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역 쪽방촌 주민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주민은 '공공' 집주인은 '민간' 외쳐

고성민 기자 2021. 4.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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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정치쇼 졸속행정, 소유주의 동의 없는 강제개발 지금 당장 중단하라!",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모두가 상생하는 민간 재개발로!"

"공공주택사업 환영", "공공성 강화가 대안이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대 ‘서울역 쪽방촌’에 정부의 공공 개발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 16일 찾은 국내 최대 규모 쪽방 밀집지역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건물 외벽과 길거리 골목마다 현수막이 가득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전(戰)을 방불케 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공공이냐 민간이냐’ 개발 갈등으로 둘로 쪼개진 것이다. 거리에는 곳곳에 붉은색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공공 개발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아 걸었다고 한다.

서울역 쪽방촌 개발이 발표될 당시 결사반대를 외치던 소유주 반발이 터져 나왔는데, 그러자 찬성하는 쪽에서도 현수막을 걸고 사업을 추진하자며 맞붙는 모양새다.

동자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내일모레면 나이가 80인데, 개발된다고 새집에 살 수나 있겠느냐"면서 "불덩어리가 떨어진 듯 갑자기 갈등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공공이냐 민간이냐… 갈라진 서울역 쪽방촌

서울역 쪽방촌은 정부가 지난 2월 공공주도 개발을 꺼내며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이다. 정부의 구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나서 2410가구(공공주택 1450가구, 민간분양 960가구)를 짓겠다는 것. 공공이 토지를 수용한 뒤 직접 개발하는 공공주택지구 사업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사업지는 4만7000㎡ 규모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발표한 뒤 주민들은 정부 개발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쪽으로 갈라졌다. 찬반 양쪽 모두 감정이 격하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대 ‘서울역 쪽방촌’의 한 건물 창문에 정부의 공공 개발에 찬성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난 14일 LH 용산특별본부 앞에서 정부의 공공 개발에 찬성하는 ‘동자동사랑방’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원한다"고 했다. 같은날 이곳에선 공공 개발에 반대하는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도 시위를 펼치며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중 난데없이 정부가 끼어들었다"면서 "토지 강제수용에 결사반대한다"고 했다.

이 사업지는 후암특별계획구역1구역(일명 동자1구역)으로 민간 재개발이 추진 중이던 곳이라 갈등이 필연이었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얘기다. 특히 실거주하지 않는 일부 소유주들은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 당해야 해 반발이 크다. 동자동 ‘서울역 고영숙 부동산중개사무소’의 고영숙 대표는 "정비사업계획 용역이 오는 9월 발표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정부가 사업을 발표해 소유주들이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쪽방촌 주민들은 ‘공공 개발이 아니면 이주비밖에 못 받는다’며 공공 개발에 찬성하는 분위기"라면서 "반대로 소유주들은 힘들게 돈 모아서 재산을 왜 나라가 마음대로 하느냐고 반발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처럼 복잡하다"고 말했다.

◇서울 곳곳서 이어지는 반대

공공 개발과 민간 개발 사이에서 주민들이 갈등을 겪는 곳은 서울역 쪽방촌뿐만이 아니다. 재산권 침해 논란과 불분명한 사업 인센티브 등으로 주민 반발에 부딪힌 곳이 많다.

서울 성북구 장위9구역에 공공재개발 반대 비대위가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위). 비대위 사무실의 모습(아래).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서울 성북구 장위9구역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공공재개발 주민대표회와 비상대책위원회로 갈라져 공공과 민간을 두고 다투고 있다. 장위9구역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다 해주겠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어떻게 믿고 개발을 덜컥 맡기겠느냐"면서 "매도를 할 수 있게끔 열어줬으면 팔고 나갈 수라도 있겠는데, 매수자에게 입주권을 안 준다고 해버려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동대문구 전농9구역에서도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도심공공복합사업 1차 후보지로 선정된 은평구 증산4구역도 소유주들이 서명을 받아 정부의 후보지 지정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8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지만, 대부분이 공공주도 공급이라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용적률 600%, 최고 49층의 사업계획을 제시받아 ‘기대보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동작구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과 같은 사례도 있지만, 반대로 잡음이 큰 사업지도 많아서다.

공공재개발은 전체 소유자의 10% 이상이 동의하면 공모 신청이 가능하지만, 사업 추진 동의율(50%)의 문턱은 더 높아 성공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서울역 쪽방촌 사업은 신도시 택지개발처럼 소규모 주택지구로 추진되는 사업이라 ‘강제 수용’으로 밀고 나갈 수 있으나, 보상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강경하게 맞서면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나 공공재개발은 그나마 주민 동의율을 갖춘 뒤 추진하는데, 서울역 쪽방촌 사업은 소유주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협의 과정도 없이 추진하겠다는 거라 문제가 크다"면서 "쪽방촌 사업은 정부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83만6000가구 공급은 당연히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역 쪽방촌의 경우 사업지에 쪽방촌 비율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소유주 대부분 실거주자가 아니라 공공 주도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곳"이라면서 "정부는 공공 사업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울역 쪽방촌을 사업지로 선정한 것 같은데, 사업지 분석을 통해 민간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곳은 민간에 맡기고 민간 개발이 어려운 곳을 공공 개발 사업지로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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