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받아 줄 병원 없는 노숙인, 코로나發 의료공백 해소 '제자리걸음'

이소현 2021. 4. 1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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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취약계층 의료공백 발생
서울시, 의료공백 해소차 노숙인 전담병원 폐지 건의
시민단체, "의료 접근권 제한하는 제도" 폐지 주장

[이데일리 이소현 김민표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서울시가 코로나19 이후 사회 취약계층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답보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감염병 재확산에 따른 병상 부족을 막기 위해 노숙인 전담으로 지정된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으로 전환,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진료시설 확대도 한계에 달해 코로나19 의료공백을 가장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노숙인 의료 문제가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모든 의료기관서 노숙인 치료”…전담병원 지정 폐지 건의

15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를 폐지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는 유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서울시는 작년 12월 코로나19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노숙인 전담병원 지정 폐지를 건의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작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선안을 복지부에 건의했지만, 현재까지 회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1·2차 의료급여기관에 노숙인 진료시설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는데, 모든 의료기관에서 노숙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변경하자는 취지다.

서울시가 처음으로 노숙인 전담병원 지정 폐지를 건의한 것은 노숙인 전담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진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실제 서울시내 병원급 이상 의료시설 283곳 중 노숙인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시립병원으로 동부·보라매·북부·서남·서북병원, 서울의료원 등 단 6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바뀌면서 노숙인의 의료공백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일례로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차모(76·여)씨는 거동이 불편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등 응급 구조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본인이 구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문제는 차씨를 설득한다고 해도 노숙인 전담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를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차씨는 지난 14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몸에 3도 화상을 입고서야 화상전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시민단체는 노숙인 전담병원 지정 제도가 오히려 차별을 유발한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노숙인 인권운동단체인 홈리스행동 측은 “기초수급자 등이 지정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제도는 지난 1999년 폐지했다”며 “유독 노숙인만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노숙인 전담지정 병원이 필요한 정책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지정된 의료시설에만 갈 수 있다는 제도는 차별이며 폐지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재천 운영위원도 “원칙적으로 노숙인에게 갈 수 있는 병원을 정해주는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며 “노숙인들의 의료 접근권을 제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노숙인 전담병원 제도 유지키로…“진료시설 신규 발굴 가능”

하지만 정부는 현행 노숙인 전담병원 지정 제도를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숙인 전담 의료시설 지정 제도 폐지와 관련해서는 논의가 이뤄진 바 없다”고 말했다. 대신 노숙인 전담 진료시설을 신규 발굴하고 지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지속에 따른 노숙인 의료공백 발생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별 연계 협력으로 협조체계를 구축, 노숙인 대상 진료시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이후 전국 종합병원 6개를 포함해 19개 병·의원(서울 1·부산 10·인천 1· 강원 4· 충북 1·경북 2곳)을 노숙인 전담병원으로 지정했다. 이에 전국 노숙인 전담 의료 시설은 267개에서 286개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코로나19로 현재 노숙인 전담병원의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고, 앞으로 추가 지정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숙인 전담 의료시설 추가 지정을 위해 각 자치구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상태”라면서 “자치구별로 관내 2차 의료기관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반영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까지 양천구 소재 병원 한 군데가 신청서를 제출해 지정서가 발급된 상태이며, 실무적인 차원에서 협의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노숙인 전담 진료시설 신규 지정은 태부족으로 특히 서울시는 노숙인 인구도 가장 많은데 고작 한 곳만 추가됐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더 적극적으로 많은 병원급 이상 의료시설을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 원각사 무료급식소 건물 앞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아침 배식을 받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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