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귀환 '뉴타운 시즌2'
정부·시의회 등 협조 필수라 실제 규제완화는 미지수
“재건축 권한을 정부가 환수할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진행자)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이명박 서울시장)
2006년 1월23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는 강남 재건축 허용 여부를 두고 서울시와 정부가 심각한 의견 충돌을 겪던 때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인 2003년부터 서울 아파트 재건축이 집값을 끌어올린다고 판단하고 규제를 계속 강화해왔다. 후분양제, 소형 평형 의무화, 초과이익환수제 등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안전진단 기준 강화 등으로 재건축을 억제했다. 2005년 무렵엔 서울시와 강남구를 중심으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주요 재건축 단지의 시세가 들썩이자,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재건축 관련 허가 권한을 자치단체로부터 가져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강한 압박이었다. CBS 라디오에서 이명박 시장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불만의 표현이었다.
15년이 지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부동산 정책 대전환’을 앞세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 시절 “시장에 취임하면 일주일 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공헌했다. 서울에 신규 주택을 총 36만 가구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는데, 그중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 공급이 18만5천 가구로 절반을 넘는다. 오 시장이 당선되자마자 재건축을 준비하던 일부 아파트 시세가 수억원씩 올랐다. 벌써 서울시와 정부의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오 시장은 그의 공약처럼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 수 있을까.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 시장, 서울시의회, 구청장 등에게 권한이 분산돼 있다. 오 시장과 국민의힘은 이 중 겨우 시장만 확보했을 뿐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시의회 넘어야
대표적 규제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부터 보자. 초과이익환수제는 정부가 정상적인 집값 상승분을 넘어선 재건축 개발이익의 최대 50%를 조합원에게서 환수하는 제도다. 2020년 6월 국토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강남권 5개 재건축 예정 단지 조합원 1인당 평균 부담금은 4억4천만~5억2천만원에 이른다. 조합원 수익을 줄여 재건축 추진 동력을 떨어뜨리는 이 제도는 법률(재건축이익환수법)에 근거한다. 오 시장이 규제를 완화하려면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해 법을 바꿔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신축 아파트 분양가격을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이 제도는 재개발·재건축으로 생기는 수익을 낮춰 추진 동력을 떨어뜨린다. 오 시장이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려면 국회를 설득해 주택법을 바꾸든지, 대통령을 설득해 주택법 시행령의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 기준을 바꿔야 한다.
이명박 시장 때는 그래도 서울시의회가 같은 편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 결과로 서울시의원 102명 중 한나라당 소속이 87명이었다. 구청장도 25명 중 22명이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국회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견제를 받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광역 재개발(뉴타운 사업)의 경우, 국회에서 2005년 12월 특별법이 통과되기 한참 전부터 서울시가 사업을 진행했다. 2003년 3월 서울시의회가 뉴타운 사업의 법적 근거가 되는 조례를 통과시켜준 덕이다.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서울시의원 109명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101명이다. 오세훈 시장은 이명박 시장과 달리 서울시의회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의회 협조를 받아야 풀리는 대표적 규제가 아파트 용적률 상한선이다. 용적률은 전체 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을 뜻한다. 용적률 상한선이 높을수록 아파트를 높이 올릴 수 있고, 재개발·재건축에서 조합원이 수익을 크게 낼 수 있다.
용적률 상한선은 국토계획법 시행령에서 1차로 범위를 정하고, 2차로 지방의회가 조례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국토계획법 시행령을 보면 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상한선을 ‘100% 이상 200% 이하’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라고 돼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에서는 이를 150%로 정하고 있다. 법률(국회 권한), 시행령(대통령 권한), 조례(시의회 권한) 중 하나만 바꿔도 서울시 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선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세 곳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에게 우회로가 있긴 하다. 시장 권한으로 특정 지역 용도를 바꾸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제1종 일반주거지역을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꾸면 용적률 상한선이 150%에서 200%로 바뀐다. 실제 2006년 1월 서울시는 용산구 이촌동과 서빙고동을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전환해 기존 아파트를 30층 이상으로 재건축할 수 있게 해줬다.
단 이 방법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도시계획위원회는 시장이 위원들을 임명하므로 시장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30명은 박원순 전 시장이 임명했다. 임기는 2년인데, 30명 중 2명만이 1년 안에 임기가 끝난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오 시장의 남은 임기는 1년 남짓. 그동안 도시계획위원회를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한강변 아파트 35층 제한 폐지’ 공약과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공약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주거정비지수는 박원순 전 시장이 만든 재개발 대상 지역 선정 기준으로, 법과 조례가 정한 기준보다 엄격해 재개발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주로 대학교수로 이뤄진 도시계획위원은 오 시장이 추진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설까. <한겨레21>이 통화한 도시계획위원 세 명은 모두 “단순히 시장이 바뀌었다고 위원들이 그 전보다 반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은 전문가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심의에 참여할 뿐, 박원순·오세훈 시장의 정책 기조 차이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선거 앞둔 민주당의 변심이 관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공약도 오 시장 혼자서는 이루기 어렵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으로 구조 안전성, 주거환경, 비용 편익, 설비 노후 4가지 기준으로 재건축 허용 여부를 판단한다. 안전진단에서 해당 아파트의 조건이 매우 불량하게 나와야 재건축할 수 있다. 그런데 2018년 2월 정부에서 기준을 강화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아파트가 많아졌다. 오 시장은 기준을 다시 낮춰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안전진단 기준은 도시정비법 시행령을 바탕으로 국토부에서 정하므로, 역시 정부 협조가 필요하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오세훈 시장이 민주당 동의 없이 임기 1년 안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궐선거 다음날인 4월8일 오세훈 시장을 향해 “주택 공급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다”고 한 말에는 뼈가 있다.
오세훈 시장에게 카드가 없는 건 아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권한도 힘이지만, 무언가를 못하게 막는 권한도 힘이다.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재개발·재건축부터 서울시 협조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다. 서울시가 사업지 선정에 관여하고,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사업을 직접 추진하기 때문이다. 2020년 정부에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려고 했지만 박원순 전 시장의 반대로 결국 못했던 사례를 떠올려보자.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오세훈 시장도 정부 정책을 방해하는 힘을 이용해 정부와 협상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도 중요한 변수다. 부동산 규제완화를 원하는 여론이 다수라면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강남구·송파구·양천구 등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재건축 규제완화를 공약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한강변 아파트 35층 제한 폐지’ 등 규제완화 공약을 앞세웠다.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 구청장들과 서울시의원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돌아온 오세훈, 15년 전 이명박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이명박 전 시장은 부동산 정책으로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웠지만, 뉴타운 사업으로 표심을 흔들었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은 뉴타운의 승리였다.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 뉴타운 사업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한나라당 정치인이 대거 당선됐다. 그 힘으로 이명박은 2008년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곧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집값은 떨어졌고 뉴타운 사업도 함께 늪에 빠졌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뉴타운 247개 구역 중 사업이 끝난 곳은 불과 21곳. 그나마 일부라도 진행된 곳은 45곳. 181곳(73%)은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심각한 갈등만 불러왔다. 2011년 박원순 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뉴타운은 사실상 폐기됐다. 그러고 나서 정확히 10년 뒤, 오세훈 시장의 ‘뉴타운 시즌2’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