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차 가진 택배기사들이 왜? 강동 아파트 택배 대란의 전말

장상진 기자 2021. 4. 17. 13: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택배 기사들이 택배 논란을 빚은 서울 강동구 A아파트에서 16일 정상적으로 물건을 배송하고 있다.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가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은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에 대한 ‘단지 앞 배송’을 이틀만에 중단하고, ‘집 앞 배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민노총 산하 택배노조는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 전술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한다”며 “아파트 단지 앞에서 무기한 농성과 촛불집회를 벌이겠다”고 했다. 대신 전날까지 이틀간 이 아파트 택배 주문자의 ‘집앞’이 아닌 ‘단지 앞’에 배송품을 늘어놓는 방식의 시위는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택배노조는 이번 결정의 이유로 “단지 앞 배송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비난, 항의, 조롱 등의 과도한 항의문자와 전화가 쏟아지면서 일부 조합원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해당 아파트를 담당하는 택배 기사 대부분이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배송 거부를 계속하다간 고립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배송 거부 기사 모두 지하 통행 가능한 저상차 보유, 그런데 왜?

이번 사태는 강동구 A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가 지난 1일 입대회는 택배 기사들에게 앞으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택배 차량이 지상의 보행자를 위협할 수 있으니 지하 주차장으로 다니라는 것이었다. 2016년 착공한 A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높이가 2.3m로, 화물칸 천장 높이가 낮은 ‘저상 택배차’만 드나들 수 있다. 2018년 법개정 이전 지어진 전국 대부분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높이가 2.3m다.

그러자 지난 8일, 택배노조가 아파트 앞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음날부터 단지 앞까지만 물품을 배송하겠다”고 했다. 입대회 측은 “단지 자체가 애초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도록 만들어졌고, 해당 내용을 이미 작년 3월부터 고지해 차량 교체 시간을 충분히 줬다”며 “인근 아파트 단지 대부분이 지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우리 아파트만 문제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택배노조는 결국 14일 집앞 배송 거부 시위에 돌입했다.

15일 오후 서울 강동구 A 아파트에 단지 입구에 택배기사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 상자들이 늘어서 있다.

택배 상자들이 단지 앞에 요란하게 쌓이기 시작했지만, 실제 대부분의 주민은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시위 참여 택배 기사가 극히 일부였기 때문이다. 해당 단지는 총 4900여가구 규모로, 이 단지에 드나드는 배송 차량은 주요 쇼핑·물류기업만 따져도 20대가 넘는다. CJ택배가 7대, 한진·롯데·우체국택배가 각 2대씩, 쿠팡이 물량에 따라 5~6대, 마켓컬리가 2대 정도다. 이 가운데 시위 참여 택배차는 롯데·우체국택배 소속 총 4대가 전부였다.

◇“택배 기사 아닌 민노총의 필요로 벌어진 사태”

업계에서는 이번 시위가 택배 기사들의 필요가 아닌, 민노총 ‘조직의 필요’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우체국택배는 배송 기사 대부분이 민노총 산하인 택배노조 소속이고, 롯데 배송 기사도 1명이 택배노조원이다. 게다가 시위 참여자 4명의 차량은 어차피 모두 저상차량이어서, 일하는 데 추가되는 어려움이 없다. 심지어 집회 현장에 자기 저상차를 끌고와 세워놓고 시위를 한 기사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차 기자회견에서 고충을 호소하는 연설에서는 이 아파트와 전혀 상관 없는 지역에서 배송하는 ‘하이탑’(화물칸 천장이 높은 차량) 택배차 소유 노조원이 연단에 서기도 했다. 게다가 택배노조 자체 자료에 따르더라도, 국내에서 최소한 다른 179개 단지가 A 아파트처럼 지상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아파트에서 이번 사태가 터진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택배노조가 택배 기사 과로사 국면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처우를 개선하고, 조직의 세를 불리기 위해 이번 사태를 기획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 택배노조 가입율은 10% 안팎에 그친다. 5만5000명 택배기사 중 조합원은 5000명 남짓이다. 실제로 택배노조는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에게 집 앞 배송 거부에 동참해달라고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경제단체 소속 노사 관계 전문가는 “택배노조가 작년 하반기 택배기사 과로사 국면부터 이슈를 주도하며 여론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질적으로 ‘자영업자’인 택배 기사를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느꼈고, 이번 사태에서도 다른 택배 기사의 호응을 얻지 못해 철수를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