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명 만장일치' 한국 법이 美의회 청문회에 오르기까지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표현의 자유 침해" 국제사회 거듭 경고
美의회, 유신정권 후 최초 韓인권 청문회 개최
美 "인권침해" vs 韓 "내정간섭"
“국제 인권법은 표현의 자유를 안보 이슈로 제한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제 인권법의 가이드를 고려해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제임스 맥거번 미국 민주당 의원)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관련 청문회가 열립니다. 한국의 특정법을 두고 제3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개최되는 것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어쩌다 이 법은 청문회 대상까지 됐을까요. 대북전단금지법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오르기까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1. 대북전단 살포와 김여정의 '협박'
지난해 6월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합니다. 김여정은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에 앞서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며 “남조선 당국이 이를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을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서 5월 31일 일부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겨냥한 것입니다. 이어 “분명히 말해두지만 또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 당국이 혹독하게 치를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이날 통일부는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합니다. 여상기 당시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일부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긴장 조성으로 이어진 사례에 주목한다”며 “접경지역 국민들의 생명·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힙니다. 정부가 검토하는 제도 개선 사안에는 정부 입법도 포함된다고 밝힙니다. 여 대변인은 “대북 전단과 관련해서는 판문점 선언에 관련된 사항이어서 정부는 판문점선언 이행 차원에서 그 이전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2. 北의 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북전단금지법 발의
6월 8일, 더불어민주당이 대북전단금지법 처리를 공언합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백해무익한 대북 전단 살포는 금지돼야 한다”며 “원 구성이 완료되면 대북전단 살포금지 입법을 완료하겠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민주당 의원(현재 무소속)은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발의하고 한 방송에 출연해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자 단체들의 순수성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당 내부에서조차 별도 법안 발의까지는 필요없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행 대북전단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송영길 의원입니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에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할 현행법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듯한 통일부의 태도가 지금의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금지를 위한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이전 정부 시절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관료의 의지 부족'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6월 10일, 통일부는 대북 전단을 살포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박정오 큰샘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힙니다. 남북교류협력법상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고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김여정 담화 날만 해도 “현행 교류협력법으로는 대북전단 살포 규제가 어렵다”던 통일부가 엿새만에 교류협력법 위반이라고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이틀 뒤인 12일 통일부는 “내부 혼선으로 표현이 잘못 나갔다”며 경찰 고발이 아닌 수사 의뢰라고 말을 바꿉니다.
6월 16일, 북한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합니다. 한국 정부가 17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소한 연락사무소는 1년 9개월 만에 사라집니다. 김여정이 앞서 13일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고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지 사흘만이었습니다.
6월 30일, 별도 법 제정까지 필요없다던 송 의원이 “6월 초순 시작된 북한의 도발의 시작점이 대북전단”이라며 대북전단금지법을 대표발의합니다. 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1호 발의 법안이라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법안 발의에는 이낙연·이인영·전해철·김홍걸·윤건영·이재정 의원 등 외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 12명이 참여합니다. 대북 전단을 규제하는 법은 2008년 박주선 전 의원의 발의를 시작으로 민주당계 정당에서 관련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본회의 통과가 좌절돼왔습니다. 그런데 전단 살포에 실패해 미수에 그쳐도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은 처음이었습니다.
3. 본회의 상정... 국제인권단체 "韓, 김정은 행복에만 관심"
12월 2일, 민주당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이 법을 통과시킵니다. 세계 인권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시작됩니다.
12월 5일,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한국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인도주의와 인권 활동이 형사상 위법이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미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도 참석한 존 시프턴 HRW 아시아담당 국장은 “한국 정부는 북쪽의 이웃들을 위해 자국 국민들이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김정은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법은 남북한 시민 모두에게 중대한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12월 11일,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당)은 성명을 내고 “가장 잔인한 공산 독재의 한 곳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정신적·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한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의회 협력자들은 왜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호라는 의무를 무시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당)도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안보팀에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내용을 전달하겠다”며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습니다.
4. 野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후 법안 통과
12월 14일,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 본회의에 오릅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했습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이 법의 공동 발의자 중 한 명인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5시간33분간 필리버스터에 나섭니다. 필리버스터까지 막느냐는 반발이 심해지자 민주당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단 30분간의 필리버스터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이 필리버스터조차 강제 종료됩니다. 필리버스터를 종결하기 위해서는 180명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민주당은 전날 국정원법 통과를 막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기 위해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까지 표결에 동원했지만, 이날은 정의당이 참석해 187명의 찬성으로 무난히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시킵니다. 필리버스터가 강제 종료된 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원 퇴장합니다. 이 법은 결국 재석 187명 전원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합니다.
12월 15일, 통일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일부 민간단체들이 남북 간 합의와 정부의 자제요청에도 불구하고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행했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생명권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북한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5. 세계 각국 정부·의회 비판 성명
우려를 표하던 법이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하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세계 각국의 정부·의회와 국제 인권단체들에서 비판 성명이 쏟아집니다.
