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지로 몬 서울 지하철 미세먼지 저감사업, 어떻게 복마전이 됐나

권오은 기자 2021. 4.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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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원 미세먼지 저감사업 1년째 공전

서울시, 서울교통공사의 고의 지연 판단

사업 담당자에 수사의뢰·해임권고 중징계

공사 "고의 지연 아냐… 재감사 신청 계획"

서울 지하철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집진기 설치 사업이 1년째 공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2차 감사를 진행해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에게 경고 조치를 했다. 사업을 총괄했던 김모 전 서울교통공사 기술본부장은 수사의뢰하고, 이모 기계처장에게는 해임 권고를 내리는 등 중징계를 요구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서울교통)공사에서 고의적으로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 공사의 명예가 훼손됐으며, 사업지연에 대한 피해는 시민에게 미치게 됐다"고 판단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지하철 내 미세먼지 농도를 법정기준의 50%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지난해 4월 발표했다. 세부사업 가운데 하나로 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철 터널 환기구에 ‘양방향 전기 집진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양방향 전기 집진기는 일종의 ‘대형 공기청정기’로 지하철 터널로 유입되는 미세먼지와 터널에서 도심지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동시에 제거하는 설비다. 국내기업 가운데 리트코만 양방향 전기 집진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합정역 승강장에 설치된 초미세먼지 자동측정기기에 공기질 측정 결과가 표시되어 있다.

◇ 서울시 감사위, 유착업체 일감 나눠주려한 정황 확인

서울시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에 따르면 리트코가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전에 A업체 사장이 리트코를 찾아왔다. A업체 사장은 "김 기술본부장의 소개로 왔다"며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자"고 리트코에 수차례 요구했다. 이후 리트코 측이 김 기술본부장에게 "A업체 사장을 만났다"고 하자, 김 기술본부장은 "훌륭한 회사이니 서로 잘 협력해보라"는 취지로 답했다. 리트코는 지난해 4월 ‘특정기술 보유업체로 선정’되고 A업체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리트코 선정을 두고 특혜의혹이 불거졌고, 경쟁업체가 공모를 무효화해달라며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 1차 감사도 진행됐다. 법원과 서울시 감사위원회 모두 특혜는 없었다고 결론 냈다.

이 과정에서 리트코 측은 김 기술본부장과 다시 면담을 진행했는데, 김 기술본부장이 "둘로 나누어 하나는 리트코로, 다른 하나는 여타 법인으로 해서 집진기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이같은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김 기술본부장이 A업체가 리트코를 방문해 제안했고, 이후 거절된 사실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김 기술본부장이 먼저 리트코에 ‘의무없는 일’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양방향 전기 집진기 설치 개념도.

◇ 서울교통공사 내부서 서로 업무 미루기도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사업이 늘어지는데 서울교통공사 내부 부서간 업무 미루기탓도 있다고 봤다. 지난해 5월 12일 서울교통공사는 양방향 전기 집진기 사업을 확대 추진하기 전에 시범사업을 통해 실제로 미세먼지가 줄었는지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앞서 리트코는 2019년부터 시범사업 차원으로 서울내 지하철 환기구 19곳에 양방향 전기 집진기를 설치했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 분석·평가 결과 지하철 터널 안에서 평균 16.2%, 승강장에서 평균 10.2%가량의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지난해 6월 ‘서울시 지하철 미세먼지 저감추진단 자문회의’에서 양방향 전기 집진기 사업을 확대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정리됐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 보건환경처와 기계처가 서로에게 사업 확대 시행 여부 결정 책임을 미뤘다. 기계처는 보건환경처가 확대 시행 여부를 결론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보건환경처는 관할 업무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서울시 지하철 미세먼지 저감추진단 자문회의가 다시 한번 열린 뒤에야 사업을 확대 추진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후에도 사업이 지연되면서 지난해 12월에서야 실제 사업을 위한 사장방침이 정해졌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서울시 미세먼지 저감추진단 자문회의 결과에 따라 양방향 전기 집진기 사업을 즉시 추진했어야 하는데, 사업 확대 결정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추진을 지연시켰다고 봤다.

사업을 쪼개기 발주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사업은 시범사업을 제외하고 총 109곳에 양방향 전기 집진기를 설치하도록 예산이 잡혔다. 하지만 2019년 예산에 포함된 45개와 2020년 예산에 포함된 64개를 근거 없이 나눠서 발주했다는 것이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판단이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또 서울교통공사 인사이동 과정에서 사업의 세부 설치 항목이 누락된 사실도 인정했다. 전임자가 세부 설치 항목이 빠진 설계 초안을 인사이동과 함께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했는데, 다음 근무자도 누락 사실을 모른채 설계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앞서 리트코는 집진기를 현장에 설치하는 항목이 누락되면서 예산이 30억원가량 과소 책정됐다고 주장해왔다.

서울시청.

◇ 서울교통공사 "고의 지연 없었다…설치비도 예산에 반영"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 감사위원회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양방향 전기 집진기 사업과 관련해 고의적인 업무 지연은 없었다"며 "소송과 (1차) 감사까지 마무리된 뒤 사업 내용과 계약 절차 등을 검토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부 설치 항목도 분류 방식의 차이일뿐 누락되지 않았고, 설치비 등은 예산에 모두 반영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할 예정이다. ‘서울특별시 행정감사 규칙’에 따르면 감사대상기관의 장은 감사결과가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는 그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시장에게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감사 결과 수사의뢰 처분 요구까지 받은 김 전 기술본부장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방이 이어지면서 양방향 전기 집진기 사업을 수주한 리트코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리트코는 사업자 선정 이후 50여명을 추가로 채용했지만 진척이 안돼 결국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관련 설비를 늘리는데 쓴 90여억원도 부담이 됐다. 리트코 관계자는 "이제는 더 요구할 것도 없이, 그저 사업이 합리적으로 진행되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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