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뉴스]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다"..28년 전엔 펄쩍 뛴 일본
당시 일본 "러시아의 투기 원천봉쇄하겠다"
'핵폐기물 투기 전면 금지' 국제협약 이끌어 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염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부서진 원자로 시설에 지하수나 빗물이 모여 하루 140톤가량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2022년 가을쯤 오염수가 포화 상태에 이르는 데다 추가 저장 설비를 확보할 여건이 안 된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오염수를 희석시켜 삼중수소(트리튬)의 농도를 기준치의 40분의 1 수준으로 낮춰 배출하겠다"고 했는데요. 그 경우 트리튬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의 7분의 1로 낮아진다는 게 일본의 설명입니다.
후쿠시마의 닮은 꼴 '1993년 러시아 핵폐기물 투기 사건'
앞서 1993년에도 국제 사회는 '러시아 해군의 핵폐기물 투기 사건'으로 진통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같은 해 2월 26일 영국의 권위있는 민영방송 채널4TV에 보도됐습니다.
문제를 조사 중이었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환경보좌관 알렉세이 야블로코프 박사는 채널4TV를 통해 "해군이 핵잠수함에서 쓰던 중고원자로 등 핵폐기물을 비밀리에 동해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오래된 관행"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죠.
당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공개한 러시아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동해를 포함한 극동해역 중 총 10곳이 핵폐기물 투기장소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투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고, 그 양은 1993년까지 액체 핵폐기물이 1만2,300㎥, 고체는 6,200㎥ 규모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 극동지역엔 구(舊)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소련)의 핵 기지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실체가 뒤늦게 드러나게 된 것이죠.
옛 소련과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고 있는 이유 역시 핵처리 및 저장시설이 부족해서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일간지 시보드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를 포함해 옛 소련 각국의 원전 내 핵물질 저장시설 중 53.5%는 더 이상 핵폐기물을 저장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즉, 지상은 포화상태인데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옛 소련과 러시아 정부는 핵잠수함 등이 비밀리에 방사능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을 눈 감고 못 본 척한 셈이죠.
1993년의 일본 "핵폐기물 투기 완전 금지해야"
일본 정부는 같은 해 4월 러시아 정부에 강력 항의하고 핵폐기물 투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일본 외무부는 4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는 과거에도 구 소련 측에 핵폐기물을 버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며 "최근 러시아 정부에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단 한 번도 투기를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 비판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런던협약(폐기물 및 기타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방지에 관한 협약)'의 개정을 이끌어 내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당시 런던협약은 고준위핵폐기물의 투기는 전면금지하고 있었지만, 저준위의 경우 해당국 정부의 허가가 있으면 수심 4,000m 이상의 해역에는 버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의 투기를 원천봉쇄하겠다"며 "저준위핵폐기물 투기도 완전 금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협조 요청도 보냈죠.
강대국들로 구성된 주요 7개국(G7) 역시 "세계 전체의 문제이며 지구 환경에 대한 심각한 사태"라며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처리문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우려를 표하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뜻대로... '핵폐기물 해양투기 전면 금지'
그리고 같은 해 11월 런던협약 당사국회의에서 핵폐기물의 해양투기를 전면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단, 이는 '25년마다 기술적·경제적 관점에서 재검토하자'는 단서가 달린 절충안이었습니다.
절충안이 통과된 것은 힘 있는 나라들의 소극적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앞서 G7에서 결의한 것처럼 명분에는 동의했지만 자국에서 핵폐기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웠습니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 핵폐기물이 발생하지 않거나 환경문제에 민감한 다수의 국가들과는 대조적인 태도였죠.
3년 뒤인 1996년엔 그보다 더 포괄적으로 해양 투기를 규제하는 '런던협약 개정의정서'가 나옵니다. 소극적인 국가들 가운데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논의돼 온 결과입니다.
개정의정서는 7개 폐기물을 제외한 모든 폐기물의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런던협약 '부속서'의 개념이지만 사실상 다른 협약으로 기능했죠.
런던협약 당사국 중 개정의정서에 가입하지 않는 국가들은 종전의 런던협약만 지키면 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2019년 기준 미국과 러시아는 개정의정서에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1993년 당시 우리 정부는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요. 우리 정부는 직접 국제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 낼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국회 동의' 등 국내 절차 문제 때문에 당사국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입 시한을 놓쳤다고 합니다. 개정의정서엔 가입해 2009년부터 효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일본도 1977년부터 핵폐기물 방류
2021년 현재, 상황은 뒤바뀌었습니다. 이번엔 일본이 '저농도 방사성물질'이라며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하고, 러시아는 "심각한 염려"를 표한다며 투명한 정보공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전은 일본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1993년 당시 "일본 정부도 이전부터 핵폐기물을 무단 방류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동해에 버린 방사능 폐기물 양이 러시아의 10배에 달한다"고 폭로하자 일본이 이를 시인한 겁니다.
이 사실은 16일 도쿄신문도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1977년부터 2007년까지 약 30년 동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5배(약 4,500조 베크렐)에 달하는 트리튬이 함유된 물을 바다에 방류했습니다.
'핵폐기물 해양투기 60년'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이중적 태도는 과연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앞서 봤듯이 소위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핵폐기물 투기 금지에 유보적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1985년 런던협약 당사국 회의에서 핵폐기물 전면금지 주장이 나왔을 때도 영국과 프랑스는 유예를 요청했고 러시아는 기권했고요.
국제적 이슈가 되자 1993년 10월 "동해에 핵폐기물을 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러시아도, 일주일 만에 "투기를 중단할 수 없다. 단, 장기적으로 투기를 중단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꿨죠.
바다는 죄가 없습니다. 냉전 시대의 사후처리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원자력발전소 뒤처리도 반드시 바다의 몫이어야 할까요.
많은 국가들이 침묵하는 상황 속, 국제사회는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사건을 계기로 핵폐기물 해양투기 60년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침묵이 이어져, 우리를 포함한 몇몇 나라들의 분노에만 그칠까요. 그 속에서 우리 정부가 이번엔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까요.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낭족에 친절했던 남자… 알고 보니 연쇄살인마였다
-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부인이 "사실은 나도 지겹다"고 한 이유
- '가스라이팅→학력 논란' 서예지, 예상 처벌·위약금 규모는? [종합]
- 美 3차 접종에 日은 '백신외교'...문 대통령이 백신 구해와야 할 판
- 어떤 문자 받았길래... "女 택배기사, 정신적 공황상태"
- '군가산점 부활용 개헌'까지...이남자에 놀란 與의 얄팍한 처방
- '사유리 '슈돌' 출연 반대' 청원에...제작진 "가족의 성장 지켜봐 달라"
- 홍준표 "文, 권력 영원하지 않아… 이명박·박근혜 사면해야"
- 금융위원장·농림장관도 바꾼다...홍남기 등 2차 개각 임박
- 美 한국계 10대 여성, 3시간 동안 성희롱·폭행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