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장례식장서 덤덤, 법정에선 눈물..'관악구 모자살인' 남편의 이중태도

이세현 기자 2021. 4.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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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큰 피해자" 눈물 흘렸지만 사건 이후 액션영화 감상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2019년 8월21일 저녁 A씨(41)는 아들 B군(6)과 닭곰탕 및 스파게티를 나눠 먹었다. A씨의 언니가 두 사람을 위해 손수 만든 음식이었다.

그날 밤 평소처럼 다정한 시간을 보낸 모자는 다음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목 부위가 흉기로 찔린 참혹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경찰은 그날 새벽 1시쯤 집을 나왔다는 남편의 증언에 따라 제3자 침입 가능성 을 수사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초기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놀랍게도 남편 조모씨(43)였다.

◇위 내용물·도박·불륜·양손잡이…법원 "남편이 아내와 아들 살해"

현장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되지 않았고 집 근처 폐쇄회로(CC)TV에도 미심쩍은 장면은 없었다.

조씨 또한 "집에서 나올 때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며 경찰 조사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조씨를 범인으로 의심한데는 그럴만한 정황이 있었다.

도예가인 조씨는 결혼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 관리비와 생활비 등으로 월 수백만원을 쓰면서도 일정한 소득이 없어 A씨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다가 A씨가 2018년 가을 무렵 지원을 끊으며 경제 활동을 하라고 요구하자 집을 뛰쳐나갔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 생활하던 조씨는 2019년 5월부터 경마에 빠져 카드론 대출 등으로 수백만원을 탕진했다.

검찰은 조씨에게 내연녀가 있었고 사건 이후 액션영화를 다운받아 보고 보험금 수령인을 검색했던 점, 아들의 생년월일조차 모를 정도로 애정이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1심은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胃) 내용물을 통해 사망시간을 추정하면 조씨가 집에 있던 시간에 모자가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법의학자들의 증언을 반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위 내용물을 확인한 결과 식사 후 4시간 이내, 최대 6시간 이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이 조씨와 함께 있을 때 살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조씨가 사건 발생 이후 세차와 이발, 목욕을 한 것은 혈흔 등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했다. 조씨가 장례에 관여하지 않고 빈소에 20분 정도만 머물다 떠난데다 장례식장에서 통곡하지 않고 법정에서 아들의 생전 진술이 전해지는 내내 미동도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2심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특히 범인이 양손잡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상처 부위를 봤을 때 양손잡이 범행"이라며 "조씨는 원래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칼을 정교하게 사용하면서 도자기도 만들었으니 양손을 원활하게 쓰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조씨가 사건 발생 며칠 전 아내의 죽음을 다룬 스릴러 영화 '진범'을 내려받아 시청하고 경찰의 수사기법이 담긴 예능 '도시경찰'을 본 점도 수상하다고 판단했다.

◇남편 "내가 가장 큰 피해자" 눈물 흘리며 범행 부인…무기징역 확정

조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1심 최후진술에서 "저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2심에서도 "제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저를 피의자라고 한다"며 "저를 걱정하고 믿어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하루하루 버틸 수 없었으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도 같은 마음으로 저와 함께 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간접증거를 고찰해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무거운 형벌에도 유가족의 마음은 여전히 처참하다. 피해자의 언니는 1심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을 만나 "솔직히 말해 유족 입장에서는 어떤 형벌이 나오더라도 만족할 수가 없다"며 "지금 제 동생과 조카는 저희 곁에 없지 않느냐"고 흐느꼈다.

잔혹한 범행으로 사이좋은 모자는 세상을 떠나고 조씨는 감옥에서 무기징역형을 살게됐다. A씨의 가족은 딸과 동생, 손자를 잃은 슬픔을 평생 짊어지게 되면서 관악구 모자살인 사건은 모두의 비극으로 끝이 났다.

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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