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NN이 만든 '수에즈운하' 게임..쉽지 않은 이유
바퀴 대신 '프로펠러+방향타'
대형화될수록 조종 까다로워
수에즈 운하에 좌초됐던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다시 떠올라 유럽-아시아 간 해운 물류가 정상화된 지 보름 정도 흘렀습니다. 원유나 선박 연료가 해상으로 유출되지 않은 좌초 사고 중 이 정도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수많은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관심이 이어지자 결국 관련 게임까지 나왔습니다. 미국 언론 CNN이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수에즈운하 통과하기(Steer through the Suez Canal)'라는 시뮬레이터입니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수에즈 운하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자는 목적입니다.
수에즈 운하, 직접 통과해보자
조작은 간단합니다. 선박의 진행 방향(Rudder angle)과 속도(Power)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좌초 당시 날씨를 반영해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환경도 주어졌습니다. 운하 초입을 지나 좁은 운하에 들어서면 "강한 서풍이 불고 있으니 선박을 왼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운하 전체를 통과하는 건 아닙니다. 화면 윗부분까지 충돌하지 않고 도착하면 성공입니다. 미션에 성공하면 축하 메시지와 함께 "당신은 수에즈 운하의 약 4% 구간의 항해를 체험했다"고 알려줍니다. 화면 끝부분까지 긴장하며 배를 몰았지만 방금 항해한 구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걸 일깨워줍니다. 수에즈 운하의 길이는 총 193.3㎞에 달합니다.
이 시뮬레이터를 소개한 국내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방문해보니 난이도에 대한 의견이 갈렸습니다. 생각보다 쉽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면서 포기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선박 조종, 자동차 운전과는 달라
선박 조종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좀 더 쉽게 주어진 미션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형 화물선은 선체 뒤쪽에 달린 거대한 프로펠러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선박 엔진이 프로펠러를 회전시키고,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물을 밀어내는 힘으로 추진력을 얻습니다. 이 방식 때문에 운항 중인 선박의 방향을 전환하는 방식은 차량과는 크게 다릅니다.
선박의 방향은 방향타(Rudder)가 결정합니다. 위에 소개한 시뮬레이터 속 '러더 앵글(Rudder angle)'도 방향타의 각도를 의미합니다. 방향타는 프로펠러 바로 뒤에 위치합니다. 정사각형 모양의 방향타가 프로펠러와 가까운 쪽을 축으로 삼아 좌우로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선박이 직진할 때 방향타는 세로 방향으로 얌전히 있습니다. 선박을 '회전'시킬 때 방향타를 움직여 줘야 합니다.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밀어내는 물을 아무런 방해 없이 흘려보내던 방향타가 이번에는 그 흐름을 방해합니다. 프로펠러가 밀어내는 물이 회전한 방향타의 한쪽 면을 때리면서 선박을 회전시킵니다.
선박의 방향을 왼쪽으로 틀려면 방향타도 왼쪽으로 회전시켜야 하죠. 그러면 프로펠러가 밀어내는 물이 방향타의 왼쪽 면을 때립니다. 그 힘이 먼저 선박의 뒤 꽁무니를 오른쪽으로 밀어냅니다. 힘이 더 가해지면 선박이 왼쪽으로 서서히 회전을 시작합니다. 방향타의 각도가 작으면 천천히, 각도가 크면 더 빠르게 회전합니다.
바다 위에 둥둥 뜬 선박, 조종이 어려운 이유
회전을 멈추는 방법도 차량 운전과는 다릅니다. 차량은 핸들을 돌려 회전시키다가 원하는 방향에 도달하면 핸들을 정 위치에 두면 그만입니다. 그마저도 핸들에서 힘을 빼면 자동으로 제 위치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선박은 회전을 멈추려면 ① 원하는 방향에 도달하기 한참 전에 방향타를 가운데로 되돌려놓거나 ② 방향타를 회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합니다. 선박은 땅 위가 아니라 물 위에 둥둥 떠 있기 때문이죠. 1번은 회전하는 힘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방법이고, 2번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려는 힘을 가해 회전력을 감소시키는 방법입니다.
하나 더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선박의 속력입니다. 속도가 빠를수록 회전력도 좋습니다. 선박의 속력이 높다는 건 프로펠러가 더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프로펠러가 밀어내는 물의 양과 힘이 더 강해지죠. 방향타를 때리는 힘이 더 큰겁니다. 방향타의 각도가 같더라도 속도가 느릴 때 보다 빠를 때 원하는 방향으로 회전하기가 더 쉽습니다.
대형 선박일수록 조종 까다로워
마지막으로 선박의 크기와 무게입니다. 유원지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터보트 역시 같은 원리가 적용되지만 가볍기 때문에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회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선박이 크고 무거울수록 회전하는 데 드는 시간도 오래걸리고, 회전을 빠르게 멈추기도 어렵습니다.
길이 400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박인 에버기븐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박이 항해하는 지역을 숙지하고 미리 정한 계획에 맞춰 선박을 조종해야만 안전한 항해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항구에 접안하거나 좁은 해역을 지날 때 그 지역의 조류, 바람 등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도선사가 선박에 올라 도움을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다시 CNN이 제작한 시뮬레이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몇 차례 테스트해보니 이 시뮬레이터도 앞서 설명한 선박의 회전 원리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① 선박이 회전을 시작하면 곧바로 방향타 각도를 '0'에 놓는다.
② 예상보다 회전이 빠르다면 방향타 각도를 회전 반대 방향으로 살짝 돌렸다가 다시 '0'에 놓는다.
이 두 가지 사실만 기억한다면 쉽게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국가 기간 산업이지만 외면 받았던 해운업
해운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산업입니다.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국내로 들여오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국적 해운사들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어야 수출과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최근 수출 선박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국적선사가 중소기업을 위한 대체 선박을 투입한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중요한 해운산업이지만 그간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실어나르는 항공사와 달리 대형선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어서였죠. 그래서 해운업계 종사자들은 이같은 해운업에 대한 관심에 반가워하면서도 낯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떨어진 채 안전한 화물 운송을 위해 바다에 나가있는 3만여 국내 선원들도 마찬가지 마음일 겁니다. 국가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해운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는 매우 낮은 상황이니까요.
잠시 시간을 내어 24시간 대형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원들의 노고를 간접적이나마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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