 창고에 '안칠성'이 있다고 해서 고사를 지내거나, 집 뒤꼍에 볏집을 덮어 그안에 쌀을 넣어 '밧칠성'을 모시는 집도 있었다. 사진은 장주근씨가 1959년 제주시에서 촬영한 밧칠성의 모습. 2021.4.18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송대정 집안이 있던 골목은 '칠성통'이라고 해서 지금까지 제주시의 한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제주에서 '고팡'이라고 불리는 곡물 저장 창고에는 '안칠성'이 있다고 하며 고사를 지내거나, 집 뒤꼍에 볏짚을 덮어 그 안에 쌀을 넣어 '밧칠성'을 모시는 집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제주신화 연구를 해 온 현승환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제주의 뱀신앙은 본원적으로 하나의 같은 성격을 가진다. 각각 시차를 가지고 제주에 들어오다 보니 마치 별개의 신앙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뱀신'은 농사가 잘 지어져 풍년을 들게 해 주고, 부를 주고, 복을 주는 신"이라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토산 여드렛당 본풀이가 뱀신에 의해 마을이 재앙을 당했고, 그 뒤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내력만 강조되다 보니 사람들이 뱀신을 재앙만 주는 신처럼 인식하고 꺼리게 됐는데 이는 일종의 편견"이라며 "재앙은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퍼진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뱀신앙이 농경문화와 관련한 '풍요의 신'으로 모셔지던 것이고, 과거 조상들의 생산양식 상 이러한 신앙이 필요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잘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의 뱀신앙은 한국 본토의 것과 비교하는 데 멈춰있지만, 주변 민족의 뱀신앙과의 비교 연구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제주도 뱀신화와 신앙 연구'(현용준·현승환 저, 탐라문화15 1995),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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