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이대론 안돼]②코로나로 노동환경 더 추락.."불체자라 속수무책"

박대준 기자 2021. 4. 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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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 허락 없이 일터도 못 옮겨
근로계약과 다른 추가·파견근무 '분통'

[편집자주]중소규모 공장이나 농어촌의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는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90만명에 육박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까지 왔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주권과 인권 침해 사례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1은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경기 북부의 한 농장 이주노동자 기숙사 모습.(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뉴스1

(전국=뉴스1) 박대준 기자 = 충북 보은의 한 버섯농장 외국인근로자 숙소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권침해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각 지역마다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와 시민단체가 사업주들의 임금체불이나 인권침해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과거보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근로자들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시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노동자가 혹한 속에서 사망한 사건 이후 열악한 주거 환경(비닐하우스 기숙사)이 최근 논란이 된 데 이어서 이번 불법 카메라 설치사건은 한동안 잊고 있던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올해 1월 경남 밀양의 한 깻잎 농장의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이주노동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농장주는 ‘전기를 과도하게 사용해 불이 난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며 ‘당장 일을 하지 않으려면 나가라’고 해 논란이 됐다. 결국 이 사건은 체불된 급여만 지급받고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지난 2017년 전남의 한 오리농장의 방글라데시 국적 노동자들은 “지난 3년여간 농장주의 폭언과 폭행, 불법파견, 임금체불 등에 시달려왔다”며 “일터를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노동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바쁠 때는 화장실도 갈 수 없어 옷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지난 2015년 경기 고양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는 캄보디아 출신의 외국인근로자가 일터를 옮기겠다고 말했다가 농장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선 외국인근로자가 일터를 옮기기 위해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농장주는 이직에 동의할 수 없다며 행패를 부렸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13일 충북도청 서문 앞에서 이주 노동자의 주거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스1

◇ 폭언·폭행에 여성 이주노동자는 성희롱까지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주는 물론 동료 이주노동자들의 성희롱이나 성추행에도 시달리며 불안해 떤다.

한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사례에 따르면 여성 이주노동자인 G씨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에서 농장주가 “같이 술을 마시자”며 근무 시간에 술집을 데려가고 심지어 농장주 차 안에서 강제로 옷을 벗기려 하는 등 성추행까지 저질렀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공장주와 농장주 또는 관리자들 뿐만이 아니다. 같은 이주노동자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여성 이주노동자 B씨의 경우 농장에서 일하며 또 다른 여성 이주노동자 1명과 남성 이주노동자 2명 등 4명이 숙소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동료 남성 2명이 방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행동을 수차례 반복해 신변에 위협을 느꼈고 결국 농장을 떠나야 했다. 당시 농장주에게 전후 사정을 호소했지만 ‘알아서 하라’며 별다른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다고 했다.

몰카사건을 신고한 충북 보은군 버섯농장의 말레이시아 국적 노동자는 경찰에 한국인 농장 관리인이 지난해 초부터 여자친구를 성추행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업장은 최초 근로계약과 다른 추가 근무나 파견근무를 요구해 이주노동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태국 국적의 C씨는 김치공장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한국에 입국해 근무를 시작했지만 근무중 수시로 공장에서 근무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배추농장에서 근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런 부당 지시에 따라 C씨는 공장이 아닌 해당 농장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태국 국적의 D씨는 금형공장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근무를 시작했지만 어느 날 사업주는 D씨에게 사업장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공장으로 임시 파견근무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사업주의 일방적인 파견근무는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상담을 진행한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근로계약서 상에 명시된 사업장 외에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근무처 무단 변경은 위법행위”라고 전했다.

지난 2019년 10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동의 자유와 노동허가제 쟁취 등의 구호를 담은 공을 굴리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베트남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스스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며 일터를 옮길 수 있는 이동의 자유를 달라고 촉구했다. 2019.10.2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 코로나 장기화로 불법 체류자 전락

정부는 포천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이후 비닐하우스 기숙사 금지와 난방시설 설치 의무화, 1실 거주 인원 기준을 15명 이하에서 8명 이하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업주의 비용부담 등을 이유로 여전히 열악한 기숙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고양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가나 국적의 E씨는 “좁은 컨테이너 한 칸에 4명이 생활하고있는데 올 겨울 난방이 제대로 안돼 밤에는 좀 더 사정이 나은 인근 동료의 기숙사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1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불법체류자로 신분이 전락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은 물론 숙식비를 처음 계약과 다르게 강제로 징수당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코가 석자다 보니 이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이들은 용역회사를 통해 농장 등으로 일을 나가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이마저 소개비와 교통비 명목으로 30% 이상을 뜯기며 실제 손에 받아 쥐는 돈은 일당 6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더구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안전교육이나 도구도 지급하지 않아 사고에도 취약한 상황이다.

박현종 노무사는 “현재 고용허가제는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지 않는 한도 내에서 힘든 노동현장에 외국인 인력을 투입,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권익을 위한 장치가 허술하다”며 “내국인과 동등한 인권정책과 이를 위반할 경우 보다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dj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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