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공원을 주차장으로? 주차민원 때문에 공원 없애는 고양시 '논란'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운동장아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우리의 보물 같은 운동장이 없어진다고 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운동장에 맨날 나가서 놀고 있어요.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만들지 마세요."
"우리가 노는 운동장이에요. 운동장을 남겨주세요. 우리가 노는 장소에요. 지켜주세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의 아이들의 편지 내용이다. '밤가시 어린이 공원' 내 운동장을 지켜달라고 청와대 대통령 할아버지께 꾹꾹 눌러 쓴 편지란다. 고양시는 올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밤가시 어린이 공원(1만 3218㎡) 내 축구장(2240㎡)을 주차장으로 시설 변경하고, 공사비 5억 3000만 원을 들여 70면의 주차공간을 확보할 계획이다.
밤가시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주택가에 소품점과 맛집, 카페 등이 모여 특색 있는 분위기의 골목으로 이름난 '보넷길'이 있다. SNS 등을 통해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양시는 상인회와 주민들이 지속해서 제기한 주차난을 해소하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이유에서 주차장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밤가시 어린이 공원은 마을 중심에 있다. 아이들이 축구와 야구를 할 수 있는 다목적 운동장을 보유한 정발산동 내 유일한 공원이다.
엄마들은 "고양시는 아이들 놀이에 중요한 장소인 공원 시설 변경 계획을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시설변경을 위한 용역 예산을 확보하고도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의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원의 사용 주체인 어린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문제 제기를 했다.
엄마들은 전단을 만들어 이 사실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온라인으로 반대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운동장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들의 마음을 담은 그림 편지, 손편지를 모아 청와대에 보내고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게재하기도 했다.
베이비뉴스 취재진은 15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밤가시 어린이 공원 벤치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네 명의 엄마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열한 살 아동의 양육자인 정상희 씨, 열세 살, 열 살 아동 양육자 전하나 씨, 열세 살, 열한 살 아동의 양육자인 허윤혜 씨, 일곱 살, 네 살 아동의 양육자인 박은지 씨가 그 주인공이다.
◇ "주인인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지 않은 데 대해 화가 나요"
"운동장은 아이들 것이고 아이들이 주차장으로 만드는 게 싫다는데… 아이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주차장으로 만들기로 한 부분에 대해 화가 나요. 여기가 제일 양지바른 곳이에요. 해가 쨍쨍해서 겨울에 한파주의보에도 우리 애들은 여기서 야구하고 놀아요. 이 따끈따끈한 땅을 주차장으로 만들겠다니 얼마나 후진국스러운 생각이에요?"
허윤혜 씨가 흥분한 목소리도 말했다. 주차장으로 시설 변경한다는 소식은, 지난해부터 얘기가 있다는 정도만 흘러 다녔다. 박은지 씨가 지난 3월 중순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던 중에 마을 통장으로부터 진짜 실행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전해듣고, 같은 학교 학부모이자 이웃에 사는 전하나 씨와 허윤혜 씨, 정상희 씨에게 소식을 전했고, 아이들의 놀 권리가 무시된 채 운동장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같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먼저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아이들은 '절대 운동장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화를 냈다고 했다. 운동장을 지키기 위한 아이들의 그림 편지와 유튜브 등을 본 국제아동인권옹호센터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에서 지지성명을 내고 힘을 보탰다.
네 명의 엄마는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전단을 만들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돌렸다. 온라인 반대 서명을 3월 20일 시작해 4월 15일 오전 8시 30분 기준 700명의 동의를 받았다.
