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요] 술자리에서 대출상담을?..은행 지점장의 이상한 갑질

김지선 2021. 4.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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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 1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하나은행 지점장 A씨가 여성 고객 B씨를 술자리에 불러 음주를 강권했다는 내용이었죠.

B씨 측에 따르면 이는 소상공인 대출을 알아보던 중 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A씨를 소개받은 다음 날 일어난 일인데요.

대출 상담인 줄 알고 나갔던 B씨는 "접대 여성처럼 여기는 듯한 말에 모욕감을 느꼈고 두려움에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털어놨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은행 측은 인사위원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 지난 16일 이 지점장을 면직 처리했습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단돈 한 푼이 아쉬운 소상공인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했다며 비난이 쏟아졌죠.

일부 시중 은행의 이른바 '대출 갑질'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 4월 한 은행 직원이 고객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했다는 글을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파문이 일었는데요.

당시 승인된 대출을 어떻게 거부했는지 묻는 댓글에 "난 내가 해주기 싫으면 안 한다"고 답해 공분을 샀습니다.

해당 은행 측은 일단 통과된 대출을 직원이 일방적으로 물리칠 수 없고, 만약 그랬다면 감사에 적발됐을 것이라고 일축했는데요.

하지만 관련 카페에서는 은행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후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자영업자는 "대출 담당자가 고자세로 나와도 불이익이 올까 봐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죠.

본점 심사부를 통한 대출 심사가 도입되면서 일선 지점 권한이 이전보다 대폭 축소됐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론입니다.

은행 지점장을 지낸 C씨는 "1980∼1990년대 거래처로부터 접대나 리베이트를 받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출 좀 받아 가라고 읍소하는 형편"이라며 "(여성 고객을 술자리로 호출한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식 이하 행동"이라고 못 박았는데요.

그러나 구체적 절차를 알 길이 없는 소비자로선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일반인들은 지점장 전화를 받으면 대출이 성사될 확률이 높다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전히 일부 은행은 고객 신용도가 높거나 대출액이 작은 경우 지점장에게 대출 전결권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점장이 0.5% 내외에서 금리를 깎아줄 수 있는 은행도 상당수인데요.

특히 기업 대출의 경우 본점에 심사를 맡길 때 업체 현황 등을 바탕으로 지점장 의견을 달 수 있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 같은 직권을 악용하는 일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고 있는데요.

농협은행 지점장은 타인 명의로 부동산담보 대출을 신청한 것을 알면서도 약 100억 원을 빌려줬고, 전 우리은행 지점장은 재직 당시 담보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30억 원을 내줬다가 문제가 됐죠.

우대금리 적용 조건으로 예·적금, 카드 등 다른 금융상품을 끼워파는 '꺾기' 역시 업계의 고질병인데요.

심지어 정부 공적자금을 재원으로 한 코로나19 긴급대출 마저 '꺾기'를 자행, 자신들의 영업 기회로 삼았다는 지탄을 받았죠.

최근엔 차입자 조건이 기존과 동일한데도 대출 연장 시 가산금리를 0.1∼0.2% 더해 문제가 됐는데요.

이는 대부분 모르고 지나치기 때문에 '변종 갑질'이라는 지적입니다.

앞으로 대출 심사가 더 엄격해질 전망이어서 서민에게 은행 문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은행의 횡포를 뿌리뽑기 위해 잘못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임직원을 인사 조치하고, 금융감독원이 은행을 징계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짚었는데요.

금융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등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득의 대표는 "지점장 일탈은 은행 내부통제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고,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객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등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풍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담보 능력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규모 업체는 대출 제도 자체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번 일은 금융권이 자영업자를 대하는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자기들 편의가 먼저이다 보니 갑질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강경훈 교수는 "영국은 중소기업이 신청한 대출을 은행이 거절하면 그 서류를 정부 플랫폼에 제출, 다른 금융사도 검토할 수 있게 한다"며 "자금 원천을 다양화해야 영세업자의 손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김지선 기자 조현수 인턴기자 주다빈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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