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포드 v 페라리'..이번엔 전기차 라이벌전 보게될까 [영화로운 경제]
‘영화로운 경제’는 영화를 통해 우리 주변의 다양한 경제 현상들을 살펴보는 연재물입니다. 금융·부동산 등 투자 관련 분야부터 산업과 생활경제까지 흥미롭고 유익한 경제 이야기를 쉽게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 모아보기]
최근 자동차 산업계에서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십수 년이면 완전한 대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렁찬 엔진 소리로 상징되는 자동차 마니아들의 로망은 점점 옛날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기술을 겨루는 대표적 각축장은 레이싱 서킷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보유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집약해 레이싱 머신을 만들어내고 스포츠로 경쟁하는 곳이죠.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만한 유명 기업들은 백여 년 동안 모터스포츠를 통해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포드 v 페라리’는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 중 비교적 최근 제작돼 사랑받은 작품입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유명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와 페라리가 1960년대에 회사의 자존심을 걸고 펼친 레이싱 대결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60여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영화로 제작될 만큼 경쟁이 치열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당시 포드는 최고 수준의 자동차 레이싱 대회인 ‘르망 24시’에 출전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1900년대 초 설립이후부터 미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포드는 1950년대에 발표한 ‘엣셀’ 등 새 브랜드가 실패하고 60년대 들어서는 쉐보레 임팔라 같은 다른 차종에게 판매량을 추월당하며 위기의식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포드의 마케팅 담당자는 “제임스 본드는 포드를 타지 않는다”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시대에 태어난 세대에겐 ‘섹시하고, 강하고, 승리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르망 24시는 프랑스 르망에서 매년 열리는 자동차 내구 레이스 경기로, 24시간 동안 3명의 드라이버들이 교대로 달려 가장 긴 거리를 주행하면 우승하는 방식의 대회입니다. 1923년 시작돼 사실상 내구 레이스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만큼 가장 위상이 높고 인기도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포드는 이 대회에 출전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포드 자동차의 오너였던 헨리 포드 2세는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당시 재정 위기로 파산에 가까운 상황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던 페라리를 인수하려고 합니다. 페라리는 1949년 르망24시 우승을 시작으로, 1954년과 1958년에도 우승을 차지했고, 1960년부터는 1965년까지 6년 연속 우승을 기록했을 만큼 레이싱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수는 협상 과정에서 페라리 레이싱 팀에 대한 권한을 두고 갈등이 생겨 무산됩니다.
특히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는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엔초 페라리는 포드 부사장을 향해 “작고 못생긴 차를 만드는 당신들의 크고 못생긴 공장으로 돌아가라”며 욕설을 섞은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냅니다. 또한 헨리 포드 2세를 두고는 “돼지 같다”며 “그는 헨리 포드가 아니다. 헨리 포드 2세일뿐이다”라는 말을 전하라고도 합니다. (헨리 포드는 포드의 창업자이자 헨리 포드 2세의 할아버지입니다. 노동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 시키면서 ‘포드주의(Fordism)’라는 말을 만들어 냈고, 세계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 인물로 꼽힙니다.)
실제로도 두 인물의 감정 섞인 자존심 싸움은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포드는 페라리 인수에 실패하자 페라리를 이길 레이싱용 자동차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르망 우승자 출신 자동차 전문가인 캐롤 셸비(멧 데이먼 분)와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가 이 프로젝트를 이끌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포드는 시행착오를 거쳐 1966년 르망24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특히 포드는 일부러 선두에서 멀찌감치 달리고 있던 켄 마일스에게 속도를 늦추도록 해 우승 순간에 포드의 레이스 카 3대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장면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회자할 만큼 인상적인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실제로 포드는 이후 196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르망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자동차인 ‘포드 GT40’은 아직까지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유일한 미국차로 남아있습니다. 포드 GT40은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레이스카의 자존심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페라리도 포드 3대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이 너무 쓰라렸나 봅니다. 페라리는 르망에서 패배한 이듬해인 1967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내구 레이스 ‘데이토나 24시’에서 같은 방식으로 반격 했다고 합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순간 ‘페라리 330 P4’ 3대는 포드가 했던 것처럼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야말로 설욕을 위한 퍼포먼스였고, 이 장면 또한 모터스포츠 역사에 남을만한 순간으로 기록됐습니다.
포드와 페라리는 르망24시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세기의 라이벌로 기억됩니다. 자존심 대결의 이유는 당연히 르망24시를 비롯한 모터스포츠가 가진 막대한 경제효과 때문일 겁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르망24시 등 WEC(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에 포함된 대회들은 당시 포뮬러원(F1)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모터스포츠였습니다. 대중적으로 더 익숙한 F1의 경우 올림픽, 축구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불릴 만큼 경제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대회 마다 개최에 따른 경제 효과가 수천억 원에서 크게는 조 단위에 달합니다.
르망24시의 관객 수는 70만 명에 달하기도 한다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르망24시가 개최되는 프랑스 르망은 인구 10만여 명의 소도시지만 “대회 기간인 이틀 벌어 1년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F1 대회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영국 그랑프리 관객 또한 30만 명이 넘는 수준이고, 여러 경기를 합친 시즌 전체로는 100만 명 수준의 관객이 모인다는 집계도 있습니다. F1 TV 중계의 경우 시청자 수가 평균 6억 명 정도로 전해집니다.
포드와 페라리가 경쟁을 벌이던 때 모터스포츠의 홍보효과는 당연히 대단했습니다. 요즘이야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할 수단이 정말 다양해져서 모터스포츠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자동차 브랜드의 이미지를 결정할만한 결정적 수단이었습니다.
