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강행하는 이유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일본 정부가 4월13일 열린 '폐로·오염수·처리수 대책 관계각료회의'에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정화해 해양에 방출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정부의 처분 방침 발표에 따라 도쿄전력은 ALPS(다핵종 제거 설비)라는 특수장비로 오염수를 두 차례 정화하고, 특수장비로도 제거가 어려운 방사능 물질인 트리튬(삼중수소) 농도를 낮추기 위해 바닷물로 처리수를 희석한 후 약 30년에 걸쳐 처리수를 바다에 방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10년 만에 오염수의 전반적인 처분 방침이 나온 것이다.
폐로·오염수·처리수 대책 관계각료회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3년 반 이후인 2014년 9월10일부터 2년에 한 번 개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제1차 회의(2014년)부터 제4차 회의(2019년)까지 '폐로·오염수 대책 관계각료회의'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이번 제5차 회의에는 '처리수'라는 용어를 추가했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우려 끊이지 않아
도쿄전력은 원전 사고 당시 녹아내린 원자로 내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주입하고 있다. 핵연료에 직접 닿은 냉각수가 지하수 및 빗물과 섞인 것을 '오염수'라고 한다. 이 오염수를 ALPS로 정화한 것이 바로 처리수다. 일본 정부는 정화 절차를 거쳐 방사능 물질이 대부분 제거된 처리수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산업성은 작년 12월15일, 후쿠시마 원전 내 오염수를 정화한 처리수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홍보 예산으로 5억 엔(약 53억원)의 보정예산을 편성했다. 또 제5차 관계각료회의 개최 이전인 4월9일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영어방송인 'NHK 월드 재팬'을 통해 "일본 정부가 오염수(radioactive water)의 해양 방출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는데, "오염수가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방출된다는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표현을 '처리수(treated water)'로 정정했다. 스가 총리도 각료회의에서 "APLS 처리수 처분은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추진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언급하는 등 오염수 대신 처리수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했다. 같은 회의에서는 'ALPS 처리수 처분에 관한 기본방침의 착실한 실행을 위한 관계각료 등 회의'를 설치할 것이 제안되기도 했다.
시민단체와 후쿠시마현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 이전부터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해 왔다. 국제 환경 NGO인 그린피스 일본사무소는 해양 방출에 반대하는 시민 1만357명의 서명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후쿠시마현에 인접한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에서도 어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해양 방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야기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미야기현은 동일본 대지진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산물이 원전 사고 전의 약 60~70% 가격에 거래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사고 당시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좋아진 상황에서, (오염수가) 바다에 방출되는 것은 어업 종사자에게는 사활적 문제"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 정부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로 인해 오염수 해양 방출안의 최종 결정을 작년 10월부터 두 차례 미뤘다. 일본 국내의 강한 반발에도 스가 내각이 오염수 해양 방출을 정식 발표한 직후, 후쿠시마현에서는 해양 방출 방침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정부는 (후쿠시마) 현민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고서는, 왼쪽으로 듣고 오른쪽으로 흘려버리고 있다. 바다를 더럽히게 되어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해 농업·어업 종사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풍평피해(風評被害)'다. 풍평피해는 잘못된 보도나 뜬소문으로 인해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농어민들은 오염수가 해양으로 방류돼 일본산 농수산물 이미지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수산업계는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의 수산물 어획량을 제한하는 '시험조업(試験操業)'이 올해 3월 종료되어 향후 수산물 판매량 증가가 기대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정부 결정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풍평피해를 우려하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피해 지역 주민들, 어업 종사자들이 풍평피해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정부 전체가 하나가 되어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쿄전력 고바야카와 도모아키(小早川智明) 사장 역시 풍평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약속하며 피해를 최대한 억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계에서도 처리수 해양 방출 결정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지역 목소리를 무시한 강권적 결정에 단호히 항의하며 방침 철회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제1야당 입헌민주당 관계자도 "풍평피해 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해양 방출 결정과 중의원 선거는 관련이 없다며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원전 사고 대응은 과거 민주당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다고 지적하며 "당시 정권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실 경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발언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민주당 책임론을 부각했다.
'국제사회 기준 부합' 피력하는 日 정부
일본 정부는 국내외 우려의 목소리와 정계의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처리수 해양 방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해양 방출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IAEA(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이는 해양 방출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며, 국제 관행에 따르는 것" "안전성 및 환경 영향평가에 기반한 규제하에서 세계적으로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IAEA 사무국장의 견해 발표로 이어졌다. 미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해 "일본은 투명성을 갖고 세계적인 원자력 안전기준에 합치한 방법을 채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신뢰성 높은 국제기구와 미국 정부의 평가를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해양 방출 결정이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국제 기준에 합치하는 안전한 방침이라는 주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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