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이대론 안돼]④농장주들의 항변 "일부 일탈일 뿐..우리도 힘들다"
"이주노동자 의식 높아..함부로 대했다간 큰 일"
[편집자주]중소규모 공장이나 농어촌의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는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90만명에 육박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까지 왔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주권과 인권 침해 사례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1은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남양주·경주=뉴스1) 이상휼 기자 = 충북 보은의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서 불법 카메라 설치 등 농장주에 의한 범법행위가 발생해 논란이 되면서 '외국인 근로자 인권 사각지대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느냐'는 비판 여론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다수 농장주들은 일부의 일탈일 뿐 싸잡아서 매도하는 시선을 보내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경북 경주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업주 윤모씨(40대)는 비단 외국인 근로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어려운 처지라고 호소했다.
윤씨는 18일 "일부 지역 농장의 일탈과 범법행위를 토대로 일반화하지 마라"면서 "외국인만 열악하냐? 한국인들도 열악하다. 해외 선진국도 마찬가지 다 열악할 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각국의 노동자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루고 똘똘 뭉쳐서 대응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말했다.
윤씨에 따르면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 텃세가 존재한다고 한다. 인원수가 많은 국적 근로자들이 소수 국적 근로자들을 핍박하거나 해코지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끼리 싸움이 나서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중상이 아닐 경우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쉬쉬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비싼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농장주나 공장주가 대신 치료비를 대주고 월급에서 깎기도 한다. 이는 족쇄로 작용해 고용주로부터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게 되는 사례가 더러 있으나 흔하지는 않다.
중국인 근로자는 국내 농어촌이나 공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중국 내수시장의 인건비가 우리나라 못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인들은 국내 건설현장을 잠식해 오히려 한국인들이 중국인 관리자 밑에서 일용직을 하는 추세다.
◇ 한철 농사인데 도심지 기숙사 제공?…"서로 불편해"
일손이 부족한 농촌지역의 각 농장에서는 사시사철 일손이 필요하지는 않다. 농번기 때 '계절근로자'라 불리는 근로자를 몇 달간 임시로 쓴다.
내국인들은 농촌 근무를 원치 않기 때문에 젊고 힘좋은 젊은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고, 또 이들은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하다.
농촌은 교통이 열악하기 때문에 도심지역에 원룸 등 기숙사를 구해주면 오히려 '출퇴근'이 어렵다. 농가에서 차로 출퇴근을 시켜주는 일이 오히려 시간소모가 더 크다.
결국 비닐하우스나 논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컨테이너나 임시막사 등 간이건물을 지어주고 기숙사로 지내게 한다. 냉난방 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시설들은 그래서 생긴다.
그렇다고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도심지 기숙사를 마냥 선호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한철 직장이라, 일터 가까운 곳에서 지내는 것이 일을 끝내면 빨리 쉴 수 있어 장점이라고 한다. 비록 열악하지만 참고 지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좋은 기숙사 대신 열악한 가건물을 내어주는 대가로, 농장주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급여를 많이 주기도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많은 보수를 받아 돈을 벌고 빨리 이 나라를 떠나 본국으로 가는 게 목표다.
이런저런 저마다의 편의와 사정으로 국내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70%가 가건물에 거주한다는 게 농장주들의 주장이다.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조치…농어민들 "비현실적 졸속정책" 지난해 12월20일 포천시 일동면의 농장 비닐하우스 내에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 A씨(30)가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당초 영하 18도에 육박하는 한파로 인해 A씨가 동사했다고 알려졌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에 따른 경찰 수사결과 사인은 간경화에 따른 부정맥 파열이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구급대원도 농장주에게 '장판 코드 좀 뽑아달라. 응급처치에 방해가 된다'고 요청한 바 있으며, 당시 현장에서는 냉기가 없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해당 업주는 농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변사사건을 기화로 고용노동부는 농·어업 분야에 고용된 외국인 근로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농식품부·해수부와 공동으로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사업장 약 500곳, 근로자 약 3800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외국인 근로자 70%가 가건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냉·난방, 목욕·화장실, 채광 및 환기 시설, 남녀 침실 구분은 99%가 지켜졌다. 그렇지만 잠금장치가 없는 경우, 소화기·화재경보기가 없는 경우가 다수였다.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생활 보호, 화재 위험에 취약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올해 1월 고용허가 신청(신규, 사업장 변경, 재입국특례, 재고용 등) 때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있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 농가는 오는 9월까지 기숙사를 신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고용허가가 취소된다.
이에 농어민들은 "농어촌의 사정을 무시한 졸속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의 한 농장주는 "농촌 수입이 얼마나 된다고 사건 터질 때마다 막무가내식 정책을 밀어부치는지 의문"이라며 "요즘은 코로나19 여파로 입국이 불허돼 외국인 근로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다. 이 판국에 근로시설 개선이라고 고비용을 투입하라는 것은 한평생 지은 농사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푸념했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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