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소통을 연구하면 질병 치료법 찾을 수 있다"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서판길 뇌연구원장

박병률 기자 2021. 4. 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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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업적이 있는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과학상이다.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은 지난해 과학의 날에 이 상을 받았다. 서 원장은 인체의 세포, 분자, 기관 간 신호를 전달하는 ‘생체신호전달’ 경로를 연구해왔다. 그는 “사회에서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듯 인체에서도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암, 당뇨 같은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며 “신호전달 과정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를 기반으로 특이적 진단, 치료법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대구 혁신도시에 있는 한국뇌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평생을 지방 과학계에 투신한 만큼 지방과학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 크다. 그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으려면 박사과정이 아니라 포닥(박사후연구원)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생태계만 만들어지면 20년 내 노벨상 수상을 기대해봐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봄햇살이 쏟아지던 지난 4월 11일 서 원장을 경북 포항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막 밭일을 끝내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 한국뇌연구원


-세포 사이 정보를 주고받는 신호전달 과정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어떤 개념인가.

“생명체는 시스템, 세포, 분자 간에 서로 소통을 한다. 호르몬, 성장인자, 사이토카인, 신경전달물질, 대사산물 등은 소통을 촉발시키는 물질들이다. 이런 외부 자극을 세포막 수용체가 인지하면 세포 내 단백질이 체계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되고, 생리활성 분자의 합성 및 활성화, 유전자 발현, 세포 성장 및 분열 등 다양한 생체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신호전달(signal transduction)이라고 한다.

나는 외부 신호가 어떻게 전달돼 생리기능을 조절하는가를 밝히는 ‘생체신호전달 경로’를 연구해왔다. 신호전달은 분자, 세포, 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따라서 형성되는 소통을 통해 생체 기능을 조절하는 핵심기작으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 개념이다. 우리 몸은 수천 종류의 분자로 이루어진 60조개 이상의 세포가 있다. 또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종류로 이루어진 기관 및 체계가 있다. 이 수많은 구성 단위체는 서로 간에 소통을 통해야만 우리 신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신호전달에 문제가 생기면 생체 항상성에 이상을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암이나 당뇨와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도 유용하겠다. 어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나.

“코로나19 중증 환자 발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염증 신호전달물질 ‘사이토카인’도 신호전달과 관련 있는 물질이다. 나는 세계 최초로 신호전달 과정에 관여하는 중요한 효소인 ‘포스포리파아제(PLC)’를 규명했다. 또한 뇌에서 PLC 3종을 분리해 유전자를 확인했다. PLC는 외부 자극이 주어졌을 때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을 분해해 신호전달물질 두가지를 만들어내는 효소를 말한다. 또 PLC를 매개로 하는 신호전달 과정을 분자, 세포, 개체 수준에서 확인했다. 세포가 살아 있을 때 소통은 물론이고 죽었을 때도 적절하게 사멸해야 인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사멸이 억제되면 상대적으로 세포 성장이 과잉되는데 이럴 때 암과 같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신호전달 과정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를 기반으로 특이적 진단, 치료법의 개발이 가능하다.”

-세포의 신호전달 연구는 뇌 분야 연구와 어떻게 연결되나.

“생체 신호전달 기작의 핵심효소인 포스포리페이즈 C(PLC)를 처음으로 ‘뇌’에서 분리정제하고 유전자를 클로닝(특정한 유전자만을 세포에서 꺼내는 기술)했다. 그런 뒤, PLC를 매개로 하는 신호전달 과정을 분자, 세포 및 개체 수준에서 독자적·체계적으로 밝혀냈다. 그리고 신호전달 연구를 응용해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정교한 과정을 밝히는 연구도 수행해 신호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불균형이 세포기능의 이상을 초래해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예를 들어 뇌에서 흥분성 시냅스(신경세포 접합 부위)와 억제성 시냅스가 협력해 신호전달의 균형을 이루는데, 이 균형이 깨질 경우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일어나게 된다. 즉 신호전달의 문제가 생체 내의 소통과 항상성 이상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치매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다양한 뇌질환을 유발하게 된다. 인체 정상 기능 조절은 뇌와 심혈관계 등의 소통인 신호전달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 소통이 정상적으로 잘 이뤄져 균형을 유지하는 항상성을 지키면 질병이 없지만, 불통이 일어나면 균형이 깨지고 발육장애가 생긴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코로나 블루의 대표적 질환인 우울증도 이때 일어나게 된다.”

-뇌의 신비를 풀기 어려운 이유가 뭔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뇌세포가 약 1000억개쯤 된다. 1개 뇌세포는 1000개 시냅스로 연결돼 있다. 1000억개의 세포가 1000개의 통로로 연결돼 있다는 뜻으로, 이러면 무한대의 수가 만들어진다. 즉 서울, 부산, 대구 같은 도시가 1000억개 있고 각 도시 간 1000개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완벽하게 다 해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만드는 인공지능(AI)은 일종의 가짜 뇌다. 진짜 뇌에 대한 비밀을 하나씩 풀다 보면 AI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AI에 지성을 집어넣어 AI가 상식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 쓸 수 있다. 너무 똑똑한 AI가 상식선을 넘게 되면 인간에게 오히려 폐해가 될 수도 있다. 챗봇 ‘이루다’의 논쟁도 AI가 지성을 갖지 못해 생긴 일이다.”

/ 한국뇌연구원


-뇌과학은 분야가 넓어 보인다. 한국뇌연구원은 요즘 어떤 연구를 집중하고 있나.

