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 시대가 온다

이강국 2021. 4. 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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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큰정부가 귀환하고 증세의 시대가 열렸다. 부자증세는 불평등을 교정하고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의 미래는 결국 정치에 달렸다.

불평등은 정치의 문제이며 그 치열한 싸움의 전장은 역시 세금이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보수 정치의 득세와 감세의 물결은 불평등 심화로 이어졌다.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증세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재정 확장으로 ‘큰정부’가 귀환했고 증세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1.9조 달러의 경기부양에 추가로 4조 달러에 달하는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증세 계획도 내놓았다. 그 대상은 역시 부자와 기업이다. 트럼프가 인하한 법인세와 최고소득세율을 인상하고 상속세를 강화하며 자본이득세도 올릴 전망이다. 불황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돈을 쓰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팬데믹이 심화시킨 불평등이 부자증세를 정당화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에도 고소득층은 타격을 받지 않았고 고통은 저소득층에 집중되었으며, 특히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감세를 지지하던 논리도 무너지고 말았다. 보수파는 세금을 높이면 노동과 투자에 대한 유인에 악영향을 미쳐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낙수효과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경제학에 기초하여 선진국들은 평균적으로 1981년 62%에서 2015년 35%로 최고소득세율을 인하했다. 성장은 촉진되지 않았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OECD 18개국의 주요 부자감세 사례를 분석한 최근의 실증연구는 감세로 인해 성장이 촉진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보고한다. 감세는 상위 1%의 소득집중도를 높인 반면 성장과 실업에 미치는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면 부자증세가 불평등을 교정하고 재정지출을 지지하여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정가와 경제학계에서는 최고소득세율을 인상하고 거대 부자들의 자산에 대해서도 누진세를 매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세금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최적의 최고소득세율에 관한 경제학에서 핵심은 세금이 높아질 때 최고소득층이 노동을 얼마나 덜 해서 과세대상소득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를 의미하는 탄력성이다. 여러 연구들은 이 탄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보고하며, 따라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이아몬드 MIT 교수는 미국의 최적 최고소득세율을 약 70%로 높게 추정했다.

또한 피케티(파리경제대학)와 사에즈(UC 버클리) 교수 등은 높은 세금이 최고소득자들의 지대 추구를 억제하기 때문에 노동 공급만 고려한 경우보다 최고소득세율이 높아야 하며, 세금이 높으면 세전소득의 불평등도 줄어들 것이라 강조한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는 한국에서도 최고소득층의 과세소득탄력성이 상당히 낮다고 보고한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세금 이데올로기 바뀌나

경제성장률이 높고 불평등은 낮았던 1950년대에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90%가 넘었고, 1970년대에도 70%였다. 한국도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 70%까지 높아졌고, 1980년대에도 50%였다. 이후 감세로 세율이 계속 낮아져왔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는 최고소득세율을 45%까지 인상했다. 이자나 배당과 같은 종합소득에서 상위 0.1%의 집중도가 최근 몇 년간 높아졌음을 고려하면 최고소득세율을 더 인상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수와 재분배 효과를 고려하면 과도한 소득세 공제를 축소하여 중상위층까지 포함하는 증세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사회는 저마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며 모든 사회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라고 썼다. 그는 또한 불평등 변화의 주된 원인이 정치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제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세금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부자증세와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의 미래는 결국 정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금의 경제학과 증세를 위한 정치적 노력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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