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사라진 '올림픽'·지워진 '오염수'..日 NHK가 수상하다

황현택 2021. 4. 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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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선 두 가지 큰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개막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정상 개최 여부, 그리고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 문제입니다.

두 사안 모두 반대 여론이 많습니다. 도쿄올림픽의 경우 일본 국민 72%가 '취소'(39.2%), 또는 '재연기'(32.8%)를 요구했고(*교도통신, 4월 10~12일, 1천15명 조사), 오염 수 '해양 방류' 역시 과반인 55%가 반대(찬성 32%) 입장입니다. (*아사히신문, 지난해 말, 2천126명 조사)

물론 언론이 여론을 단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닌 만큼 반드시 세론(世論)을 쫓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수신료로 운영되는 일본 공영방송, NHK가 최근 이 두 사안과 관련해 일으킨 논란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 NHK 방송의 특설 사이트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라이브 스트리밍’. 다시보기도 가능하다. <NHK 홈페이지>


■"올림픽 반대" 30초 공백

NHK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전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121일간 봉송과 함께하고, 성화를 잇는 주자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겠다'는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봉송 주자 근접 촬영이 가능하도록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협조도 얻었습니다.

문제가 된 건 봉송 8일째인 4월 1일 저녁, 나가노(長野)시에서의 일입니다. 7번째 주자의 봉송 도중 갑자기 "올림픽 반대" "올림픽 필요 없다"라는 고함이 들립니다. 바로, 그 순간 동영상은 갑자기 약 30초간 묵음이 됩니다. 현장음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야유는 사라지고, 박수 소리만 들립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당시 길가에선 10여 명이 서로 거리를 둔 채 손 마이크를 들고 "올림픽 개최 반대",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남은 건 빚과 자연 파괴뿐"이란 구호를 외쳤다고 합니다.

시위자 중 한 명인 에자와 마사오씨(江沢正雄·71)는 "NHK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지웠다면 표현의 자유를 짓밟힌 셈"이라며 "반대 의견을 경청하는 건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그걸 전하지 않는 건 보도의 자유를 언론 스스로 망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NHK 방송이 홈페이지를 통해 전하고 있는 도쿄올림픽 성화 봉송 중계 화면. ‘도쿄올림픽 반대’ 구호가 들린 뒤 약 30초간 묵음 처리돼 있다. <NHK 화면 캡처>


NHK, "다양한 상황 판단"

NHK는 이에 대해 "성화를 들고 달리는 봉송 주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해 다양한 상황을 판단했다", "올림픽을 둘러싼 여러 의견에 대해서는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적어도 기술적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NHK의 설명은 정당한가요?

다큐멘터리 감독인 모리 타츠야(森達也)는 아사히신문에 "현실에 있는 소리를 지우는 것은 '가공'이며, '여러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는 NHK 해명 역시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헤이트 스피치'(차별·혐오 발언) 등이라면 긴급히 음 소거를 할 수 있겠으나 그 경우에도 반드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일은 시민이 수신료 제도로 지탱하는 NHK라서 특히 아쉽습니다. 정부와 광고주 영향을 받지 않는 공공 매체로서 소수 의견도 전할 의무가 있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시민단체 '올림픽이 필요없는 사람의 네트워크'는 16일 NHK 나가노 방송국을 찾아 항의문을 전달하고, 상세한 경위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보관하는 저장 탱크가 원전 내부를 꽉 채우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


■'오염수'→'처리수'로 정정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은 또 있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지난 9일,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방침을 굳혔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NHK 역시 해외 거주자를 위한 뉴스사이트 '월드재팬'(World Japan)을 통해 같은 내용을 전했습니다.

"Japans leaders have decided to release the radioactive water in to the ocean."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사흘 뒤인 12일, NHK 국제방송은 갑자기 공지글을 올립니다. 이미 출고된 기사에서 '방사능 오염수'(radioactive water)라는 표현을 '처리수'(treated water)로 정정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제목 등에서 '물'이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방출되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해양에 방류되는 물에 대해서는 처리됐다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해 '처리수'(treated water)로 표현하겠습니다."

NHK 국제방송이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글. 앞으로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언론은 '오염수'

'처리수'는 일본 정부가 쓰는 용어입니다. '오염수'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왜 지금까지는 안전하다고 믿는 '처리수'를 방류하지 않고,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탱크에 쌓아놓고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 그 물이 안전하다면 왜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방류 허가'를 얻어야 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해외 언론은 어떨까요?

CNN과 뉴욕타임스 등 일부 미국 언론을 제외하고 상당수 서구 언론은 '처리수'가 아닌 '오염수'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BBC, 영국 일간 가디언, 로이터 통신, 독일 통신사 DPA 등이 그렇습니다. 터키 관영 아날돌루 통신은 아예 '후쿠시마 폐수'(Fukushima wastewater)라고 썼습니다.

아직도 논란입니까? 하나만 더 보죠.

12만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과학자 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는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를 발행합니다. 지난 13일 사이언스는 후쿠시마 관련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다핵종제거설비(APLS)를 거쳤지만, 저장 탱크의 71%에는 트리튬(삼중수소) 이외의 방사성 핵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시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데 '오염수'(contaminated water)라는 표현은 5번 사용됐습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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