“많은 생명과학 정보가 통계나 분자, 세포, 동물 실험에서 나왔지만 실제 인체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이들 정보 외에 인체의 데이터에 기반을 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학제 간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선순환 중개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선순환 중개연구는 세포나 동물에서 드러난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하는지 확인하는 연구인 ‘중개연구’의 반대 개념이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연구 트렌드가 선순환 연구로 변하고 있다.”

-협력하는 기관이 많을 것 같다.

“20세기까지는 뇌연구가 단순히 뇌를 관찰하는 형태학적 또는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인간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뇌의 기능적·활용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뇌연구는 수학, 과학, 물리, 공학은 물론 심리학과 같은 인문사회학까지 방대한 학문이 결집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최근 한국뇌연구원은 미국 애질런트사와 공동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뇌 지질체 분야에 대한 공동협력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 협력연구센터인 ‘뇌지표분석센터’를 뇌연구원에 개소했다. 이제까지 연구는 뇌 영상 분석, 분자 정보 분석 및 우리 인간 행동을 분석하는 기초연구였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하고 산업계와 연계해 뇌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수의학과를 나왔더라. 수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집안에 큰어른이신 분이 ‘생명체 연구를 하고 싶다면 의대보다 수의대가 더 낫다’며 수의대를 권유했다. 대학원은 의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의대에 진학할 때부터 생명과학 관련 기초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수의대에서 동물의 생리현상이나 질병연구를 하면 궁극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을 바로 연구하지 못하니 동물을 모델로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수의대 출신들이 잘한다.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 등 기초 생명과학 분야나 생리학 등은 수의학을 배경으로 하는 연구영역이다. 때문에 화학이나 물리하는 사람들도 최근에는 수의학으로 많이 넘어온다. 수의학은 인간과 동물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생리학 등 기초과학부터 질환 관련 임상의학까지 두루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학문이다. 다만 수의학은 세포나 동물, 심지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

-최근 발표되는 자료들을 보면 한국 과학계가 점점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크기가 작다. 인구만 봐도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고 일본의 3분의 1이다. 연구개발 예산도 일본이 50조원, 중국이 200조원 쓰는데 우리는 23조원 쓴다. 매스(총량)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우리가 밀린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고 보면 우리는 대단한 수준에 와 있는 게 사실이다. 10년 전 SCI급 논문 기준의 한국 점유율이 0.5%였다. 당시 일본은 9%였다. 중국은 10%대였다. 내가 알기로 지난해 중국이 20%를 넘어섰지만, 일본은 6%로 떨어졌다. 우리는 2%로 올라섰다.”

-의대가 인재를 너무 많이 흡수해간다는 지적이 있다.

“선진국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미국, 일본 다 그렇다. 높은 삶의 질을 바라니 의대로 간다. 과거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일 때는 공대 인기가 많았다. 지금은 먹는 것을 해결한데다 고령화 시대까지 겹치니 의대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의대를 간다고 의사만 되는 게 아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분의 1은 의대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의학자를 잘 키우면 우리나라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주요 의대에는 정말 반짝반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세계 10대 경제국가로 성장한 지금은 우리가 세계를 선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 내에 위치한 한국뇌연구원(KBRI)은 뇌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소로 2011년 설립됐다. / 한국뇌연구원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인재양성 쪽으로도 많은 역할을 했더라. 과학 인재양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해외에서 앞선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학은 포닥(박사후연구원) 중심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대학은 포닥으로 가야 한다. 서울에 있는 주요대와 부산대, 경북대 등 지방거점대학은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면 된다. 지금은 이런 생태계가 잘 안 돼 있다 보니 젊은 연구자들이 외국으로 나가지만, 우리나라도 포닥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할 만한 역량이 된다. 최근 노벨과학상을 받은 연구를 보면 박사과정에서 결과물을 낸 것은 거의 없다. 포닥의 젊은 주니어 교수일 때 연구했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는다. 우리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포닥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20년 내에 한두명 노벨상이 나올 거다.”

-포스텍,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지방소재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서 30년을 보냈다.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지방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과학기술의 첨단 연구 분야가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여러 지역에 지역전략과 연계한 연구개발특구와 국책연구기관이 설립돼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을 세우면서 지역주도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변화에 대응하고 지역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 정부의 투자전략에 맞춰 지방도 연구현장 중심의 과학기술전략이 필요하다. 한국뇌연구원과 대구의 다양한 의료기관과 대학, 연구기관이 연계해 국가차원의 뇌산업을 지역에서 육성해보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올해 초 대구시에서는 ‘대구형 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그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대구 브레인시티 구현’을 목표로 내세웠다.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 극복, 뇌기반 휴먼증강기술 구현 등 뇌산업 전략도 발표했다.”

-지방은 특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대구는 의료기반이 원체 좋다. 대구·경북이 잘하는 것을 특화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최근 포항 세명기독병원에 국내 최대규모의 뇌병원을 만들었다. 과거 부산·경남은 조선, 대구·경북은 전자를 키웠던 것처럼 지방거점대학도 특성화를 강화해야 한다. 합계 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지방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특화다.”

-과학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뇌연구원의 핵심가치로 ‘성장’과 ‘성숙’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산업화·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아직 성숙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숙은 간단하다.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내 연구 분야가 세포 간의 소통을 핵심으로 삼듯 일상에서도 항상 이해하고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가까운 친구이자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팀 헌트 교수는 ‘과학자에게 즐거운 시간은 짧고, 좌절의 시간이 더 많은 법이다. 과학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성공하려면 수도사처럼 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연구현장에서 늘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해 지식을 축적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과학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라 열정을 가지고 즐기면서 노력하기를 거듭 당부드린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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