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에너지가 마지막에 망가뜨린 건 '나'였다

한겨레 2021. 4. 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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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③ 과도한 '새로움 추구' 경향
열정 넘치는 스타트업 대표 민영씨
뛰어난 배포와 능력으로 성공했지만
'새 자극, 잠재보상' 찾는 성향 높아
무리한 사업→실패→술 중독 빠져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때론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극단적으로 새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이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업을 해서 성공한 분들을 만나면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와 도전 정신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일반 직장인은 따라갈 수 없는 그들의 에너지는 세상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정한 사업 방향이 옳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가진 전 재산 1억원에 투자금 2억원을 받아서 ‘올인’할 수 있는 배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관리하며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줍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높은 에너지’만 가지고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고, 자신의 마음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자기 판단이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정교하게 조절하는 분이 결국 성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40대 스타트업 대표인 민영씨의 예를 봅시다.

끊임없는 자극 찾던 사업가

민영씨는 공대를 졸업하고 게임 회사를 창업해서 얼마 전까지 성공한 사업가로 불렸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이저’(수명이 오래간다고 홍보한 건전지 제품)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추진력이 강해서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며칠 밤을 새우면서 결국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한 그는 1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게임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가 만든 게임은 대성공을 거뒀고 회사의 규모도 점점 커졌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래간만에 고향 친구가 회사에 찾아왔는데 자신이 ‘창업투자회사’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강남에 있는 친구 회사를 방문하고 난 뒤 민영씨는 확신이 생겼고 결국 그 회사에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투자 원금의 두배, 세배를 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고생해가며 돈을 벌었지만 이제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본업보다는 투자회사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자신의 재산마저 맡기게 되었습니다.

민영씨 회사에 창업 초기부터 참여한 직원 정수씨는 점점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대표인 민영씨에게 회사의 어려움에 대해서 직언을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민영씨는 창투사 사업에 실패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민영씨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만들고 자신은 빠져나갔습니다. 낙담한 민영씨는 술과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상태로 출근하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일은커녕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베팅을 했습니다. 부인과도 사이가 안 좋아져서 이혼 소송을 하게 되었고 직원들은 하나둘씩 이직했습니다.

사업가 또는 예술가에 흔한 성향
창의성 높지만 도박·충동 조절 어려워

새로움 추구 경향이 높은 이들

민영씨는 그 뒤 심한 의욕 저하, 불면증 증상을 동반하는 우울증이 생겨서 이제는 사업을 계속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입니다. 다행히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인지하고 조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기질-성격 검사 결과 민영씨는 ‘새로움 추구’ 경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업가나 예술가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성격인데요, 새롭거나 신기한 자극과 잠재적인 보상 단서에 끌리는 성향이 강한 것입니다.

우리 뇌에는 수천억개의 신경이 들어 있고 신경과 신경 사이에 ‘시냅스’라고 하는 연결 구조가 있습니다. 여기에 신경전달물질이 들어 있고 기분이나 인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로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있습니다. ‘새로움 추구’ 경향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도파민은 의욕이나 에너지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적절히 유지가 되면 에너지가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여 사업을 성공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도박 성향, 중독 성향, 충동성, 피해 의식, 성적인 충동과도 연관됩니다.

문제는 민영씨의 게임 사업이 안정기에 이르면서 더 이상 게임으로는 민영씨의 ‘새로움 추구’ 경향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민영씨는 친구의 사업에 참여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일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였고,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민영씨가 투자에 손대면서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는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큰 손해를 보게 된 과정은 도박을 통해 돈을 잃는 과정과 유사한데, 여기에는 ‘도박사의 오류’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1913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카지노에서 있었던 룰렛 게임에서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룰렛에는 검은색과 붉은색 칸이 섞여 있었는데 구슬이 연거푸 스무번이나 검은색에서 멈추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보던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붉은색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엄청난 돈을 베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룰렛은 검은색에서 멈추었고 27번째에 가서야 붉은색에서 멈추었다고 합니다. 많은 게이머가 아주 큰돈을 잃은 이 사건에서 ‘도박사의 오류’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앞 사건과 뒤 사건이 마치 연관성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심리적 오류를 의미합니다. ‘모든 독립 사건은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확률 이론의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발생합니다.

민영씨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져 있었고 처음에 두배, 세배의 이익을 얻었던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시 자신이 큰 이익을 얻는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점점 더 큰 돈을 베팅했지만 결국은 전 재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상담 치료로 자신의 성향 파악한 뒤
수면·운동·대화로 정교한 조절해야

스스로 브레이크 걸 줄 알아야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심해지면 뇌의 도파민이 점점 더 증가하고 결국 알코올중독, 무리한 투자, 도박, 외도 문제 등 자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에너지가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결정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판단해 에너지가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조언을 경청해 보수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가족이 떠날 정도의 상황이라면 지금이라도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민영씨는 담당 의사와 상담을 마친 뒤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스스로 ‘새로움 추구’ 경향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요인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술, 담배, 도박, 이성과의 개인적 만남, 과도한 약물 복용 등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자신이 해왔고 잘 아는 게임 사업과 개발에서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보는 것을 먼저 목표로 잡았습니다. 꾸준한 상담과 치료로 자신의 의지가 박약해질 때마다 방향을 바로잡았습니다. 자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충분한 수면과 숨이 찰 정도의 꾸준한 운동을 했고 가족 또는 직원들과 오랜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화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이전에는 잠이 안 올 때마다 수면제를 먹었지만 이는 민영씨에게 우울감이나 충동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중단했습니다. 대신 새벽 6시면 일어나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는 일찍 귀가해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방법으로 자신의 지나친 감정 불안을 치료해 수면제 없이도 잠들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에는 항상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했습니다. 자신의 ‘새로움 추구’ 경향은 가족이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맛집이나 카페를 찾아가는 일로 전환해 충족시켰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할 때는 자신이 잘 아는 인접 분야를 먼저 생각하고 주위 참모들의 조언을 충분히 들어서 결정했습니다. 무리한 투자, 도박, 알코올 등으로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경향을 줄였습니다. 민영씨는 결국 다시 좋은 게임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을 정교하게 조절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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