12월 14일(현지시간), 마이클 맥카울 미 하원의원은 “한반도의 밝은 미래는 북한이 한국과 같이 되는데 달려 있지 그 반대가 아니다”라며 “미국 의회에서는 초당적 다수가 폐쇄된 독재 정권 아래 있는 북한에 외부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고 비판합니다.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세계 47개 국제인권단체를 대표해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우려를 나타내는 공개서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발송합니다. 토르 할보르센 휴먼라이츠재단(HRF) 대표는 “김정은 정권의 범죄 행위를 직접 목격한 탈북자들의 목소리와 증언을 침묵시키려는 북한 정권을 향한 선물”이라고 비판합니다.
12월 16일, 토마스 오헤야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은 다양한 방면에서 북한 주민들에 관여하려는 많은 탈북민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며 “법 시행 전 관련된 민주적인 기관이 적절한 절차에 따라 개정안을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힙니다.
12월 17일, 미 하원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 의장인 제럴드 코널리 하원의원(민주당)은 “(개정안은) 한국의 인권 단체들이 독립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하는 능력을 해친다”며 “표현의 자유에 ‘냉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12월 20일,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도 자국 외무부 장관에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할 것을 촉구합니다.
12월 22일, 미 국무부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주민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 및 다른 국가의 동반자 단체들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12월 23일, 캐나다 외교·통상 총괄 부처인 글로벌사안부는 “캐나다는 세계인권선언,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을 비롯해 국제 인권 조약에 명시된 바와 같이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밝힙니다.
12월 29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과 물망초, 큰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등 27개 단체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12월 31일, 옛 공산권 국가였던 체코의 주자나 슈티호바 외무부 공보국장은 “이를 시행하려는 동기에 대해 (한국 정부에) 질문했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1월 4일, 그레고리 믹스 하원 외교위원장(민주당)은 “나는 표현의 자유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관련 위원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1월 5일,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은 “EU는 인권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확신한다”며 “인권 침해 상황을 기록하고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을 지원하는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협력은 중요하다”고 밝힙니다.
1월 11일, 나이젤 아담스 영국 외무부 아시아 담당 국무상은 이달 11일 “한국 정부와 대북전단금지법의 영역에 대해 논의했고, 법이 어떻게 시행되는지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외부의 정보에 대해 접근성 향상은 영국 정부가 북한에서 하는 많은 활동의 중요한 목표”라고 밝힙니다.
6. 정부 국제 여론전 나서 논란 키워
정부가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해 12월 17일 킨타나 보고관의 전날 논평에 ‘유감’을 표명합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민주적 논의와 심의를 통해 법률을 개정한 것”이라며 “킨타나 보고관은 (개정안이) 다수의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안전 보호를 위해 소수의 표현방식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는 점을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유엔 보고관에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날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제한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키웁니다. 유엔 인권 기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강 장관이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이지 않은 가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한국이 2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불참했던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날이었습니다.(한국은 지난 2월에도 불참을 결정하며 3년 연속 공동제안국 불참국이 됐습니다)
민주당은 미국 의회의 잇단 비판을 ‘내정간섭’이라 맞받아칩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12월 20일 논평을 내고 “미 정치권 일각의 편협한 주장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호 의무를 규정한 국제규약 위반’으로 단정 짓거나, ‘북한 주민들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발언 왜곡 논란까지 불거집니다. 칼 거시만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은 이달 22일 “한국 통일부가 자국 언론과 재외공관에 배포한 대북전단금지법 설명 자료에 내 발언을 왜곡해 인용했다”고 밝힙니다. 이 자료는 “거시만 회장도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명시했는데, 거시만 회장이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관련 단체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라며 자신의 발언 중 일부분만을 발췌했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 “대북전단이 위협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이 법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만 손상시킬 것”이라고 밝힙니다.
7. 사상 초유의 美의회 청문회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개최합니다. 앞서 청문회 개최를 예고했던 스미스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이 법으로 북한으로의 모든 정보 유입을 범죄화했다”며 “나는 이 법을 ‘성경 금지법’ ‘BTS 금지법’이라 부른다”고 비판합니다.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 의원은 “한국 국회가 이 법을 수정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내정 간섭’ 비판을 우려한듯 이를 진화하는 듯한 발언도 나옵니다. 최초의 한국계 여성 미 연방 하원의원 중 한 명인 영 김 공화당 의원은 “한국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이 청문회를 내정간섭이라 말한다”면서 “친구들은 서로를 믿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미스 의원은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4·7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로 일정을 잡았다”고 말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맹을 강조하던 한·미 양국은 서로를 ‘인권 침해국’, ‘내정 간섭’이라며 비판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로 올릴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한국 인권을 콕 찝어 열린 미 의회 청문회는 1977년 유신 정권 이후 44년만입니다. 인권을 중심으로 한 ‘가치 외교’를 천명한 바이든 행정부를 동맹 카운터파트로 맞이한 지금, 재석의원 187명이 전원 찬성한 이 법이 한·미 관계까지 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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