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서두르지"..1년 남은 文정권 '반도체 특별법' 가능할까

이종혁 2021. 4. 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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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관련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며 전략물자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워싱턴DC) AP연합뉴스
[MK위클리반도체] 미국 연방의회는 반도체 산업 지원에 초당적 협력을 시작했다. 의회는 올 초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반도체생산촉진법)'를 통과시켰다. 연방하원에서 발의된 이 법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한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 공제를 비롯한 각종 인센티브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당장 올해부터 미국 내 지어질 반도체 공장들에 혜택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상원은 여기에 '아메리칸 파운드리(American Foundries Act)'를 추가 발의해 현재 논의 중이다. 이 법은 반도체 제조시설 연방 보조금을 150억달러로 증액하고 미 국방부와 국립과학재단 같은 정부 기관에 대한 연방 R&D 지원금을 50억달러 규모로 조성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이 통과되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규모는 지원금만 200억달러로 2배 불어나게 된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반도체 산업 지원책이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총 200억달러의 연방 정부 지원(보조금·세액공제 등)이 10년간 시행되면 미국 내 첨단 반도체 공장이 14곳 신설되며, 반도체 분야에 민간 투자가 1740억달러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지원 규모가 500억달러로 늘면 반도체 공장 신설은 19개, 민간 투자 규모는 2790억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19 이후 반도체는 단순한 첨단 산업을 넘어 각국 제조업 생존이 걸린 핵심 전략물자로 격상됐다.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안보와 첨단산업 우위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항전이 전개되는 중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 기술 보유기업과 사업기간 15년 이상 기업에 대해 최대 10년간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500억유로(약 200조원)를 투입해 오는 2030년 글로벌 반도체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현실이 부러울 따름이다. 반도체 업계는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정부에 계속 건의했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관련 법이 이미 통과된 사실을 얘기해도 정부는 예산이 없다거나,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은 투자 여력도 없고 인력 공급도 턱없이 부족해 말라죽어가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특별법, 특히 한국이 아직 약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중점 지원하기 위한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를 마친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다행히 정부의 이런 기류는 이달 중순부터 급전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완성차 기업 경영진과 만나 '미국 반도체 굴기'를 강조하며 현지 투자를 종용한 직후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 산업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회의에는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본부장(사장)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한 것은 2019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경제단체가 아닌 기업인들이 직접 참석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도 미국의 '칩스 포 아메리카'와 유사한 '반도체산업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검토 방침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의지에 발 맞춰 '반도체 전쟁' 정면 돌파를 결정한 것이다.

세제지원의 경우 정부는 미국 수준(40%) 이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파격 인센티브를 추진한다. 기재부는 이미 가능한 세액공제율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세액공제란 기업의 투자자금 관련 세금 중 일정 금액을 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기업으로서는 세금으로 내야 할 자금을 그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규제강화 일변도였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도 반도체 산업에는 예외적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각종 인허가 시간도 대폭 줄여준다는 방침이다. 지금은 시설기준 허가를 받는 데도 장애 영향 평가 등 75일 이상이 소요된다. 반도체 분야는 여기에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해 검사 시간을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은 이에 더해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지원금과 용수, 전력, 폐수처리 같은 각종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업계는 반도체 첨단 인재를 양성할 획기적 정책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 이창한 KSIA 상근부회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기업은 첨단 반도체 설계·제조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며 "기업들은 (반도체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 지역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줄 것을 정부에 강조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와 관련 석박사 인재를 대상으로 하는 '원천기술개발형 인력양성사업'과 '반도체 인력아카데미' 설립을 산업부에 요청한 상태다.

정부가 전향적 자세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완수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정부는 이미 임기 말에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해 내년 5월 9일 임기가 끝난다. 이미 임기 말에 접어든 정부는 특별법을 추진할 동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여야 정치권 시각차도 관건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이런 상황을 고려해 법 제정보다 시행령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하위 법령을 통한 '패스트트랙'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정부 인센티브에 따른 반도체 산업 성장 효과 시나리오. /자료=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관건은 문 대통령과 정부 각 부처, 여야 정치권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초당적 합의에 얼마나 신속하게 도달할지다. 한 반도체 기업 임원은 "정부가 뒤늦게나마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좋은데 임기 내 법 제정이 가능하겠느냐"며 "중견 파운드리 기업과 중소 팹리스들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으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동차와 정유화학·조선·해운·철강 같은 다른 주력 산업보다 규모도 크고, 코로나19발 정보기술(IT) 호황을 맞이한 반도체 산업에 굳이 정부 지원을 집중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이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것은 맞지만 글로벌 테크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업종"이라며 "미국과 중국, EU가 온 역량을 다해 반도체 산업 키우기에 나선 상황에서 정부 지원의 형평성을 논할 때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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