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동성결혼 법제화 기틀 닦은 퀴어 문학

한소범 2021. 4. 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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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4일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 했다.

최근 나란히 번역 출간된 대만의 퀴어 문학 두 권은 대만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결혼 법제화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짐작해보게 만든다.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법제화를 이룬 대만이지만 불과 24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혐오가 만연해 있었고 이 같은 시대상은 작품 안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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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입법원에서 통과시킨 동성결혼 특별법에 대한 법적 효력이 발효된 2019년 5월 24일(현지시간) 타이페이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동성부부가 대형 무지개 깃발 위를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5월 24일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 했다. 2017년 5월 ‘결혼 계약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민법의 혼인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 내린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동성 커플은 혼인 등기를 할 수 있게 됐고 세금ㆍ보험ㆍ자녀 양육 등에서 이성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됐다.

최근 나란히 번역 출간된 대만의 퀴어 문학 두 권은 대만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결혼 법제화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짐작해보게 만든다. 동성 연인과의 10년 간의 부부생활을 그린 천쉐의 ‘같이 산지 십년’, 그리고 대만 대항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린 구묘진이 논바이너리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아 쓴 서간체 자전 소설 ‘몽마르트르 유서’다.

‘같이 산지 십년’은 ‘악녀서’, ‘다리 위 아이’, ‘악마’ 등을 쓴 대만의 대표적인 퀴어 문학 소설가 천쉐가 자신의 연인인 짜오찬런과 결혼한 후 10년 간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천쉐는 2009년 두 친구의 참관 하에 짜오찬런과 결혼식을 올린 후 여느 이성 부부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자신들의 일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했다. 함께 고양이를 기르고, 장을 봐서 요리하고, 배우자의 귀가를 기다리고, “여든두 살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까?”라며 함께 늙는 미래를 상상한다.

천쉐 '같이 산지 십년'(글항아리)

“흔한 일용품 틈에서 서로 의지하며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찬쉐 부부지만, 이성 부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제도적 혜택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천쉐는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시 보호자는 반드시 친족 관계여야 한다는 규정 탓에 남동생을 불러야만 한다.

때문에 책은 어느 평범한 부부의 일상 기록인 동시에 동성결혼 법제화를 쟁취하는 험난한 분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에는 법 개정 이전까지의 시기가 담겨 있지만 책이 마무리된 후 천쉐 부부는 2019년 5월 24일 동성 커플의 결혼이 허용된 첫날 혼인신고를 마쳤다.

구묘진 '몽마르트르 유서'(움직씨)

‘몽마르트 유서’는 동성결혼 법제화 24년 전인 1995년에 쓰인 작품이다. 책을 쓴 구묘진 작가는 1990년대 첫 퀴어 소설 ‘악어 노트’를 통해 커밍아웃을 한다. 1994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그는 이듬해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 중 하나인 중국시보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유작인 ‘몽마르트르 유서’를 남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파리에 있는 ‘조에’가 대만에 있는 ‘솜’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된 소설은 두 여성 사이의 사랑과 이별, 매혹과 고통에 대해 써내려 간다.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법제화를 이룬 대만이지만 불과 24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혐오가 만연해 있었고 이 같은 시대상은 작품 안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작가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대만의 혼인평권(婚姻平權) 운동에 불을 지폈다.

'몽마르트르 유서'를 발행한 노유다 움직씨 대표는 “근래 혐오의 정치에 치명상을 입어 그 짧고 안타까운 생을 내려놓은 성소수자의 부고가 잇따랐다"면서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은 삶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면서 죽음에 섣불리 이끌리지 않으려고 싸우는 여정이었다”고 적었다. 대만에서 온 이 두 권의 퀴어문학은 여전히 기나긴 여정 중에 있는 한국의 미래를 잠시나마 가늠해볼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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