정상희 씨는 "보시기에 700명이라는 숫자가 미약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그냥 아이 보던 엄마들이에요"라면서 활동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굉장히 어려움이 많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도 바뀌는 게 없는 걸 보면 우리가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 "운동장을 없애는 건 아이들 놀 권리가 굉장히 침해되죠"
왜 엄마들은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데 반대하고 나섰을까. 정상희 씨는 "첫 번째는 축구 골대가 있는 곳이 여기 하나예요. 축구나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이 동네 통틀어 여기뿐입니다. 여길 없애는 건 아이들 놀 권리가 굉장히 침해되는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또 정 씨는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되면 운동장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는 주차장 옆에 있게 되는 건데, 아이들이 놀이터에 오는 길이 굉장히 위험할 거예요. 공영주차장이 생기면 더 많은 차가 이쪽으로 들어올 텐데 아이들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고, 매연에… 어떻게 아이를 내보낼 수가 있겠어요? 시는 그런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공원 리모델링 요구도 많이 했으나 반응이 없다가 마침 올해 공원 리모델링 계획이 예산에 반영됐다고 정 씨는 설명했다. 정 씨는 "일부에서는 주차장을 만드는 이유로, 물놀이장이 만들어질 계획인데, 그러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긴 동네 놀이터이고 동네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죠.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지가 아니지 않냐"면서 "타당성 없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정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가 생각해도 주차장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있을 것 같은데 주택가이고, 아이들이 노는 곳인데 상인회에서 공영주차장에 대한 요구가 들어왔으니 용도에 대한 다른 검토 없이 주차난 해결을 앞세워 편의상 이곳을 확정한 것 같아요"라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전하나 씨는 무엇보다 시가 발표한 70대 주차공간 규모로는 주차난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씨는 "70대 주차공간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해요. 선거 때마다 공약이 주차난 해결이었어요. 해결하려면 지하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못하죠. 가장 돈이 적게 들고 간편한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아이들이 원하는 공원에 대해 의견 모으고 전달하려고 해요"
엄마들도 이곳의 주차난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또 주차장을 만드는 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원 내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시설변경 하는 것은 반대라는 것이고,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인회와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같이 해결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상희 씨는 "카페가 들어와서 이용하시는 분들이 집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거나 차를 세우거나 등 불편하긴 하지만 저희도 잘 이용하고 있어요. 멀리 봤을 때, 반짝 상점이 몰렸다가 빠져나가 유령 도시가 되는 게 아니라 가게도 오래 유지해서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고양시가 양쪽을 잘 중재하고 의견을 취합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전하나 씨는 "하다 보니 상인회도 자기네 생각만 하는 거고, 저희도 저희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서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게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 기회에 상인회도 주민도 서로 의견을 들을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제안했다.
엄마들이 생각하는 밤가시 마을 주차 불편 해소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 이들은 ▲풍산역과 마두도서관 주차장 확장 및 공영주차장으로 운영해 주차 불편 해소 ▲풍산역 뒤편 교육청 소유부지 임대해 공영주차장으로 운영 ▲밤가시 어린이 공원 내 활용도가 가장 적은 공원 일부를 공영주차장화 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놨다.
엄마들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은 밤가시 어린이 공원 리모델링에 아이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정 씨는 "어린이 공원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처럼 보여 주차장으로 만들자는 말이 나온 것 아니겠느냐"면서 "리모델링 때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놀이터와 운동장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아이들이 더 잘 놀 수 있는 공원을 만들기 위해 최근 의견을 모으는 온라인 카페도 개설했다. 아이들이 이 공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이야기가 모이면 공원에 작게라도 전시해서 아이들이 목소리를 전할 계획이다.
허윤혜 씨는 "우리 아이가 '엄마, 주차장 만든대? 어떻게 한 대?' 하고 물어요. 보통 반대하고 민원을 넣으면 보상을 바라고 하는데 저희는 바라는 게 없어요. 선진국답게 아이들 놀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것. 아이들의 놀 권리만 생각하지 다른 보상 같은 거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공원 리모델링에 최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모으고 전달하려고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 고양시 "주민들과 소통을 충분히 가질 예정이다"
고양시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13일 고양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상인회와 주민들의 주차 민원이 많았다. 종합검토 결과 주민을 위해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진행을 했는데 반대의견도 있는 걸로 안다"면서 "어제 청와대 통해 아이들의 손편지을 받았다.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검토하고 있고, 시간을 들여서 주민과 소통을 충분히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주차장을 조성하는 쪽으로 사업추진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으나 주차장도 만들고, 트렌드에 맞는 놀이공원도 만들어 완충작용을 할 수 있도록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서 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다른 대안을 협의해 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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