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 불신시대..사회 현안에 목소리 높이는 CEO들
선명한 정치색, 기업 실적에 이익 주장도
정치색·실적 호조 연관성 '글쎄'..정경유착 우려도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인들은 다른 국가에서 정치와 기업의 역할이 뒤섞이는 것을 해당 사회의 제도가 붕괴되거나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된 신호로 본다. 하지만, 오늘날 그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현실에 대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이 표현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행동주의’ CEO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당시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성명을 잇따라 낸 데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양책 의회 통과 촉구와 최저임금 인상·부유세 도입 논쟁, 투표권 제한 법안 반대 등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가는 추세다.
하지만, 이 같은 CEO들의 사회 참여 강화 움직임이 ‘정경유착’ 등으로 이어져 결국 기업과 해당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 주주들에게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주별로 동시에 진행 중인 투표권 제한법 문제를 두고 기업의 정치 관여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앞서 조지아주와 텍사스주는 우편 부재자 투표 시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을 제출하도록 하고, 부재자 투표 신청 기한 단축과 투표함 설치 장소 제한 등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밖에도 미시간주 등 지난 대선 기간 접전이 벌어졌던 모든 주를 비롯한 24개 주에서 공화당이 발의한 55건의 법률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 내 주요 기업 CEO들은 투표권 축소가 미국의 가치는 물론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잇따라 반대 목소리를 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항공·소매·제조업 등 100여개 기업과 CEO들은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광고란에 ‘투표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게재했다.
케네스 셔놀트 전 아메리칸익스프레스 CEO, 케네스 프레이저 머크 CEO 등 흑인 경영인들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성명에는 107곳의 기업과 64개 로펌, 기업과 비영리재단 CEO를 포함한 유명 인사 수백 명이 참여했다. 아마존, 애플 등 IT 업체, 골드만삭스와 블랙록,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금융회사, 타깃 등 유통 업체,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도 이름을 올렸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완성차 업체는 본사가 위치한 미시간 주의 투표권 제한 움직임에 반대 성명을 냈고, 코카콜라와 델타항공 등도 본사가 소재한 조지아주의 투표권 제한법 통과를 강력 비판했다.
재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이 넓게는 투표권을 확대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사실상 공화당에 반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진영에선 곧장 반발하고 나선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지지자들에 코카콜라, 미 프로야구(MLB), 델타항공, 씨티그룹, 비아콤CBS, UPS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을 독려하고 나섰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재계를 향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칼끝을 겨눴다.
재계가 정치·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의 배경에는 여론도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정치권과 행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는 빠른 속도로 추락한 반면, 재계에 대한 신뢰는 급상승했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그룹 에델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3%는 정부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기업과 CEO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중립을 깨고 정치·사회적 사건에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도리어 사업적으로도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4년 성매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던 글로벌 여행사 칼슨 컴퍼니가 업계의 중립적 이미지를 손상시켰다는 업계 다른 기업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에게는 ‘영웅’ 대접을 받은 일도 있었다. 실제 매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인 기업들은 최근 5년간 종교의 자유, 총기 규제,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 향상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마케팅 솔루션 그룹 웨버샌드윅의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대로 인해 고객들은 기업이 특정 정치·사회적 사안에 어떤 입장인지 명확하게 밝히길 요구한다고 주장하는 기업과 CEO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계가 정치·사회적 문제에 점점 다가서는 것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치·사회적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자기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몇몇 기업들의 믿음이 허황될 것이라는 전문가도 있다.
보수 성향의 컨설팅 업체인 링컨 네트워크는 “특정 정치적 어젠다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억압적이고 단일화된 내부 문화를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발견됐다”며 “이는 창의성을 육성하기보단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오른 기업들의 실적을 살펴봐도 선명한 정치색을 띄는 것이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거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로베르토 탈라리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S&P500 기업의 10년 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와 실적을 분석한 결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움직임이나 동물 복지 등 공익적 목표가 기업 성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정치권과 밀착할 경우 ‘정경유착’이란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자신의 주요 국정과제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과 기후 변화 대응,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한 투자와 R&D(연구·개발)를 강화하는 데 정부와 기업 간의 협력과 밀착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사회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기업들도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력에 적극 나서는 것이 현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정치 권력에 경제 권력까지 모이는 권력의 집중 현상이 매우 위험한 신호라 생각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해를 끼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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