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버림받은 장애 화가, 그는 어떻게 행복을 얻었나
[죽은 예술가의 사회-74] 모드 루이스(화가, 1903~1970)
세상에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진다. 비극이 지긋지긋 달라붙어도, 바지에 묻은 흙을 털듯 툴툴 떨친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묵묵히 할 일을 하면서 비극을 몰아내고 마지막에는 희극을 손에 넣는다.
제 한 몸 가누지 못하고, 목소리까지 잃은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을 연구했다. 그는 빛조차 못 빠져나가는 '영원한 감옥' 블랙홀에 대해 새 이론을 제시했다. 호킹은 정설과 달리 블랙홀에서도 탈출할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과학 이론을 발표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이든 블랙홀이든 영원한 감옥은 아니다. 아무리 칠흑 같이 어두워도 탈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절망의 블랙홀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으라."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꿋꿋하게 버틴 학자의 위로는 블랙홀에 갇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도 호킹처럼 한때 블랙홀에 갇혔지만 결국 탈출했다. 루이스의 작품은 어린아이 그림처럼 천진하다. 이 그림엔 화사한 봄날의 온화함이 가득하다. 선명한 원색으로 그린 고양이와 소 그리고 시골 풍경은 평화 그 자체다. 루이스는 대표적인 나이브 아트 화가다. 나이브 아트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어떤 화풍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루이스는 1903년 캐나다 남동쪽 노바스코샤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대서양을 마주하는 조용한 어촌이다. 루이스는 평생 이 마을에 머물렀다. 그는 가까운 곳에 소풍 가기도 불편한 몸을 갖고 태어났다. 루이스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다. 류머티즘 관절염 때문에 몸 군데군데가 뒤틀렸다. 어깨는 움츠러들었고 손가락은 굽었다. 제대로 걷지 못했고, 체격도 왜소했다. 루이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너무 순수해서 때론 어른보다 잔인하다. 동급생들은 몸이 불편한 루이스를 마치 괴물 보듯 쳐다봤다.
루이스는 학교에 다니길 포기했다. 부모는 딸을 홈스쿨링으로 교육했다. 어쩌면 루이스의 삶에서 이 시기가 가장 따뜻했던 계절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화목했다. 루이스는 어머니를 따라서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림을 그렸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그림을 배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루이스는 서른 살 초반까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았다.
그 사이에 루이스에게 행복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대 시절 루이스는 딸을 출산했다. 아버지가 누군지는 불분명했다. 루이스의 부모는 딸을 아꼈지만,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몸이 불편한 딸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루이스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렇게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가정에 보내졌다. 울타리가 완전히 무너진 건 1935년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에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따라갔다. 이쯤 되면 모진 형제가 등장할 차례다. 루이스의 오빠는 유산을 독차지했고, 동생을 숙모 집에 맡겼다.
숙모 집에서 루이스는 짐짝이나 다름없었다. 눈칫밥을 먹던 루이스는 독립을 꿈꾼다. 어느 날 전단지 구인 공고를 본다. 집안일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전단지였다. 루이스는 거기에 적힌 주소로 갔다. 낡고 작은 오두막 문을 노크했다. 그렇게 루이스는 에버렛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루이스는 생애 첫 직업을 얻었다. 그를 가정부로 고용한 에버렛은 외톨이였다. 고아원 출신인 그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글을 읽지 못했고, 거칠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친구도 없었다. 그는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육체노동자였다. 주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부답게 묵묵했다. 한순간 고아가 된 여자와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였던 남자는 그렇게 만났다. 루이스는 가정부로 일한 지 얼마 안돼 에버렛과 결혼식을 올렸다.
에버렛은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그는 자상함과 거리가 먼 남자였다. 루이스에게 모진 말을 자주 뱉었다. 하지만 루이스 성격은 에버렛과 정반대였다. 밝고 쾌활하고 친절했다. 남편이 바다로 나가거나 시장에 생선을 팔러 갔을 때 루이스는 오두막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 때론 창가에 앉아 남편이 집에 오길 기다리며 눈앞에 있는 풍경을 그렸다. 루이스는 고양이, 꽃, 말, 새를 그렸다. 이 그림들은 봄 소풍처럼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화가의 낙천적인 성격이 그대로 스며든 그림이다.
에버렛은 아내가 그림 그리는 것만큼은 터치하지 않았다. 그는 루이스를 위해 선박용 페인트 같은 미술 재료를 구해줬다. 루이스에게는 오두막 전체가 캔버스였다. 창문과 벽 곳곳에 새와 꽃을 그렸다. 외톨이 어부가 사는 우중충한 오두막에 봄이 찾아왔다. 무심코 이 부부의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오두막 곳곳에 그려진 그림을 감상했다.
슬픔은 전염성이 강하다. 낙천적인 사람도 부정적인 환경에 놓이면 시든다. 반대로 희망의 전염성도 만만치 않다. 때론 사랑이 많은 걸 압도한다. 낙천적인 루이스와 비관적인 에버렛 중 승리한 사람은 루이스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루이스는 꿋꿋이 밝은 그림을 그렸다. 에버렛이 시장에서 생선을 팔면, 루이스는 남편 옆에 쭈그려 앉아 자신이 만든 그림 카드를 5센트에 팔았다. 루이스와 에버렛은 오두막에서 3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둘은 많은 겨울을 함께 버텨냈다. 꽁꽁 얼었던 어부의 마음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괴팍했던 에버렛은 어느새 아내가 없으면 안 되는 남자로 변해 있었다.
부부는 그림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림으로 가득한 오두막은 마을에서 점점 유명해졌다. 루이스의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시골의 초라한 오두막에서 가난한 어부와 함께 사는 장애인 화가'라는 서사는 세상의 이목을 끌만했다. 캐나다 언론은 루이스 삶과 그의 그림을 소개했다. 루이스는 서서히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국경 너머 미국에서도 이 화가를 주목했다. 닉슨 미국 대통령도 루이스에게 그림을 주문했다.
어떤 예술가는 사업가보다 돈 버는 재주가 뛰어나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예술가는 기회가 왔을 때 비즈니스맨이 된다. 하지만 루이스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선택까지 받았지만, 훈풍에 섣불리 올라타지 않았다. 그 대신 일상을 유지했다. 전 세계 국제 미술 행사에 초대 받았지만, 부부는 오두막을 떠나지 않았다. 루이스는 고향에 머물면서 이웃을 위해 5달러짜리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선택했다.
루이스의 그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평온함을 유지했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렘 가득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림과 달리 루이스 몸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이른 시기에 겨울이 찾아왔다. 루이스는 갈수록 더 굳어 갔다. 걸음은 느려졌고, 손가락 마디마디도 성치 않았다. 루이스는 약해졌고, 1970년 폐렴으로 남편 곁을 떠났다.
루이스는 30여 년을 오두막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 하나와 자신을 떠나지 않을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에서 힘을 얻었다. 그것이 루이스에게는 우주였다.
누구나 살면서 블랙홀에 갇힌 듯한 막막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 헤맬 때도 있다. 지금 이 고통에서 영원히 탈출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에 떨 때도 있다. 루이스 역시 그랬을 것이다.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잃고, 형제에게 배신 당하고, 남편이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남보다 못했다. 운명은 그를 고집스럽게 가시밭길로 안내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꿋꿋하게 꽃을 그렸다. 그리고 꽃길을 냈다. 그 길을 따라서 블랙홀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을 구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주의 신비만큼 경이롭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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