실제로 '르망 전쟁'에서 포드가 승리를 거둔 60년대에 포드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동차 이름인 ‘머스탱’은 1964년 출시됐는데, 이 시기 대히트에 성공했습니다. 포드는 또 르망 외에 F1에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다른 레이싱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모터스포츠를 통해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모터스포츠가 창출해내는 직접적인 경제 효과는 아니지만, 스포츠를 통한 경쟁의 과정에서 자동차 기술력이 향상되는 것도 크게 보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지금은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사이드미러와 룸미러, 세미 오토기어, 디스크 브레이크, AWD 차량 등은 모두 레이스 카의 발전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 들입니다.
모터스포츠 대회의 규정도 선수 안전이나 친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점점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쪽으로 변화해왔는데, 이 때문에 계속해서 까다로워지는 규정에 맞는 엔진과 차체로 더 높은 출력을 내고 좋은 기록을 달성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극한의 상황에 대한 대처와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스포츠에서 다음 세대의 신기술들이 쏟아지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대중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처럼 모터스포츠 또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레이싱 대회가 ‘기술 경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이 나옵니다.
실제로 최고 인기 대회인 르망24시와 F1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동시에 전기차 경주가 확산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두 대회에서 주요 제조사들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르망24시의 경우 1980년대 이후 포르쉐와 아우디가 각각 19회, 13회 우승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대회를 이끌었는데 두 회사 모두 최근 몇 년 사이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시작 단계인 전기차 레이스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최근 두 회사의 내구 레이스 복귀 소식이 들리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참가하던 최상위 클래스가 아닌 양산 자동차 모델 기반 하이브리드 클래스 부문 참여입니다. 최소한 이전만큼 내연기관 레이스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분명해 보입니다.)
F1의 경우도 전망이 예전처럼 밝지는 않아 보입니다. 1970년대부터 아시아 제조사로서 유일하게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던 혼다는 2021년을 끝으로 F1엔진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이 작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F1 엔진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쓰기란 부담스러운 일인 겁니다.
앞서 언급한 곳들을 포함해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눈을 돌린 곳이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입니다. 포르쉐,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BMW, PSA, 르노 닛산, 재규어 랜드로버 등 주요 제조사들이 이미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제조사들의 무게 중심이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포뮬러 E는 2014년 시작된 오픈 휠 전기차 경주 대회입니다. 초기인 만큼 흥행을 위해 기존 레이스에 없던 다양한 요소를 새롭게 추가한 점이 독특합니다. 마치 만화 영화에서만 보던 ‘부스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어택 모드’와 ‘팬 부스트(인기 투표를 통해 일부 선수에게만 지급)’ 등이 적용 됐습니다. 전기차의 특성을 활용해 순간적으로 배터리 출력을 더 사용할 수 있게 설정한 재미 요소입니다.
F1에서는 선수들이 차량의 타이어 마모 상태를 조절하는 일이 중요했다면, 포뮬러 E는 전기차 레이스인 만큼 ‘배터리 관리’가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포뮬러 E에선 관객들과 시청자에게 참가 차량의 배터리 잔량을 보여주는데, 결승선을 통과하는 차량들의 배터리 잔량이 보통 0~1%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배터리 관리에 실패하면 완주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경기 방식이 45분간 내구 레이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터리 관리 전략의 존재감은 더욱 큽니다.
초기에 포뮬러E는 부족한 배터리 기술 탓에 차량 2대를 준비하고 중간에 갈아타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이후엔 기술 향상으로 1대만 가지고도 경주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런 포뮬러 E의 경기 특성을 고려하면 이 대회는 유수 배터리 제조사들이 첨단 기술을 선보이는 장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포뮬러 E는 전기차의 특성상 소음이 적어 도심에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도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는 취소됐고, 올해도 사실상 개최가 어려워 보입니다. F1에 이어 포뮬러 E도 유치하고 전략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관계자들에게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최 전 관련업계와 현대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대회가 약 4000억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경주 대회에 최첨단 레이싱 기술이 집약된 ‘포뮬러’ 시리즈가 있다면 양산차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대회들도 많습니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포뮬러 E에 이어 양산차 레이스가 출범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개최를 예고한 ‘일렉트릭 GT 챔피언십’은 테슬라의 ‘모델 S’를 기반으로 대회를 진행한다는 사실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투자 등 문제로 아직까지 정식 개최되지는 못했습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제조사 중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기업인만큼 레이스 참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모델 S에 이어 지난해 모델3과 로드스터 기반의 레이스카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전기차 레이스가 초창기인데다 코로나19 유행까지 겹치면서 빠르게 선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 몇 년 후면 다양한 제조사들이 레이스에 참가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독주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테슬라는 전기차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올해는 폭스바겐, 벤츠, 아우디, 포드, GM, 현대차 등 시장의 전통적 강자들이 ‘전기차 전환’을 속속 선언하면서 발 빠르게 추격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주식 시장만 보더라도 테슬라의 주가가 주춤하는 동안 전기차 전환을 선언한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뛰었습니다. 시장의 기대가 테슬라의 ‘독주’에서 ‘경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테슬라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한발 먼저 앞서고 있다면, 바로 뒤를 쫓을 기업은 어디가 될까요? 전기차 시대엔 ‘테슬라 대 폭스바겐’, ‘테슬라 대 벤츠’같은 라이벌 전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세기의 포드와 페라리처럼 멋진 승부를 보여줄 ‘세기의 라이벌’이 전기차 레이스에서도 나타나주기를 기대해봅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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